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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Nov 15. 2021

바둑이와 나 7화

부활

*기억에 의존한 글이므로 과장이나 구라가 섞여있음.


그날 저녁에 부모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한 시간 넘게 기도를 했더니 과연 하느님은 내게 계시를 주셨다. 어느 순간에 어떤 형상이 떠올랐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 그 모습은 바보처럼 행동하는 내 모습이었다.      


'주말 노동을 단축하려는 꼼수부터 시작해서 사고 앞 뒤 정황을 다 설명했다간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크게 울고 지 혼자 놀란 바둑이, 무자비한 도로, 그리고 난폭한 자동차, 이렇게 핵심 단어를 울음 중간중간 끼어 넣어 바보처럼 행동하면 목숨은 부지하리라.’는 메시지였다. 만약 한강은 왜 갔냐고 추궁하신다면 ‘개들이 수영을 워낙 잘해서 한강물에서 실컷 놀라고 데려갔다.’하고 말하라는 것까지 자세히 일러 주셨다. 감탄했다.       

난 그 계시를 되뇌고 또 뇌 새김질해서 머리에 단단히 붙들어 매고 부모님을 맞았다. 

방에 들어서 널브러져 있는 바둑이를 본 부모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덩달아 나도 입이 벌어졌다. 특히, 어머니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드디어 내 생사가 결정될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일단 심호흡을 한 번하고 방바닥을 치며 아이고, 아이고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그리고 생뚱맞은 얼굴로 날 보시는 부모님을 향해 하느님이 던져 주신 그 단어들을 막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단어가 엉키더니 나도 모르게 자동차란 단어가 먼저 튀어나왔다. 아, 이게 아닌데 하고 다시 단어 순서를 정리하려는데, 부모님은 내 첫마디 후 아무 말 없이 바둑이에게로 돌아앉아 버렸다. 그리곤 이어 내뱉는 내 단어들은 듣는 건지 어쩐 건지 둘이서만 뭐라고 속삭였다. 부모님 등 뒤에서 이말 저말 툭툭 뱉어내며 방바닥만 치고 있는 내가 왠지 어색해서 슬그머니 앞으로 기어가 두 분의 눈치를 살폈다. 두 분은 태어나 처음 보는 심각한 얼굴로 바둑이만 바라보고 계셨다. 더 이상 어색한 통곡을 계속하는 건 뭔가 이상한 짓 같아 뚝 그쳐버렸다. 부모님의 그 이상한 침묵은 저녁 밥상에서도, 잠자리를 펼 때까지도 계속됐다. 매는커녕 혼나지도 않고 지나가는 그 조용한 시간은 다행스럽기보다 뭔가 더 불안하고 어색했다. 죄짓고는 못 사는 것인지, 그날은 난 누가 불러도 화들짝 놀라 엉뚱한 대답이 튀어나오고 뭘 하나 시켜도 어버버 거리며 허둥댔다. 흉내가 아니라 진짜 바보가 된 것이다.      


마침내 집안이 까만 정적에 쌓이자 마음이 놓이면서 급격히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도 오늘 맞을 걸 내일로 미룬 것 같아 찜찜한 데다 내 생사 결정은 미뤄졌지만 깜깜한 그 밤이 바둑이의 생사를 결정할 것 같아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그러다 앉은 채로 잠이 들었는지 몸이 붕 뜬 느낌에 눈을 뜨니 어머니 품이었다. 입학 후 어머니 품에 그렇게 포근히 안겨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모처럼 품을 내주신 그 순간 잠결에 어머니 젖가슴으로 파고들었다가 아차 싶어 잠이 확 깼다. 나도 모르게 유아 때 버릇이 튀어나와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이다. 동시에 등짝을 오므렸다. 손바닥 스매싱이 날아올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로 스매싱 대신 어머니의 따뜻한 손바닥이 내 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이상한 밤이었다. 하루 종일 지옥을 왔다리 갔다리 했던 나는 어머니의 등 마사지 덕분에 아버지 코 고는 소리의 진동 속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정작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은 건 집 밖에서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가 바둑이 집 앞에서 자고 있었나 보았다. '쩍' 소리와 함께 번쩍하고 섬광이 일더니 까만 하늘 아래로 어머니의 화난 얼굴이 보였다. 이번엔 질질 끌려가 방안에 팽겨 쳐졌다.        


