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Feb 14. 2022

바둑이와 나 9화

귀환

아버지는 전라도 어딘가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그곳에서 중학교까지만 마치고 혼자 상경해 이후로 평생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다 헛수고였다. 동생들은 성인이 되고서도 어른이 안됐다. 술만 먹을 줄 알았지 어떤 자신의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니 늘상 아버지를 들들 볶았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사고를 치고 다녀서 그 뒷수습은 늘 아버지 몫이었다. 툭하면 술 취한 몰골로 시장에 나타나 어머니한테도 돈을 뜯어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모님은 돈을 못 번 게 아니라 허구한 날 뜯겨서 가난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동생들 사고 수습을 하느라 경찰서를 다녀온 날엔 여지없이 어머니와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술이 깬 다음날이면 다시는 동생들과 인연을 끊고 사시겠다고 이를 갈았다. 그러나 그 다짐은 얼마 가지 못했고, 어느 날엔가 다섯째 동생이 열차사고로 다리와 팔을 잃었을 때, 또 모은 돈을 다 털어 병원비와 쪽방을 마련해 주셨다. 내가 경찰을 낯설어하지 않는 건 본인이 만취한 상태로 선로에 뛰어들었으니 어떤 보상도 없다는 경찰의 말을 믿지 못한 아버지가 사고 지점을 수색하다시피 돌아다닐 때, 있는 짜증을 다 내는 경찰들 앞에서 재롱을 떨며 관심을 돌렸던 경험이 있어서일지 모른다. 


내 가족부터 살고 보자고 조른 어머니 애원이 처음 이뤄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어머니는 당연히 아셨을 테고 역시 나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석탄가루 날리는 수색에서 청담동으로 이사 온 이유도 강남 개발이라는 허울 말고 또 있었다. 강남이 개발되면 보상을 탈 요량이었다가 사기꾼에게 속기 전에 이미 동생들에게 다 털리고 쫓겨난 것이다.   


아무튼, 내가 집 마당에서 단식농성을 할 때 어머니가 전해 준 아버지의 만행의 이유는, 바둑이를 볼 때마다 열차사고를 당한 동생이 생각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인 내가 별 뚱딴지같고 해괴한 그 ‘이유’를 납득할 수는 없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절룩거리는 바둑이를 보고 동생이 생각나 괴로웠으리란 상상은 고등학생쯤 됐을 때야 어렴풋이 했다. 어머니한테는 차마 동생네 한 번 가보자는 말도 못 하고 혼자 몰래 먹을거리와 용돈을 쥐어주고 오곤 했다는 말씀도 그 무렵에 푸념처럼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그때까지는 아버지에 대한 용서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바둑이가 없는 마당은 휑했다. 아무리 떨거지들이 천방지축 휘젓고 다녀도 휑했다. 걸음마 중인 새끼들이 뒤뚱거리고 자빠지며 아무리 재롱을 떨어도 마음이 휑했다. 아버지의 만행의 이유야 내가 이해하고 못하고 간에 바둑이가 없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실감할 때마다 몸서리가 처졌다. 어린 내가 그런 은하계 너머에서나 들을 법한 만행의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단식을 계속했다. 단식 사흘째가 되자 배는 밥 달라고 아우성이고 담 너머로 어느 집 음식 냄새가 나면 정신이 혼미해졌다. 난 그럴 때마다 도살장 한 구석에서 공포에 질려 있을 바둑이를 생각했다. 그러면 밥 생각은 싹 사라지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땐 이미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냥 밥을 먹는 게 바둑이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흘인가를 더 굶고 이후 며칠을 앓아누웠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때까지 내가 유난하다고 생각했는지 별 역정도 내지 않다가 내가 기어이 기절하고 눕자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앓아눕고 나자 집안 공기도 휑해졌다. 

속 모르는 떨거지들이 짖는 소리만 마당을 채웠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소리도 점차 줄어들었다. 아버지가 더 이상 개들에게 손대지 않았는데도 개들의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맨 처음엔 흰둥이가 보이지 않더니 또 언젠가부터 누렁이, 까망이도 홀연히 사라졌다. 당연히 놈들의 새끼들도 같이 사라졌다. 들어올 때 제 발로 들어와서 나갈 때도 제 발로 새끼들을 데리고 떠난 것이다. 그땐 놈들 중 가장 똑똑한 어떤 놈이 혹성탈출의 시저처럼 개들의 왕국을 건설하려고 무리를 이끌고 나갔으려니 했다. 아마도 대빵이 팔려 나간 걸 알고는 영특하게 곧 닥칠 자신들의 운명을 감지하고 떠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어른이 된 후,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생각도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난 후였다. 그보다 더 신기한 건, 바둑이가 낳은 새끼 두 마리는 끝까지 남았다는 것이다. 제 아빠와 정 붙일 시간도 없었고 심지어 떨거지들 젖을 빤 녀석들이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제 아빠를 기다린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마음 아팠다. 


가을이 무르익던 무렵엔 개판이던 마당엔 TV에서나 보던 황량한 서부의 흙먼지와 아버지가 뿜는 담배연기만 나부꼈다. 그리고 그해 겨울쯤 되선 나도 바둑이와 떨거지들의 기억도, 그리움도 옅어졌다. 문득문득 사무치게 그리워하긴 했어도 이내 다른 흥밋거리로 눈이 돌아갔다. 애는 애였다.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친구들과 구슬치기에 여념 없던 어느 날 오후. 

