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웨일 <어린 시절의 나 현재의 나>, '시간을 넘어선 어린 시절'
작가를 꿈꿀 때는 그냥저냥, 다 만만해 보이고 쉬워 보였습니다.
막상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니 부족한 것이 왜 이리 끝도 없는지...
어떤 글은 문장의 표현이 부족해 보이고 어떤 글은 문맥이 안 맞는 것 같고 시점도 안 맞아 보이고 하자투성이 부족함덩어리인 나를 마주하고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온실 옆 정체 모를 새싹 같음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나는 성장하겠지.
목적이 없는 글은 산으로 가겠지.
목적이 없는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틈나는 대로 공동작가로 참여합니다.
나에게 명예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과정이고 내가 쓴 습작의 결과물들이 글쓰기에 목마름과 함께하며 어울립니다. 깊이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글은 나를 성장시킵니다.
하나의 주제, 서로 다른 이야기.
온라인으로 만나는 이들과 오픈챗에서의 짧은 만남.
우리는 글을 쓰고 기고하며 쭈욱 함께 합니다.
7살 동그란 얼굴에 통통한 볼을 부풀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는 눈빛, 과자 하나를 손안에 쥐면 세상이 즐겁고 모르는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던 시간을 가진 아이였다.
아이가 보던 세상은 온통 황금색의 벼가 펼쳐져 있었고 계절에 따라 색을 바꿔 입는 들녘안, 가운데 외딴 집들 중 하나, 그 안에 작은 정원과 차갑고 깊은 우물, 도둑고양이가 집안을 넘나 들었고 오전이면 빨래를 한가득 널어 말리는 엄마 그 옆에서 아이는 여동생들과 인형놀이를 하며 다투곤 했다. 누가 누가 더 많은 인형을 소유하는지 누가 봐도 중요하지 않고 사랑스러웠던 시간들을 가진 그런 앞마당을 가진 기와집이었다.
대문 입구에는 포도나무 한그루가 있어서 포도가 주렁주렁 넘치면 커다란 바구니 안에는 포도가 가득했고 먹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흘려버리며 집안일에 열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흘깃흘깃 커다란 바구니의 포도를 씨도 남기지 않고 껍질만 남긴 채 꼴딱꼴딱 삼켰다.
오후 내내 포도설사를 하며 엄마에게 혼나고 다시는 이렇게 먹지 말라며 잔소리를 며칠 동안 이어들어도 이듬해가 되면 또 잊어버릴 일이 되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큰길과 평지사이에 위치해 있던 집은 자연스레 맞은편 오산과 섬진강을 눈으로 더듬어 보기에 충분했었다. 그때는 다 그랬다.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욕실은 언감생심, 샤워가 일상이 아니었지만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지만 너른 들녘에 작은집들 사이로 논밭이 하나 둘 사라지며 양옥집이 생겨났다. 옥상이 있고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집, 그 집을 건축하던 날 그 앞에 쌓여진 작은 돌무더기에서 소꿉장난을 하며 저 집에는 누가 사나 호기심을 가진 채 바라보았었다.
새로 지어진 양옥집은 집에 비해 마당은 작았지만 거대한 동화 속성과 같았다. 새롭고 신기하고 높았었다. 어두운 밤 지옥의 늪 같은 재래식 화장실이 아닌 양변기가 있었고 그것은 물을 사용해 청결을 유지하고 꼬린내가 올라오지 않는 그런 깔끔한 하얀색의 의자 같은 변기였다.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리고 급한 마음에 변을 보고 물 내리는 방법을 몰라서 한참을 당황했던 아이의 모습, 아마 그때쯤이었나 큰 태풍이 재래식 화장실을 강타했고 얇은 슬레이트 벽과 허술한 지붕은 태풍의 강력함을 이기지 못해 날라 가버렸다.
한동안 화장실의 벽은 실종상태였었다. 지붕이 날라 간 순간은 어린 눈으로도 신기했지만 태풍이 소원을 이루어준 것만 같이 느끼게 해줬다. 새로운 화장실을 경험하고 더럽고 냄새나던 부끄러움이 날아가 버린 듯 해 통쾌했고 태풍이 내 소원을 들어준 것만 같았다. 어른의 눈으로 보았다면 당장 고쳐야할 집이고 유일한 화장실이, 모든 부끄러움을 감추어줄 화장실이 없어져 황당 했을텐데, 작은 아이의 눈높이는 위대한 태풍이 새로운 화장실을 없애버리려고 시도한 듯 했다. 그러니 아이는 잠시지만 행복했었다.
