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문방구는 언제나 아이들로 북적였다. 그곳에서는 구슬이 거래되었는데, 아이들은 자신이 딴 구슬을 돈으로 바꾸거나 새 구슬을 사기도 했다. 이곳의 거래는 마치 골프장에서 쓰인 로스트볼을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은 구슬을 손에 쥐는 것이었지, 그 구슬이 새것이냐 헌 것이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주로 새 구슬보다 헌 구슬을 많이 사갔다. 헌 구슬은 싸게 많은 양을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짝거리는 새 구슬은 당연히 매력적이었지만, 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적은 돈으로도 더 많은 구슬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헌 구슬을 더 선호했다. 그것들은 겉모습은 조금 낡았을지 몰라도, 구슬 경기에서 쓸 때는 새 구슬 못지않은 가치가 있었다. 승부는 결국 손끝의 감각과 전략에 달린 것이었으니, 구슬의 새것과 헌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문방구 안쪽 벽에는 다양한 구슬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구슬, 안쪽에 색깔이 들어간 구슬, 살짝 칠이 벗겨진 구슬까지.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돈을 손에 꼭 쥐고, 진열된 구슬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고르곤 했다. 헌 구슬은 묶음으로 팔렸고, 아이들은 그걸 가득 들고서 문방구를 나왔다. 가방 속에 쏙 넣으면 딸깍거리는 구슬 소리가 은근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구슬을 사들고 나오는 순간, 아이들은 이미 머릿속에서 다음 구슬 경기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들은 낡은 구슬이라도 손끝에서 휘날릴 때는 구슬이 마치 새로운 승리의 열쇠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문방구는 구슬 게임이 끝없이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자, 아이들의 손끝에서 빛나는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문이 되었다.
물론, 부잣집 아이들의 구슬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보통 구슬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머니 속에는 천체 구슬이나 사기구슬, 때론 쇠구슬 같은 특별한 구슬들이 들어 있었다. 그 구슬들은 평범한 아이들이 손에 넣기 힘든 값비싼 물건들이었고, 그들의 자부심을 한층 더 높여주는 도구이기도 했다.
부잣집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구슬 주머니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것은 천이나 헝겊으로 대충 만든 다른 아이들의 주머니와 달리, 비단으로 짜인 것처럼 번쩍번쩍 빛이 나곤 했다. 주머니의 표면은 부드럽고 매끄러워서 손에 닿으면 사르르 미끄러질 것만 같았다. 구슬 주머니가 땅에 내려오는 순간, 주위의 아이들은 자연스레 그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안에 담긴 구슬들은 경기에서 사용되는 구슬을 넘어서는 존재였으니, 구슬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었다.
천체 구슬은 반짝이는 별무늬가 박혀 있어, 우주를 손안에 담은 듯 느낌을 주었다. 그 구슬이 땅 위에서 굴러갈 때면, 별들이 한꺼번에 흩어지는 듯 환상이 펼쳐졌다. 사기구슬은 단단하면서도 은은한 광택을 띠고 있어,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 구슬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을 위축시켰다. 쇠구슬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단단하고 묵직한 쇠구슬은 상대 구슬과 부딪힐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경기장에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그들의 구슬은 그저 경기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힘과 권력, 그리고 그들의 특별함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구슬을 자랑스럽게 쥐고 있는 그들의 손끝에서는 이미 승리의 확신이 느껴졌다. 그들만의 번쩍이는 구슬 주머니가 흙바닥 위에서 빛을 발할 때, 다른 아이들은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구슬만 많이 따면, 돈으로 바꿀 수 있어. 이거지.'
반장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부반장 철수와 몰래 상의했다.
반장은 언제나 한 발 앞서 생각했고, 철수는 그런 반장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철수는 공부도 잘했지만, 특히 계산에 능했다. 그의 빠른 두뇌는 아이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했으며, 그가 샘에 뛰어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철수의 능력은 어른들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철수의 엄마가 일하는 콜라 공장에는 빈 병 박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철수는 그 박스들을 보고도 금방 답을 내놓았다. 그는 수학 공식을 대입해 박스마다 들어 있는 빈 병의 개수를 빠르게 계산해 냈다. 박스가 무게로 가득 차면 그 무게가 일정하다는 것을 알았고, 일일이 안을 확인하지 않고도 박스마다 빈 병이 꽉 찼는지 감별할 수 있었다. 그저 무게만 보고도 말이다.
철수는 늘 조용한 태도로 주위를 살폈지만, 반장과의 비밀스러운 대화 속에서 그는 더 큰 계획을 세워갔다. 구슬 경기는 그저 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들의 세계에서 작은 경제였다. 구슬을 따고, 그것을 돈으로 바꾸는 일은 반장과 철수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뜻했다. 더 많은 구슬을 따기 위해선 철수의 머리와 반장의 전략이 필요했다. 철수는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을 돌렸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구슬을 모을 수 있을지, 어떤 구슬이 더 가치 있는지, 구슬 경기에서의 승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철수의 빠른 두뇌와 반장의 전략이 맞물리며, 둘은 머릿속으로 이미 승리를 계획하고 있었다. 구슬 하나하나에 담긴 무게가 다른 아이들에겐 단순한 돌멩이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달랐다. 구슬은 돈이었고, 기회였으며, 기회를 잡기 위해선 무엇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이 필요했다.
철수는 반장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이번에만 잘하면, 우린 구슬 산더미를 가질 수 있을 거야."
