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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s Mar 26. 2023

고향에

왔다. 엄마가 입으면 배꼽이 훤히 보이는 손바닥만 한 옷을 잠옷으로 입으라며 내주신다. 쿠팡으로 주문했는데 이렇게 작을 줄 몰랐단다. 가슴에는 미드나잇 인 파리라고, 그 밑엔 작은 글씨로 파리는 빗속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적혀 있다. 이걸 고른 엄마가 너무 귀엽다.


역시나 쿠팡으로 주문했다는 마사지기로 목과 어깨를 풀면서 고꾸라지듯 잠들었다. 이 외에도 곳곳엔 쿠팡의 흔적이..엄마의 별명을 쿠팡녀로 지어줘야겠다. 오늘따라 남편의 숨소리가 너무 커서 새벽에 깼다. 운전하느라 많이 피곤했나 보다. 깰까  몸을 살짝 뗐는데 곧바로  배에 손을 얹는다. 잠든 와중에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귀찮으면서도 너무 귀엽다.


오늘 또 한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결혼식은 역시 만고 쓸모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다가 식이 끝날 무렵이 되니 어느새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주례사는 주기적으로 들어주면 결혼생활에 아주 큰 도움이 되니 밥만 먹고 오지 마시길! 부부 위기 상담 같은 거 받으러 갈 일이 없을 거예요.


신랑 신부가 서로를 위해 준비한 이벤트들을 보고 있자니 다 큰 어른 둘이 뚝딱이며 같이 연습했을 모습이 상상이 가서 너무 귀엽다. 어찌 보면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 전체가 결혼식인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식 그 자체보다 준비하던 시간들이 더 기억에 남고 소중해진다. 부부로서 함께 치르는 첫 프로젝트니까 말이다. 출발하는 부부를 보면 응원의 마음이 샘솟는다. 어린아이를 볼 때처럼 무조건 무조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드는 것이다.


고운 한복을 입고 처음 보는 내게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신부의 얼굴에서 5년 전의 내 모습을 본다. 나는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어서 끝내고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은데 이 신부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식 끝나고 가락시장 가서 회랑 맥주 먹었다.


오늘은 귀여운 순간이 많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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