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에 살며 북촌 인근에서 일을 하는 작가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짧게 떠난 여행에 관한 기록입니다. 늘 익숙하게 지나던 거리와 풍경들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오늘도 날씨가 꽤나 덥다. 늘어지는 몸을 겨우 일으켜서 길을 나섰다. 전 날은 도서관에 갔으니 오늘은 책방에 가보려고 한다. 항상 들고 다니는 지도에 마침 책방 한 곳이 표시되어 있다. 미리 준비한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며 부지런히 길을 따라간다.
골목길로 들어서면 어느새 간판이 반긴다. photo by_윤씨
북촌의 멋을 잘 담아낸 '북촌책방'
북촌로 5길 끝자락에서 골목으로 살짝 들어가면, 고풍스러운 한옥 처마 밑에 자그마한 간판이 붙어있는 책방을 찾을 수 있다. '북촌책방'이라는 이름에 참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길모퉁이를 돌면 대문이 나온다. 나무로 만든 단아한 문패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문지방을 넘어서면, 한옥의 정취가 한껏 묻어나는 아담한 마당이 나타난다. 마당 한편에는 책들을 늘어놓은 책상이 서 있었다.
평생을 네모난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렇게 우리 고유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한옥은 볼 때마다 새롭다. 이런 집에서의 삶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아주 먼 나라로 여행을 온 것만큼이나 신기하고 낯설다.
문지방을 넘어선 순간,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photo by_윤씨
주인께서 손님을 맞으러 가게 문을 열고 나오셨다. 이렇게 더운 날 어려운 걸음 해주셨냐는 인사를 받으니, 생각지 못한 환대에 부끄럽고 황송하다. 안 쪽은 시원하니 들어와서 천천히 구경하라며 잠시 자리를 뜨셨던 사장님은, 이내 작은 찻잔에 시원한 차를 한 잔 따라 가져다주신다.
찻잔을 받아 들고 방에서 방으로, 책장에서 책장으로 구석구석 구경을 한다. 여기는 아주 오래된 책들부터, 역사에 관한 책, 아동서적, 정부나 기관에서 발간한 책들까지 여러 종류의 책이 꽂혀있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는 많지 않다. 하지만 한 권 한 권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마침 잡지 코너에서 요즘 하고 있는 일과 관계있는 정기간행물 한 권을 찾았다. 이제부터 살까 말까 망설임의 시작이다. 한참 망설였지만 수중에 카드 한 장 이외에 현금이 전혀 없었다. 값이 얼마 되지 않을 중고 잡지 한 권을 사면서 카드를 내밀기가 왠지 염치없다. 망설이다 들고 있던 책을 자리에 다시 올려둔다.
북촌책방은 중고책방이다. 책방을 어떻게 운영하시는지 여쭤보니, 중고서적을 주기적으로 사 오신다고 했다. 알라딘 같은 대형서점과 달리, 손님들이 중고서적을 팔러 와도 그 값을 매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개인에게서 매입은 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그럼 기증은 가능하냐 물었더니 정말 조심스럽게, 책방에는 크게 도움이 되겠지만 그냥 받기에는 너무 죄송하다고 하신다.
사장님이 내주신 시원한 차 한잔과 책 냄새 가득하던 실내. photo by_윤씨
서울시 공공한옥 활용의 좋은 예
사실 처음 이 북촌책방을 찾아 나설 때, 서울시가 운영하는 북촌의 공공한옥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왔다.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말에, 책방 운영도 서울시가 하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서울시는 한옥을 보유하고 있는 임대인이고, 입점하신 분들이 월세를 내고 공간을 빌려서 사업을 하시는 형태란다. 나중에 좀 더 찾아보니, 서울시가 보유한 공공한옥은 총 26개소가 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 공방뿐만 아니라 책방, 대관시설, 도서관 등으로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아마도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고 계시기에 기증에 대해 더 조심스러운 입장이셨던 듯하다. 그래도 내가 두 번 읽지 않을 책들을 이런 좋은 공간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북촌책방에서는, 다 읽은 책을 처분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헌책 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날을 정해 각자가 집에서 들고 나온 책들을 여기 이 마당에 펼쳐놓고 새 주인에게 파는 것이다. 구경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또 이 특별한 공간을 활용해서 책 읽는 모임, 시 낭송 모임, 다도 모임 등도 하시는 모양이다. 모임이 있을 때 연락을 주시겠다기에 연락처를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안쪽으로 작은 마당을 갖춘 ㅁ자 한옥은 꿈꾸던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photo by_윤씨
현실로 발을 옮기며
너무나 더운 날이었다. 그렇지만 가게 주인께서 건네주신 시원한 차 한잔과 익숙한 책 내음에 이마에 흐르는 땀도 별 것 아닌 일이 되었다. 이렇게 아담하고 정겨운 공간을 쓸고 닦으며 매일 손님을 기다리는 삶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괜히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수익과 비용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매달 버티는 삶일지도 모른다. 여행자의 시작이라는 것은, 이렇듯 자기 멋대로 미화되고는 한다.
벌써 이 여행을 시작한 지도 꽤나 시간이 지났다. 지도를 펼쳐보면, 내가 지나온 길들이 표시되어 있다. 보고 있자니 마음이 뿌듯하다. 아직 날이 많이 덥지만, 다음에는 꼭 북촌 한옥마을을 돌아봐야겠다 다짐하며 오늘의 여정을 마쳤다.
오늘의 일정 : 북촌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