한강이 보였다. 그리고 바둑이와 떨거지들과 나와 친구들이 함께 강을 헤엄쳐 건너고 있었다. 그때, 우리를 누군가 빠른 속도로 제치고 나아갔다. 그는 슬쩍 뒤돌아 씩 웃더니 이번엔 뒤로 헤엄쳤다. 조오련 선수였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트럭으로 변하도니 우리에게 고속 헤엄으로 달려들었다. 그 속도가 엄청나서 그의 주위에 파도가 일기 사작하더니 일순간 해일로 변해 우리를 덮쳤다. 이런 앞뒤 없는 황당한 꿈이 그날 밤 내내 이어져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바둑이가 바닷물 위를 달리는 꿈도 꿨다.        


다음날 아침엔 나도 마이신을 먹었다. 열이 펄펄 끓었다. 

덕분에 또 안 맞게 된 데다 학교도 안 가게 된 건 정말 다행이었다. 바둑이를 저렇게 두고 학교를 간다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라 어떻게든 학교를 빠져야 했는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핑곗거리를 제대로 궁리 못했기 때문이다. 텅 빈 마당에 나와 떨거지들만 남아 바둑이 옆을 지켰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가슴이 내려앉다가도 숨을 쉬느라 아직 배가 들쑥날쑥하는 건 또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8시간에 한번, 내가 약 먹는 시간에 맞춰 바둑이에게 약을 먹였다. 오후가 되자 친구 놈들이 한 둘씩 찾아왔다. 엄청난 내 잘못을 설명하기도 싫은 데다 기운도 없어 입 다물고 있는 내 옆에서 녀석들은 몇 시간 동안 쭈그리고 앉아 바둑이를 측은하게 바라만 봤다. 간혹 라면땅이나 알사탕을 바둑이 앞에 놔두고 가는 멍청한 놈들도 있었는데, 뭐라 욕하기도 귀찮아 그냥 내버려 뒀다. 그러나 바둑이가 혀를 입 옆으로 길게 내놓은 모습을 흉내 낸 한 놈은 기어이 뒤통수를 맞았다. 저녁밥 때가 되자 친구 놈들을 잡으러 온 부모님들은 씩씩거리다가 축 늘어진 바둑이를 보고는 한 마디씩 했다.      


“어머.. 어쩌다 이 지경이 됐다니?”

“어라? 얘가 왜 이래? 다 죽어가네?”

“어이구. 용케 안 죽고 버티는구먼.”

“야야. 살긴 글렀다. 얼른 가 파묻어라. 좀 크기나 해야 잡아먹지.”     


무슨 시장바닥 생선 보고 말하듯 툭툭 내뱉는 말들에 부아가 치밀었다.      

기운만 있었으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내쫓아 버렸을 텐데, 이상하게 오기도 생기지 않아 그냥 마당에 소금만 왕창 뿌렸다. 내겐 일생일대의 끔찍한 비극이고 초대형 사건인데 동네의 어제는 아무 일 없이 지나갔나 보았다. 오는 사람들마다 바둑이를 보고 놀라는 걸 보니 어제 우리 바둑이의 사고는 복덕방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들에게도 얘깃거리조차 안 됐던 모양이었다.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져가는 시간을 보내는 나와 바둑이랑은 아무 상관없이 동네의 시간은 여느 때와 똑같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자 몸서리 쳐지게 서러웠다. 


나도 기운도 없고 머리도 아파 바둑이 옆에 누웠다.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갑자기 애국가가 생각났다. 


‘여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 였나? 


머리가 아파선지 원래 머리가 나쁜 건지, 매일 학교에서 부르던 애국가 가사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름의 끝자락이었고 하늘은 그새 높아져 있었다. 그러나 아직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동네 녀석들 떠드는 소리도 여전해서 나랑 우리 바둑이만 제일 불쌍했다.

      

이제 곧 죽을 거란 동네 어른들의 저주 같은 예언을 비웃듯 우리 바둑이는 이후로도 며칠을 더 우유와 마이신만으로 죽지 않고 끈질기게 버텼다. 집에서 하는 기도만으론 모자랄 것 같아 평일에도 교회에 갔다. 

목사님은 내 진지함을 대견해하시며 갑자기 성실해진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난 그간의 비극을 한참 동안 설명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네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란다.”     


아뿔싸. 그럼 그렇지. 사고가 나던 날, 뚝방을 기어오르며 한 기도가 그래서 안 먹혔던 것이었다.     

나는 목사님 앞에서 내 머리를 마구 쥐어박았다. 아무래도 난 머리가 나쁜 놈이란 확신이 들었다. 목사님이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내 머리 어디 한 군데쯤은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난 엉뚱한데다 기도를 한 셈인데,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려 처음부터 다시 할 수도 없고, 몰아서 다시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감이 안 섰다. 나쁜 머리란 걸 안 이상 더 계산해봐야 소용없으니 무작정 매일 나와 한 시간씩 기도하기로 목사님 앞에서 약속했다. 그러자 목사님은 지끈거리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바둑이를 위해 같이 기도해 주시겠다고 했다. 어른이자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신다니 확실히 든든했다. 그 후로 친구들은 진지하게 기도하고 목사님과 마주 대화도 하는 내 모습에 놀랐는지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하자는 말도 못 붙였다. 하나님이 내 진심을 알아주시길 바라며 교회에서 나눠주는 빵과 과자도 안 받아먹는 내 모습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바둑이가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내가 교회를 착실히 다니는 것 말고 우리 집에도 변화가 생겼다. 

