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안 좋아하는 술은 소주다. 소주에서는 알코올 맛 밖에는 느낄 수가 없다. 왜 그런가 찾아보니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는 순수 알코올을 물에 희석해서 감미료를 조금 첨가해서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증류주와는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이다. 알코올만 넣었으니 알코올 맛 밖에 안 날 수 밖에 없다.
나는 술을 '맛'으로 마시지만, 어떤 사람은 술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술' 자체보다는 술'자리'를 좋아한다. 여럿이 함께 모여서 오랜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웃고 떠들며 서로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그 자리를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날의 주종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비싸고 질 좋은 술을 꼭 마셔야 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만나고 싶은 사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과 같이 있는가이다. 혹은 내가 사람들의 무리에 소속되어 있다, 이 모임에 내가 앉을 ‘자리’가 있다는 그 느낌이 소중하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적당히 술에 취한 상태', 그때의 기분을 좋아하기도 한다. 알코올이 적당히 들어가면 긴장이 풀리고 몸이 이완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쑤시고 아프던 곳도 한결 편안해지고 어색하던 사람들과도 대화가 술술 풀린다.
그래서 술에 ‘취한 상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일정량 이상의 술을 마신다. 본인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그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알코올의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계속 술을 마신다. 마치 신데렐라가 마법이 풀리는 12시를 아쉬워하는 것처럼 술이 깨는 순간을 최대한 늦추려 노력한다.
어떤 사람들은 용기를 내기 위해 술을 마신다. 이런 사람들은 '취한 상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비슷한데 또 다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용기를 내기 위해 술을 마신다거나(우리가 아주 잘 아는 노래 '취중진담'이 그토록 인기있었던 이유가 아마도 용기를 내려고 술을 마셔 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이성에게 말을 걸고 다가갈 용기가 필요해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클럽에서 술이 많이 팔리는 이유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부하직원이 회식자리에서 입 꾹 닫고 침묵을 지키다가 무언가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소주 한 잔을 입 안에 털어넣고 작심발언을 하는 장면이 클리셰처럼 나온다. 이럴 때도 사람들은 용기를 내기 위해, 결심을 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이렇게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참 다양하다. 그만큼 술의 기능도 다양하다. 뉴스에서 아침건강방송에서 술이 건강에 해롭다고 그렇게 외쳐대도 여전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 대한민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술을 마신다면, 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이 왜 술을 마시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그냥', '맛있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마시니까' 마신다고 하지만, 사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 이유가 내 인생에 이롭기 때문에, 그 이유가 내게 주는 만족감이 크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일테다.
그래서 나는, 술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해로운 술이 아닌 이로운 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 내가 술을 즐기는 이유, 내가 좋아하는 술의 종류와 그 술을 마시면서 마주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제목은 '주류예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