       

“어? 바둑이다.”     


친구 중 누군가 말했다. 거의 무심결에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바둑이가 서 있었다. 그 순간은 마치 데자뷰 같았는데, 작년 그 자리에서 어떤 놈이 내뱉은 외마디로 바둑이와 만남이 시작된 그날이 똑같이 재현되는 듯해서 순간 띵하고 어지러웠다. 이게 뭐지? 혹시 꿈인가 싶어 손을 뺨에 대자 시린 느낌이 전해졌다. 현실감이 들지 않으니 저게 그 바둑이인지, 남의 바둑 이인 지부터 궁금했다. 그런데... 어딘가 어정쩡하게 서있는 저 바둑이의 한쪽 다리가 굽어져 있는 걸 본 순간, 욱하고 눈물부터 핑 돌았다. 그래서 바둑이를 불러야 하는데 목이 메어 부를 수가 없었다. 더구나 빼싹 마른 몸에 퀭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는 것이 ‘너 나 알지?’ 하는 것만 같아서 배신에 대한 복수를 위해 온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 겨울 서부 황야처럼 흙먼지 휘날리는 마당에 눈빛 번뜩이며 노려보는 것이 딱 모자만 씌워주면 영화 ‘돌아온 장고’ 였던 것이다. 친구들도 빼싹 마른 바둑이가 낯설었는지 부르지도 못하고, 우리와 바둑이의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한참을 한쪽 다리로 서서 우리 눈치만 보고 있는 바둑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자 이윽고 내 입이 열렸다.


“너 바..바둑?”     


내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바둑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절룩거리며 쏜살 같이 달려와 나를 덮쳤다. 내가 놀라움과 죄책감에 눌려 부르기를 망설이는 동안  바둑이는 그저 내가 제 이름을 불러주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바둑이는 쓰러진 내 얼굴을 밟고 핥고 굴리며 말했다.  

    

“뭔데 안 부르고 지랄이야. 빨리빨리 불러야지, 응?”      


이제 제대로 뛰기 시작한 제 어린 새끼들이 달려와도 바둑이는 아랑곳없었다. 그저 혀로 몇 번 쓰다듬어줄 뿐 내 얼굴을 짓밟는데 여념 없었다. 그제야 친구들도 어색함을 털고 한데 어울려 뒹굴었다. 그리곤 난 내 몸을 바둑이에게 맡기고 어떤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바둑이를 안고 뒹구니 내 바둑이임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눈물이 마구 났지만 친구 놈들에게 보일 수는 없어서 간지럽다는 시늉을 어마하게 했다. 그렇게 바둑이에게 몸을 맡기고 웃는 척 울면서 어떤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왠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분명 작년에 겪었던 일의 반복 같아서, 만약 불가사의한 이유로 이미 경험한 일이 다시 재현되는 것이라면 이제 한강의 사고부터 바둑이가 사라진 날까지 다시 재현될 터였다. 그래서 일단 손모가지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집에서 목욕을 시켜야겠다고 다짐부터 했다. 그런데 바둑이가 아직도 다리를 절고 있으니 다시 재현은 안 될 것 같기도 해서 몹시 헷갈렸다. 


그렇게 한참을 뒹굴며 회포를 풀고 나니 비로소 대체 어떻게 돌아왔을까 하는 뒤늦은 궁금증이 생겼다. 영문도 모르고 팔려간 지 어언 넉 달. 도살을 당했어도 벌써 당하고 개고기가 됐어도 벌써 소화된 후 똥이 되고도 거름이 될 시간인데 어떻게 살아 돌아왔을까? 그러나 우리의 그 궁금증은 1초 만에 바로 풀렸다. 갈비뼈가 다 드러나도록 마른 몸에 덕지덕지 엉켜 붙은 털이 이미 내막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길게 생각할 것도, 어떤 이견도 없이 바로 ‘필사의 탈출’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탈출의 과정에선 논쟁이 있었다. 난 우리 바둑이가 개장을 이빨로 뜯어내고 탈출을 했을 거라고 했고, 친구들은 피 튀기는 살육의 현장에서 고기로 변하기 직전에 개장수를 물고 탈출했을 거라고 했다. 왠지 그 말에 공감이 더 갔지만 놈들에게 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그렇다면 개장수 집 애완견이 여자인데 아마 바둑이를 흠모하다 결국 이빨로 밧줄을 풀어주자 바둑이가 개장수를 물어뜯고 갇힌 모든 개들을 풀어 준 뒤 여자 애완견과 눈물의 이별을 한 후 탈출했을 거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드라마틱한 말 빨이었다. 역시 놈들은 크게 맞장구를 치더니 바둑이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결국 놈들은 귀한 쫀디기를 귀환한 영웅 바둑이에게 갖다 바쳤다. 그중 새로 이사 온 친구 놈 하나가 개 주제에 과연 어딘지도 모를 그 먼 곳에서 산은 그렇다 치고 강을 어떻게 건너왔냐고 의심을 했다가 이미 한강에서의 개의 수영실력을 본 우리들에게 저능아 취급을 당했다. 아무튼 그날, 유리는 바둑이를 옆에 앉혀 놓고 우리끼리 산 넘고 강 건너 집으로 돌아온 영웅담을 이어가느라 해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정작 바둑이는 지루한지 연신 하품만 해댔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둑이와 나 8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