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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s Aug 16. 2023

그릇과 조용한 카페

광복절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이며 올해로 해방을 맞은 지 78년이 되었다.


겨우 78년. 해방일이라 함은 먼 옛날 창세기 전의 이야기 같건만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100년도 안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내가 만약 2세대 일찍 태어났다면 2차 세계대전, 일제강점기, 6.25 등 모두 겪었을 수도 있었을 테니 지금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왜 그 시절 이야기를 하나도 하지 않으셨을까. 생전에 많이 물어볼 걸 좀 그랬다. 그분들의 이야기들이야말로 아래로 아래로 전달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 텐데.


그렇게 감사한 마음만 간직하고 해방 기념일이라고 해서 딱히 뭘 하진 않았다. 갑자기 공돈이 생겨서 그 돈을 쓸 생각에 전날부터 설레어했던 게 전부다. 나에겐 몇 가지 로망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집에 있는 식기류를 ㅇㅇㅇ브랜드 또는 같은 스타일로 통일하는 것인데, 그 브랜드 그릇의 가격이 상당해서 쉽게 바꾸질 못했었고 그동안 마음에 차는 것도 딱히 없어 10년째 스웨덴 여행에서 사 온 그릇들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통장에 선물같이 꽂힌 돈을 보곤 당장 사이트에 들어가 무얼 살까 신나게 골랐고 드디어 광복절을 맞아 해방된 심정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매장에 달려가 직접 구매를 했다. 그런데 막상 그릇을 사고 나니 참으로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내 로망이란 것이 이렇게 쉽게 이룰 수 있는 거였구나. 별 것 아닌 일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년 동안 나의 벌이는 점차 늘어났고 그와 비례하게 씀씀이도 커져서 이제는 그 그릇들이 그다지 비싸게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동안 그 그릇들 정도는 세트로 맞추어도 무리가 되지 않았을 텐데 눈앞의 공사다망한 일들을 해결하느라 로망이라 여겼던 것들은 실체와는 다르게 점점 크게 부풀어 올랐나 보다. 고작 30분이면 이룰 꿈. 이루지 못해서 점점 거대해져 가는 꿈은 무엇일까. 


그릇을 사고 오빠와 근처 조용한 카페에 왔다. 사진가가 운영하는 카페라 갈 때마다 다른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음료를 주문하면 사진을 한 장씩 준다. 어제는 근사한 에펠탑 사진을 받아 음료를 마시는 내내 싱글벙글. 집에 돌아와 테이블 앞 벽에 붙여두고 오빠에게 내년엔 함께 저곳에 가자고 얘기했다. 사실 나의 로망은 아이슬란드의 빙하와 화산을 보는 것인데 뭐 아무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둘 다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소망은 절벽 끝 바위 사이에 난 불로초 같은 것이 아니라 산책길 언제든 꺾을 수 있는 들꽃이니까. (그렇다고 막 꺾으면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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