태풍 덕분에 화장실을 다시 짓거나 양변기를 설치하는 그런 멋진 일은 일어나지 못했다. 그저 지붕을 새로 했고 이듬해에 태풍이 올 때쯤에 또 날라 가면 어쩌나를 걱정하던 가족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고 태풍으로 그만하길 다행이었던 날이지만 작아도 삶의 걱정은 걱정 아닌가. 그 소소했고 정겨웠던 걱정을 가진 집은 늘 그곳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았다.
집의 모습은 참 재미있었던 것 같다. 판타지 소설의 요새처럼 마당에서 대문까지 10도 경사의 나지막한 오르막길이었었고 대문을 나서면 45도 경사의 흙계단 같은 길을 올라가면 신작로, 그 길을 열 걸음정도 걷다가 돌아서 내려가면 고등학교가 있었다.
그 집은 최고의 학군이었다. 신작로 아래쪽 작은 기와집은 학교를 등지고 작은 앞마당 너머의 너른 들판을 보이며 그 너머에는 사성암이 있는 오산과 그 아래 섬진강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멋진 언덕아래 아늑한 집이었는데 그때는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커다란 양옥집과 그곳을 마주한 대궐 같은 기와집에 사는 할머니 집을 다녀오면 더 초라함에 기가 죽었었다.
오늘 같이 따박따박 소리를 내는 비가 오면 어디선가 느릿느릿 두꺼비가 기어 나왔고 여름이면 청개구리소리가 개굴개굴 울었었다. 꼬린내 풀풀 날리는 화장실 앞마당에는 의미 없는 돌로 경계를 낸 화단 그 안에는 텃밭이자 위대한 곤충들이 살아가는 정원이었다. 옥수수가 자라고 작고 나지막한 예쁜 꽃들이 자랐다. 불특정하지만 물건을 팔러 오는 낯선 이들 중 책을 팔러 오는 몸이 불편한 아저씨가 있었다. 다리를 절며 한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정장을 입은 채 말끔하게 찾아오는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도서관에 갈 필요가 없었고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과일과 채소는 집안의 마당에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주기적으로 리어카에 과일을 가득 담아 찾아오는 자그마한 체구의 과일 이모님, 행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움직이는 상점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의 수고와 노력 덕분에 엄마는 무거운 짐을 들고 오가는 수고를 덜었었다.
그 집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했고 이사를 가던 8살 때까지 그 곳은 나에게 아방궁이자 어린 날의 대부분을 가진 곳이었다.
30년이 훌쩍 넘겨진 지금, 7살의 나를 닮은 10살 아들과 함께 그 곳을 걸어본다. 그 집은 이사를 나오던 해에 없어지고 고등학교의 일부가 되었으며 집에서 나와 오르던 길도 포장되었고 너른 논밭인줄 알았던 그 곳은 도시에 비해 좁고 답답한 주차장이 생겼고 작은 아파트들과 원룸건물이 서너 개쯤, 그 너머에는 3,4층 높이의 다양한 건물들이 지어졌다.
아들과 함께 걷는 고등학교,
아빠 자전거 뒤에 타고 깔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아이는 흰머리가 생겨나는 중년의 여자가 되었고 그 집에 살던 부모님보다 더 많은 나이를 가지고 그때의 아이보다 더 큰 아이를 데리고 같은 길을 걷는다.
할머니가 살던 대궐집 같았던 기와집과 친구가 살았던 신식 양옥집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 집에 살던 아이들은 모두 중년이 되었지만 집은 그대로 남아 있다. 길은 그대로이고 집에 살아가는 사람은 적어졌다. 한 없이 넓어보였던 길도 다리가 아파 길 끝까지 가지 못했던 그 거리는 걸어서 15분이면 끝이 보인다.
이제 마당이 없어도 행상이 없어도 태풍을 걱정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살아간다.
대신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며 같은 길, 다른 모양의 환경을 비교하는 꼰대가 되어 아이와 이야기하는 학부모가 되어간다.
나의 어린 시절은 기억하는 이가 점점 줄어들고 아이의 어린 시절은 늘어날 것이다.
빗소리가 조곤조곤 박자를 맞춰준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마법을 부려준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곧 출간되는 <여름이 왔어요>까지 포레스트웨일 출판사 덕분에 3권의 책에 공동작가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의도는 한 권의 책에 작가로 한번 올려오고 싶다는 마음이었고 이제는 함께 참여하며 글을 쓰는 소속감을 느끼게 됩니다. 일면식은 없지만 오프라인으로 만나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어색하지만 친밀하겠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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