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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석 Myste Lee Jan 28. 2016

우리의 내일은 당연하지 않다.

괜찮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Relationship)

아침에 일어나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을 만난다. 가끔 그 사람에게 잘 잤어?라는 말이 낯설다. 집을 나서서 우리가 속한 다른 곳으로 향할때 길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 사람들을 기억하진 못한다. 우리가 가야 할 곳에 도착했을 때 어제 본 사람들을  또다시 마주한다. 좋은 사람이든 싫은 사람이든, 우리가 그곳에 가면 항상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종종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른다. 또 그것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인지 못한다. 우리는 자주 만날 수록 그 사람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을수록 내가 간다면, 내가 있다면, 그 자리에 거기 그대로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우리는 우리라고 부른다.


8월  4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결혼 3개월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는 많이 떨리고 있었다. 장모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위독하시다고 했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달랬지만 달래는 내 목소리도 떨려왔다. 아내의 목소리가 가라앉았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긴장되었고 액셀을 꽉 눌러 속도를 높였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가슴속에서 외쳤다. ‘안됩니다 장모님''


아내를 처음 만난 장소는 회사였다. 이제 막 취직한 신입사원. 새내기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나타난 나에게 아내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아내에게 내가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겼고, 일을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난 후부터 간단한 대화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자동차 사고가 났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나는 그 병원에 매일 출근했다. 공식적으로 사귀지는 않았지만, 아내의 주변 사람들은 다 눈치를 챘다. 내가 아내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리고 의구심을 갖던 아내도 나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매일 출근하던 그 병실에서 처음 장모님을 뵈었다. 온화한 미소, 잔잔한 웃음소리, 곁에만 있어도 화사함이 묻어나시는, 소녀 같은 분이셨다. 전혀 의도하지 않는 만남이었지만, 자연스러웠고 자신의 첫째 딸을 매일 보러 출근하는 나를 예뻐해 주셨다.


우리는 비밀연애를 했다. 회사의 특성상 소문이 나면 좋을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데이트는 늘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한 사람이 먼저 올라가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후에 올라오는 방식을 취했다. 누군가에게 숨긴다는 것이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숨긴다라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꽤 오래 비밀 연애를 유지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힘듦을 겪어 내야만 했다.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자꾸 시간을 흘려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모님이 참 답답했을 거다. 첫째 딸을 붙잡고 놔주지도 않고, 데려가지도 않는 이상한 상태에서 3년을 머물러 있었으니까. 싫은 소리 한번 할만한데 하지 않으셨다. 한 번이라도 나에게 언제 데려갈 거냐 라고 물어보실 수도 있지만, 내 맘이 불편할까 봐 묻지 않으셨다. 묻는 대신, 근처에 갈 때마다 정성으로 만들어 주신 케일 주스로 응원하셨다. 오히려 나를 가끔 힘들게 하는 건 나 자신이었고, 또 아내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믿음을 보내주셨던 분은 장모님이셨고, 걱정을 하시는 만큼,  결혼을 가장 바라고 또 바라시던 분이 장모님이 셨다. 결국 양가에서 결혼 허락이 떨어졌고 우리의 길고 긴 비밀연애도 끝이 났다. 서로의 손을 잡고 걸어 다녔고, 함께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장모님이 바라시던 결혼을 딱 3개월 남겨놓은 밤이었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쫓아 들어 갔을 땐 이미 아버님도, 아내도, 그리고 4명의 처체, 처남도 울고 있었다. 장모님은 수술 중 이셨다. 나는 수술실 앞에 있는 수술 중이란 단어가 그렇게 차갑고 두려운지 처음 느꼈다. 뇌출혈. 어머님의 병명이었다. 나는 이 세 음절의 단어가 너무 무서웠고 충격이었다. 어머님은 이틀 전에 나의 생일이라며, 미역 반 물 반의 어마어마한 미역국을 끓어주셨다. 더  먹을래?라는 말에 네!라고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며 두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나를 바라보시던 미소가 너무나 생생했다. 그리고 전날 밤에도 통화했고, 몇 시간 전에 아내에게 집에서 보자고 하셨는데, 수술실에 계셨던 것이다. 나는 서둘러, 의사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뇌출혈이 어떤 질병인지를 물었고, 아내에게 거짓말을 했다.  괜찮아지실 거라고, 우릴 두고 가시지 않을 거라고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어머님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8월 5일. 나는 문이 열릴 때마다 장모님 곁으로 갔다. 내 손을 잡아 주시던 손을 주물렀고, 차가워진 발을 매만졌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던 장모님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고, 장모님 특유의 웃음이 계속  떠돌아다녔다. 아내와 그리고 식구들은 “엄마 일어나”를 외쳐댔고, 나는  가슴속으로 ‘이렇게 가시면  안 된다’라고 되뇌고 또 되뇌었다. 이제 사위노릇을 하고 싶은데, 결혼식 장에서 아내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절하고 싶은데, 지금까지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고기도 구워먹고, 여행도 다니고, 손주 손녀도 안겨 드리는 기쁨을 드리고 싶은데, 어머님 안돼요. 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기도했다.


