주제 에세이 #16. 교양
국어사전을 보면 '교양'의 첫 번째 정의는 '지식, 정서, 도덕 등을 바탕으로 길러진 고상하고 원만한 품성'이라고 나온다. 위키백과를 보면 '독립된 개인이 의당 가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여러 분야를 망라한 일정 수준의 지식이나 상식'이라거나, '고전문학이나 예술 등의 수준 높은 문화에 대한 조예가 있어 그것이 개인의 품위와 인격에 반영되고 사물에 대한 이해력과 창조력에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라고 교양을 정의한다.
대체로 우리가 교양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교양이 있다거나 없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세련되고 품위 있는 말과 행동을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교양'에 대해서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정의하고 싶다. 나는 '최악의 상황에 닥쳐서도 자기 밑바닥을 보이지 않는 것'이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집을 리모델링하느라 이삿짐센터에 짐을 맡겼다가 공사가 끝나고 다시 들여왔다. 그런데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돌아간 후 집안을 정리하다 보니 중요한 물건이 없어졌다. 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아직 대금은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다. 전화를 받은 사장은 우리 짐이 보관되어 있던 컨테이너를 다시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컨테이너가 깨끗이 비워진 상태라 없어진 물건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 그 물건은 부피가 꽤 커서 못 보고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건을 찾지 못하면 치러야 할 대금에서 없어진 물건 값을 제하겠다고 했다. 물건을 찾아주면 대금을 모두 치르겠다고도 덧붙였다. 그 물건은 우리 가족에게는 중요한 물건이지만 값이 많이 나가는 물건은 아니었다. 이삿짐센터 사장은 갑자기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완전히 흥분을 해서는 육두문자를 남발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통화 중 녹음을 선택하고 대화가 녹음되고 있다고 알렸더니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정말 교양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사람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유명했던 사연이 있다. 남편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부인의 사연이었다. 전셋집으로 시작해서 아이 둘을 키우며 근 십 년 만에 대출을 잔뜩 끼고 겨우 집을 장만해서 이제 좀 살만해지나 싶던 차에 남편이 부인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외도를 했다고 한다. 그 여자는 남편이 결혼한 사실을 알면서도 아랑곳 않고 그를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부인은 외도 상대를 만나서 집 대출금이 얼마나 남았는지, 남편 월급으로 앞으로 몇 년 동안 갚아야 하는지, 아이들 교육비로는 얼마나 나가는지 등을 상세히 알려주고 원한다면 남편과 함께 다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외도 상대는 조용히 물러났던 것 같다. 머리채를 잡아도 시원치 않을 상대에게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고 남편과 상대 모두에게 통쾌한 복수를 해 준 그 부인은 정말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려서 상사 눈치가 보이는 상황일 수도 있고, 연애가 잘 안 되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작은 거짓말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꼬리를 잡히거나, 생각대로 금전이 유통되지 않아 곤란해질 수도 있다.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그런 힘든 상황은 수시로 생긴다.
이럴 때 그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교양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남을 끌어내리거나 짓밟거나 해치지 않는 것, 그게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최악의 상황에 처해서도 자기 인성의 바닥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교양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