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에세이 #29. 어른
20, 25, 27, 30. 법적으로 성인이 된 이후 내 인생에 큰 전환이 있었던 시점들이다.
스무 살. 말 그대로 '성인'이 되었다. 사실 어떤 관례도 치르지 않았지만 법적으로는 성인의 자격을 취득했다. 초중고 교육과정을 마쳤고, 운전면허도 취득했으며, 보호자의 동행 없이 처음으로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혼자 결정하고 행동할 능력을 갖췄다고 자신했지만, 한 편으로는 모든 것이 어설펐고 처음 혼자서 해보는 일들에 두려움도 컸다.
스물다섯. 본가를 떠나 독립했다. 이제는 혼자 살겠다며 짐을 싸들고 나왔지만, 정말로 혼자 살기는 무서워서 룸메이트를 구했다. 부모 슬하를 떠나니 생활패턴에 제약이 사라졌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땐 놀았다. 노느라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는 끼니가 늘었다. 어느 날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이렇게 살다 간 죽겠다 싶어졌다. 그 후로 스스로 생활패턴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또,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자취를 하다 보니 비닐봉지 한 장, 두루마리 휴지 한쪽 쓰는 데에도 돈이 들었다. 돈 들어올 날은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가진 돈이 천 원뿐이던 적도 있었다. 집에 남은 음식으로 연명하며 일주일을 버텼다. 돈이 없으면 정말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스물일곱. 취업을 했다. 그동안 스스로 대단히 어른이 된 줄만 알았는데, 출근을 해보니 나는 조직의 '막내'였다. 출근한 첫날은 전화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어느 부서 누구입니다'라며 받아야 하는 전화를 '네~'하고 받으면서 아직 내가 배워야 할 게 정말 많다는 걸 깨닫고 다시 겸손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자리까지 찾아오지 말고 메신저로 물어봐도 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모르는 것은 뭐든 묻고 배웠다. 제일 일찍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했지만 아직도 내가 받는 월급만큼 일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사회'에 발을 디뎠다. 한 사람 몫을 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늘 나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마냥 바라보시던 부모님도 밥벌이를 하는 나를 보며 안심하시는 게 느껴졌다.
서른. 죽자 사자 노력해서 자리를 잡은 나는 스물아홉 겨울에 이직과 함께 승진을 했다. 이직해 온 회사의 후배들에게 나는 '선배'가 아니라 '대리님'이었다. 처음 가져본 직급이 어색하기만 했다.
이제는 맡은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의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에 밤을 새워 일했다. 주말에도 출근을 했다. 그렇게 실력을 키워갔다. 조직으로부터 인정도 받았다. 인생의 한 시기가 막을 내리고, 다음 시기가 시작됨을 느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어른이 되어온 것 같다. 나에게는 '성인'과 '어른'이 같은 말이 아니다. '성인'은 만 19세라는 문턱을 넘기만 하면 될 수 있지만, '어른'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게 어른이란 '온전히 자신의 판단 하에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흔들리며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