8월 6일. 어머님이 떠났다. 우리 모두의 곁을. 반 평생을 함께한 남편의 곁을. 100번 불러도 그리울 딸과 아들의 곁을, 100번을 더 불러주셔야 할 사위의 곁을 떠나셨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어머님을 보낼 수 없어 목놓아 울었다. 울고 또 울고 또 울었다. 내 슬픔보다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이 전달되어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가족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이었다. 나는 겨우 3년을 함께했지만, 그들은 적어도 30년을 혹은 지금까지 평생을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가슴속에 새겼다. 나는 첫째 사위다. 이 사람들은 전부 내 가족이다.

처제들과 처남은 자신들의 요 며칠을  되돌아보며 울었다. 미루다 사드렸던 옷은 한 번밖에 입질 못하셨다고 울었고, 얼마 전에 엄마에게 화를 낸 아들은 미친 듯이 아파했다. 사랑한다 더 많이 말해주었어야 하는데 해주지 못해서 후회했다. 더 많은걸 함께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다는 것을 통감했다. 그동안 미루어 왔던 모든 것에 대한 후회를 했다.


8월 8일.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은 떠나셨는데, 어머님의 자취는 그대로였다. 떠나신 게 믿어지지 않았고, 아직도 조금 있으면 어머님이 들어올 거 같았다. 우리가 당연히 여긴 내일이 여기저기에 아직도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고 말하는 거 같았다. 우리는 착각했다. 내일도 어머님이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우리는 오해했다. 오늘과 전혀 다르지 않은 내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거라고. 그런데 틀렸다. 내일은 당연하지 않다. 우리의 내일에 어머님은 계시지 않았다. 내일 하려고 미루어둔 모든 것들은 이제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내일부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머님을 가슴에 담고 잊지 않고 사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 모두에게, 어머님이 있는 내일은 없어졌다.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언제까지 내 옆에 있어 줄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가까운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에 집중하고, 관계를 깊에 만들어갈 사람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또 그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 받는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는 언제라도 할 수 있다면서, 수 많은 이유와 바쁨을 핑계로 지금 당장 오늘, 가까이 있는 사람과 보내야 할 시간을  흘려보낸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한 것은 언제였을까? 내 곁에 소중한 사람을 뜨겁게 안아준 것은 언제였을까? 고마운 것을 고맙다고 말한 것은 또 언제였을까? 함께 오붓하게 가족들과의 시간은 언제였고, 어렸을 적 보여드렸던 그 수많은 재롱들을 보여준 적은 또 언제였을까? 보고싶다라 말만 하며 찾아간 적은 언제인지, 가까운 사람에게 내 마음을 표현한 것은 또 언제인지, 아주 작은 마음의 표시를 한 것은 또 언제인지.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당연하지 않은 내일에 오늘 당장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대단하지 않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미루지 말고 해야 할 것들을. 깊게 깊게 고민하고 하나씩 하기로 마음먹었다.


씨앗을 심어놓고 잊어버렸다. 거기서 자라 날줄 알았는데 물을 주지 않아 썩어버렸다. 이제 물을 주지 못했다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내일은 당연하지 않다. 그리고 사랑은 미루는 게 아니다.


장모님.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글_사진_Myst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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