반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미 그 눈빛 속엔 구슬의 무게가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다음으로 필요한 건 자본금이었다. 그렇다, 구슬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반장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구슬이 많아야 배판을 외칠 수 있고, 배판에서 이겨야 더 큰 승부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손에 있는 구슬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구슬이란 돌멩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작은 세계에서의 화폐였고, 화폐가 없으면 승부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반장은 고민에 빠졌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더 많은 구슬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단순히 경기에서 조금씩 따내는 걸로는 한계가 있었다.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그 시간 동안 경쟁자들은 더 많은 구슬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배판을 외칠 기회조차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반장은 철수를 떠올렸다. 철수의 빠른 머리와 계산력이 필요했다. 철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구슬을 모을 수 있을지, 또 그 구슬을 어떻게 굴려 더 많은 구슬로 만들 수 있을지 해답을 찾아줄 것이었다. 구슬이 많이 있어야 배판에서 확실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배판에서 이기면, 게임은 단숨에 그들의 것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구슬이 문제였다. 반장은 머리를 싸매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단순히 경기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구슬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방법. 더 빠르고,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반장은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우며 자신에게 다시 다짐했다. 이번 승부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더 많은 구슬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승리의 열쇠는 구슬에 달려 있었다. 만약 그가 충분한 구슬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배판에서 이길 가능성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반장은 깊은 고민 속에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구슬, 그것이 곧 승부의 모든 것이었다. 그저 놀이가 아니었다. 구슬 하나하나에 자존심과 결의, 그리고 희망이 담겨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에게 구슬치기는 작은 세상의 싸움이었고, 이번 기회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구슬을 더 확보해야 했다. 반장은 머릿속에서 온갖 방법을 떠올리며 이 고민의 해결책을 찾으려 애썼다. 구슬을 많이 따면, 배판에서 더 큰 판돈을 걸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승부의 흐름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반장은 알고 있었다. 구슬이 많다고 해서 승부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힘과 기술만큼 중요한 것은 구슬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전략이었다.
‘더 많은 구슬, 그리고 더 나은 계획.’
반장은 다시 한번 자신에게 다짐했다.
바로 그때, 현주는 용돈을 모아둔 저금통을 조용히 가져왔다. 작은 저금통은 현주가 오랫동안 조금씩 아껴가며 모은 돈이 담겨 있었고, 그녀는 그 돈을 선뜻 내놓았다. 모든 아이들이 깜짝 놀라 현주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아이들 사이에 조용한 감탄이 흘렀다. 그녀의 의외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진이는 갑자기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늘 밝고 까불거리던 동진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왠지 달랐다. 현주의 결단에 뭔가를 깨달은 듯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를 더듬었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사우디에서 돌아올 때마다 건네주던 만 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 돈은 동진에게도 매우 소중했다. 당시 라면 한 개가 200원이던 시절, 만원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거의 보물과 같은 금액이었다.
그렇지만, 동진은 망설임 없이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나도 돈 낼게!"
그의 목소리는 분명했고, 아이들은 그가 내놓은 돈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특히 그가 현주를 바라보는 눈빛은 남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현주가 용돈을 내놓은 것에 영향을 받아, 동진도 마음을 다잡고 소중한 돈을 내놓은 것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동진의 용기에 감탄했다. 그리하여 이제 자본금이 마련되었다. 동진과 현주 덕분에 아이들은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현주와 반장 13
입맞춤을 나눈 그날 밤 이후, 반장과 현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해 갔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그들은 매일이 조금씩 더 특별해졌다. 함께하는 시간들이 더욱 소중해졌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애정도 깊어져 갔다.
어느 맑은 주말, 현주와 반장은 한강의 작은 카페에서 첫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바닷바람이 살짝 불어오는 따뜻한 날씨에, 두 사람은 함께 한강을 거닐며 나란히 발걸음을 맞췄다. 시원한 바람 소리가 귓가에 잔잔히 울렸고, 반장은 그런 소리 속에서 현주의 손을 잡았다. 현주도 그 손을 꽉 쥐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 정말 좋다, 반장.”
현주는 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너랑 함께 있으니까 더 좋아,”
반장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들은 함께 강변에 앉아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는 그저 친구로만 봤던 반장이 이제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설레었다. 두 사람은 강을 바라보며, 서로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천천히 즐기고 있었다.
잠시 후, 반장이 갑자기 일어나 현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저기까지 걸어가자.”
반장이 손짓한 곳은 한강을 건너는 다리였다.
현주는 반장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같이 가자.”
그들은 손을 잡고 느긋하게 강변을 걸었다. 발밑으로 흐르는 강물이 두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반장은 현주의 얼굴을 살짝 바라보다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너, 내 손 잡고 있는 거 후회 안 하지?”
현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회? 절대 안 해.”
그들이 한강다리에 다다랐을 때,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다. 주황빛 노을이 하늘을 물들였고, 두 사람은 다리 밑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소소한 것들이었다. 학창 시절 함께 보낸 시간들,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 서로의 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그 어떤 말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서로에게 편안함과 안도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반장은 슬쩍 현주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연인이 될 줄은 몰랐어.”
현주는 반장의 어깨에 기대며 웃었다.
“그러게, 나도 상상 못 했어. 하지만 이렇게 되니까 정말 행복해.”
그 순간, 강바람이 살짝 불어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반장은 부드럽게 현주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현주는 그저 눈을 감으며 그 순간을 천천히 느꼈다. 반장의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앞으로도 우리, 이렇게 계속 함께하자,”
현주가 속삭이듯 말했다.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우리, 함께 걸어가자.”
그날의 데이트로 그들의 마음은 더 깊어졌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강가에서 함께한 짧은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시작을 향한 결심을 더 확고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