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가 뽑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무엇을 하든 반쪽짜리였다. 강사일도 창작가일도... 창작가의 삶이 배부르기가 힘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무엇을 하든 똑같았다. 퇴직금으로 한 달을 편하게 놀 것인가. 그것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들어 볼 것인가.
그렇게 창업을 결정하고 200만 원짜리 가방을 하나 거하게 샀다고 생각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모든 게 생각처럼 쉬울 줄 알았다. 머릿속에 있는, 알고 있는 상식들로만 내린 결론은 모든 것이 통제가능했고 완벽했다.
기획과 결론까지 1주일이 안 걸렸고 머릿속 계획대로라면 2주 안에 사업자등록증이 나올 상황이었다.
퇴사를 마음먹고 3주 정도를 식당이나 가게맥주할 장소를 물색했지만 근거 없는 권리금 2천만 원이 항상 꼬리표처럼 붙어있었다. 2천만 원이면 프랜차이즈가 나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2천만 원이면 다른 사업을 구상해 보는 것이 좋을 텐데. 내 주머니는 얇고 얇았다.
어차피 가게는 있다.
작업실로 사용하던 구례현상점을 집으로 옮기고 구례현상점을 선술집 같은 분위기의 가벼운 느낌의 밥집으로 셀프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비가 엄청나게 오던 2주간 페인트를 칠하고 말리기를 반복했고 다행히 곰팡이도 모두 잡았고 퀴퀴한 냄새 모두 잡았다. 그런데 큰 비용이 들 것 같았던 것들 중 딱 한 가지를 손볼 수가 없었다.
오래되고 낡은 PVC 수도관.
처음 목적은 가게맥주집이었기에 재료손질과 물이 그리 많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았고 인테리어에 대해서 직업적 입장에서 주변인들의 조언을 들었을 때, 수도관은 건들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나 낡고 오래된 수도관, 본인이 주인이 아닌 이상 엄청난 대공사가 될 수가 있으니 감당 안될 것 같으면 그냥 쓰길 권유했다.
그래. 200만 원의 저예산 창업에서 수도관을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예산 200만 원은 생각지도 않은 셀프인테리어와 집기 사는데 다 흘러가버리고 뜬금없는 복병이었던 후드와 가스공사에 또 200만 원이 추가되었다. 아.... 인생은 예상할 수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200만 원 저예산 창업 프로젝트는 2배로 부풀었고 사업자등록증의 필수 조건, 가스안전공사 필증 발급을 위한 검사는 3주째 소식이 없다.
최대로 예상했던 날짜보다 3주가 늘어지고 늘어져버린 채로 혼자서 가게를 지키고 있다.
사업자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손님을 부를 수도 없고 홍보를 대놓고 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이미지메이킹은 할 수 있다. 이것도 홍보라면 홍보겠지만....... 내가 타깃으로 삼았던 3-40대를 위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손님이 없지만 매일, 미래의 고객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음식을 만들고 또 만들어 사진을 찍고 설명을 올렸다.
자꾸만 늘어지고 쳐지는 마음을 다잡고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해 친구에게 넋두리도 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그중 한 친구는 혼자만의 개업식을 축하한다며 화환을 미리 보내주기도 했다. 화환에는 친구의 마음 같은 그런 글귀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들숨에 손님! 날숨에 재력! 돈 쓰기 힘들면 나한테 입금해!"
개업도 못한 가게지만 음식 만드는 것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주방에 익숙해지려 밤마다 출근하는 것처럼 준비하고 준비했다. 한참을 정리하다 보니 가게문밖에 혼자 덩그러니 서있는 친구의 고마운 화분에게 미안했다.
새로운 화분에 막 옮겨진 듯, 안쓰럽고 애처로운 고정끈이 슬프게만 보였다.
화분에게 말을 걸었다.
"더운데 네가 고생이 많다. 물이라도 줄까?"
사실은 물 주는 방법도 잘 모르고 언제부터 줘야 하는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떡갈잎 고무나무'라는 것은 알아냈지만 관리가 쉽다는 내용만 봤지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랐다.
가게 안으로 들어와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물청소를 해볼까 하는데 갑자기 수도가 빠져버렸다.
아니...... 세상에 놀랄 일은 더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수도꼭지가 빠진 수도관에서는 물이 계속 철철철 넘쳐나고 너무도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10초간 물벼락을 맞다가 정신을 차리고 내게는 늘 만능 맥가이버 같고 산타클로스 같은 동생에게 전화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을 대충 설명했더니 당장에 달려오겠단다.
"누나? 이게 뭐야? 하하하하핳......"
"그러게. 나도 이 상황이 너무 웃기다. 하하하핳."
"혹시 대박 나려나?"
동생은 수도꼭지 밸브가 깨졌다고 생각했단다. 근데 물이 샘물 솟든 솟아나는 상황에... 우리는 한참을 웃다가 수도부터 잠그기로 하고 여차저차 부분적인 해결을 하고 아침에 배관기술자를 부르기로 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뒤늦게 남편이 달려왔다. 가게가 잘돼서 지분정리를 한다면 아마도 남편보다 동네 동생을 우선순위로 둬야 할까 보다.
일요일 아침, 근처에 사는 아는 배관기술자가 한걸음에 오셔서 PVC전용접착제로 해결을 했다.
앞으로 종종 생길 수 있는 일이니 요긴하게 사용하라면서 남은 PVC접착제를 남겨두고 가셨다.
월요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스안전공사에서는 연락이 없고 찾아오는 손님도 손님을 부를 수도 없지만 나는 밥상을 차리고 있다.
만든 지 4일 된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50명을 넘었다. 한편으론 씁쓸하다. 사람들의 관심이 참 단순했구나 내가 너무도 사람들 마음을 몰랐었나. 무심한 듯 가게를 둘러보다가 가게 한편에 무드등(Life of Pi)이 보인다.
파이이야기 참 재밌었는데, 인생의 씁쓸함과 현실의 괴리, 격차를 체감 중이다.
창업을 하며 또 다른 어른의 세계를 배워간다.
어른이었던 것 같고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아직도 배울게 많은 불혹이다.
수도관이 뽑혀서 한참 어이없다가 주변에 말했더니 창업준비하고 인테리어 하면서 수도관 터지는 일은 종종 있다고 하네요. 샘물처럼 솟아나던 수도꼭지 뽑힌 수도 덕분에 한참 웃었고 사업자등록증도 안 나온 가게에서 대박 나려고 물이 터졌나 보다 이러면서 웃어넘겼습니다.
모두들 힘들고 어렵다는 이 시기에 창업을 하고 있는 제가 너무 막무가내인가 싶지만 꿈을 잃는 것보다 목표에 가까이 가는 삶을 살고 싶기에 하나씩 도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