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감은 가능성을 포기한 대가다
한창 취업에 열을 올리던 시기에는 '너희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어른들 말씀이 너무 듣기 싫었다. 매일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별로 한 일도 없이 시간만 보냈는데 자려고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았다. 자기소개서 한 장 쓰기도 버거워서 지원서 접수 마감을 번번이 놓치곤 했다.
그때 처음으로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나의 이 불안함이 가능성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아직 열 살이 안된 어린아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게 될지 맞추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시기의 아이는 운동선수도, 변호사도, 경찰도, 과학자도 될 수 있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는 가능성이 조금 닫힌다. 벌써 미술이나 음악, 체육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도 하고, 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문과를 선택하거나 이과를 선택해 대학 진학 후 전공을 고민한다. 선택한 만큼 가능성은 닫힌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20대에는 여전히 가능성이 여러 방면으로 열려있다. 아직 사회적으로 어리다고 여겨지는 만큼, 한두 번 선택한 진로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선택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선택은 더 신중해지고,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어 불안하고 초조하다.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많을수록 자유롭다고 느끼기보다는 혼란스러워한다. 하다못해 점심 메뉴나 가방 하나를 고를 때도 선택하길 어려워하는 사람이 자기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선택 앞에서 불안하지 않을 리가 없다. 게다가 내가 원하고 선택했다고 해서 그 길을 갈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야만 한다.
이런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에게 '가능성'이란 쓸모없고 거추장스러운 미사여구일 뿐이다. 가능성 따위야 얼마든지 가져가도 괜찮으니 안정된 생활과 바꿀 수 있기만을 바란다.
이제 직업인으로서의 나의 삶은 절반 이상 결정된 듯하다. 가능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안정감이 남았다. 후배들은 나를 보며, 본인들이 가지고 싶은 것을 이미 다 가졌고 삶이 안정되어 보인다며 부러워한다. 여기쯤 와서 보니 그때 나에게 '너희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결정된 삶은 재미가 없다. 새롭지도 놀랍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매일 비슷한 하루가 그저 지나갈 뿐이다. 이런 상태를 매너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매너리즘이 어떻게 보면 가진 자의 배부른 소리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매일 치열하게 고민하고 두려움을 이겨내며 도전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불안함이 바로 가능성이다. 안정감은 가능성을 포기한 대가로 얻게 되는 것이다. 안정된다는 것은 나이 든다는 것과 아주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청춘의 불안이 부럽고, 그 가능성이 탐난다. 역시 인간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커 보이게 마련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