늘 제각각, 제멋대로, 모래알 같던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단합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6.25 때 피난 오신 우리 어머니는 이북 강원도 출신답게 동네 야산에서 이름 모를 약초를 뜯어다 바둑이에게 달여 먹이고, 아버지는 비록 술김이지만, 저녁 퇴근길에 비싼 사골 국을 사다가 먹이기도 하셨다. 물론, 다음 날 술 깨면 ‘저노무 새끼가 빨리 뒈지던가 하지 속만 끓인다.’는 험한 말로 전날의 나의 존경을 홀랑 날리셨고 누나는 지가 싫증난 인형들을 바둑이 옆에 갖다 놓는,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 짓을 했다. 어쨌든 고성과 그릇 깨지고 냄비 집어던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던 집안이 그때처럼 조용하고 차분하고 진지한 적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바둑이가 숨 쉬는 것도 버겁고 나도 마음 편히 숨 쉬지 못했던 여름 더위가 거의 다 가라앉을 때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교회에서 준 빵은 물리고 우유만 고이 들고 와 바둑이 앞에 앉았다. 우유를 숟가락에 따르고 마이신을 탄 후 바둑이 입을 벌리려는 순간, 바둑이의 눈동자가 또르륵 움직였다. 난 기겁을 하고 뒤로 자빠졌다. 보름 넘게 두 눈 감고 죽은 듯이 누워있는 모습만 봤던 터였다. 믿기지 않아 이번엔 자리를 옮겨 앉아 바둑이를 불러보았다. 비록 고개는 꼼짝을 못 했지만 바둑이의 눈동자가 날 쫓아 움직였다. 아, 이게 꿈인가 싶어 다시 자리를 옮기고 또 불러보고 이곳저곳으로 옮겨 앉아 불러보았다. 아직 흐리멍텅하지만 동그란 바둑이 눈은 분명히 날따라 움직였다. 


“바둑!! 살았구나? 나야 나. 나 알지?”

   

감격에 겨워 삑사리 나는 목소리로 내가 말하자 바둑이는 눈으로 말했다.      


‘나 너 아니까 그만 옮겨. 눈 굴리기 귀찮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감격스러워 하마터면 안아 들고 뒹굴 뻔했다. 부러진 곳이 더 상할까 쓰다듬지도 못하고 지켜보기만 보름 넘는 시간이 세월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쓰다듬지는 못하겠고 조심스럽게 머리에 손을 갖다 댔다. 손이 가면 미리 눈부터 감았다 손을 떼면 다시 눈을 뜨는 개의 습관이 무척 사랑스럽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머리에 손을 댔다 뗐다 했다. 그러나 그것도 바둑이가 힘들 것 같아 몇 번 하다가 그만뒀다. 


난 바둑이가 눈을 뜬 그 순간부터 그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부모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바둑이가 눈을 떠 눈동자를 굴리는 그 모습만큼은 다 같이 감격해하고 눈물 흘리며 바라보길 바랐다. 그 시간이 대략 오후 다섯 시 전후였으니 부모님을 기다리는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을 텐데 빨리 바둑이의 대견함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조바심 때문에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또 다른 충동이 일어났다. 눈 뜬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만 빨리 일어나 걷고 뛰기를 바랐던 그 충동은 빨리 같이 놀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우선, 우리 바둑이가 곧 죽을 거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동네 어른들, 우리 바둑이를 파리 같은 하찮은 동물로 취급한 그 어른들 집에 바둑이를 이끌고 쳐들어가고 싶은 것이었다. 그들 집에 쳐들어가 보란 듯이 집 안을 뛰어다니며 바둑이의 건재를 똑똑히 보여주고 싶어서 어서 빨리 일어나 걷고 뛰기를 기도하며 그날을 별렀다. 쳐들어갈 집 순위를 정하기도 했다. 사고가 있던 그 다급했던 날, 나를 속 터지게 했던 범생이네 집이 1순위였다가 범생이가 내게 딱지며 구슬을 새걸로 갖다 바치기도 했고 그 애 아버지는 그래도 내게 마이신을 떠올리게 한 이상, 정상 참작하여 목록에서 빼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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