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브레송의 책을 마침내 다 읽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브레송의 영화를 한편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쓴 글은 브레송 감독이 그 자신을 위한 일종의 영화 제작 교본, 전투 매뉴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감독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는지 그의 철학이 무엇인지 먼저 알고 나서 영화를 보는 방식도 괜찮은 것 같다. (고전에 한해서..) 방금 어느 사제의 일기를 겨우 찾아서 보다가 글을 쓴다. 사제역은 그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모델' 즉, 일반인이 맡았고 덕분에 전문 배우와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의 앙상블이 굉장히 미묘하고 독특했다. 그 둘의 연기가 확연히 대비되므로 비교하기 좋은데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쁜지는 아무래도 취향의 영역인 것 같다. 고전 영화보다는 90대 이후의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자란 내겐 배우의 연기가 몰입이 더 잘 되었다. 브레송은 대본을 보고 짜인 대로 연기하는 것은 연극의 재현일 뿐이라고 했지만 요즘 배우들은 캐릭터를 분석하고 그에 동화되어 연기하니 그가 생각하는 '모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고전 영화를 왜 이렇게 많이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안 봤던 고전을 다 보자!'라는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 하나를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그 시대의 영화만 보게 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50, 6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아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표현 기법이나 미학적인 측면에서 신선하고 독특한 것들이 더 많다. 그런 작품들에 영향을 받은 감독들이 그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참조하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에 접목시켜 세련되게 발전시킨 것 같다. 고전 영화들은 다듬어진 보석이 아니라 원형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때로는 원석이 더 아름답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발전시켜야 할 나만의 개성은 무엇일까? 내 안에 있는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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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좋은 꿈을 많이 꿨다.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있어서 어서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꿈은 불온한 마음이 끼어들 틈 없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를 품고 하루를 보내게 해 준다. 덕분에 오늘 아침은 기분 좋게 많이 뛰고 많은 땀을 흘리며 시작했다. 남은 걱정도 땀구멍으로 다 배출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돌아와 많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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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전 직장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며 이제 전 직장이 정말 나와는 완전히 상관없는 곳이 되어버렸다고 느꼈다. 밖에 한 발자국만 떨어져 나와서 보면 일이든 사람 관계든 세상 속에 아주 작은 점일 뿐인데 어떤 그룹에 속에 있으면 그 그룹이 내 세상의 전부가 된다. 내 세상의 크기가 그만큼 작아지는 것이다. 그 작은 세상은 조금의 불만과 불신으로도 가득 차 버린다. 이 얼마나 큰 손해인가. 그게 불과 몇 개월 전의 내 모습이었니 퇴사는 정말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은 족쇄일 뿐이다.
나는 더 멀리 가고 싶다. 이 세상을 다 겪어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