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다.

나를 잃다.

by 미스틱

오래전 이혼 후,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자유,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자유, 누구든 만날 수 있는 자유, 몇십 년 후의 삶도 나 하나만 건사할 계획만 있으면 되는 간편함을 누리며 기꺼이 솔로의 삶을 선택한 나를 칭찬했었다.


그러나 인생에 공짜는 없는 법. 그 자유를 누리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소소한 일상을 나눌 사람을 약속 없이 만날 수 없다는 점, 내가 말하지 않아도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무슨 일로 고민하는지 알아줄 사람이 없다는 점, 곤란에 처했을 때 의논할 사람 없이 모든 막막한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한다는 점 등. 그런 단점들을 다 모아 섞어 놓으면 외로움의 모습이 되어 때때로 나를 잠식시켰다. 외로움만 잘 다스리면 가치로 볼 때 독거의 삶이 훨씬 낫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이 따로 놀아 분열적 생활이 이어졌다. 관계를 단순화시켜 몇몇의 지인만 남기고 모든 연락을 끊었으면서 취미 모임이나 사교 모임 따위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만남을 갖고 나면 허탈감에 동굴 같은 방구석을 뒹굴었다. 결국 그런 모임조차 단절했다.


사실, 독거를 시작한 몇 개월은 자유를 만끽하느라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살림이라는 것이 서툴고 어색해서 당황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내 서툴고 어색했던 시간도 낭만처럼 즐겼더니 이혼을 걱정했던 주위 사람들은 나를 솔로 체질이라고 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만끽했던 자유의 크기만 한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한 건 솔로 생활 반년이 채 안 돼서였다. 일을 마치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결혼 생활 때는 지지고 볶는 집이 싫더니 이제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이 싫어졌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갈 땐 시커먼 동굴이 날 집어삼키는 기분이었다. 출근할 때 불을 다 켜놓고, 보지도 않는 TV를 켜놓아도 귀가 기피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때문에 집 앞 술집에서 음악과 맥주 몇 잔으로 마음을 다독인 후 귀가하는 게 일종의 루틴이 돼버렸다. 그런 날들이 길어지고 몸도 이상 신호를 보내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내 마음을 살폈다. 분명 외로워하는 거였다. 본디 독고 다이 기질인 데다, 내 삶에서 업무 협업 때 말고는 사람을 그리워한 적이 없기도 했거니와 여자도 어쩌다 보면 생겨있어서 외로움 따위는 모르고 살 줄 굳게 믿고 살았기 때문에 엄청 당황스러웠다.


솔로의 삶이 칠 년쯤 접어들었을 때, 어느 정도 외로움에 익숙해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익숙해졌다기보다 무언가에 몰두하느라 외로움을 잠시 잊은 거였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였는데 점점 재미가 붙더니 종일 문장과 소재로 머리통이 꽉 차있었다. 또 하나는 영화 감상이었는데, 그전엔 그냥 감상이었다면, 독거인이 되고부터는 어쭙잖은 분석까지 하며 파고들었다. 어쩌면 무의식이 외로움을 잊으려고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외로움을 잊은 건 좋은데, 문제는 그런 습관이 과몰입으로 이어져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생활습관이 됐다는 것이다. 내비게이션 안내음을 못 들을 정도로 머릿속으로 글을 쓰느라 목적지를 놓치기 일쑤였고 한 영화에 심취하면 그 감독이 만든 모든 영화를 죄다 찾아보느라 식사도 거르고 이틀이고 삼일이고 햇빛도 안 보고 깜깜한 동굴 생활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고 옛날 모습을 떠올리며 끝장 보는 성격이 여전하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결론을 내기 위한 게 아니라 과몰입일 뿐이었다. 정신 에너지 안배를 못하고 과몰입이 이어지니 롱런하지 못하고 금세 지쳐 다 팽개치고 넉다운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다시 나를 관찰했다. 자발적으로 관계를 끊고 이성조차 깊이 없는 만남을 이어 온 나는 어느새 고독해져 있었다. 일도 혼자 하고 몇 안 되는 지인도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며 산 나는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산 꼴이었다. 외로움을 넘어 고독이라는 걸 알고 난 뒤, 어느 날 새벽에 깨어 사무치는 고독의 감정을 위로한답시고 꼴같잖게 쓴 시가 있다.


깊은 새벽잠에서 깨 문득문득 맞이하는 쓸쓸함은 불청객이 아니다.

잠시 잊은 내 곁에 누워있는 고독.

하루하루 날 밀어 넣었던 망각의 동굴에서 나오면

밝게 빛나는 것은 더욱 몸집을 불린 고독.

변한 것 없이 커튼으로 가려진 그 고독.

불쑥불쑥 거울을 들고 덤비는 고독과 싸우다 지친 난

빛이 없어 나를 볼 필요 없는 작은 동굴로 또다시 향한다.

그치지 않는 고독의 메아리.

난 두 귀를 막고 차디 찬 동굴에 모로 눕는다.

동굴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얇아지면 막혀가는 출구를 보며 잠이 든다. 

과연 아무도 없어 고독한가 거울에 비쳐 고독한가.


지금 읽어보면 대체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그 심정만은 생생할 만큼 당시엔 고독에 몸부림쳤다. 그러나 스스로 단절하고 살면서 왜 고독한지 모르겠고, 사람을 만나면 고독이 사라질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가 고독감에서 벗어난 건 아직도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덕분에 내가 고독한 건 관계의 폭이 좁아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란 걸 알게 됐다. 젊은 시절에 이미 세상에 순수한 사랑은 죽었다고 믿었고, 해서 나이 들고부터는 사랑은 받으면서 온전히 주질 않고 멀찍이 거리를 두었던 나는 사랑하는 이에게 진정한 사랑을 주고 그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받는 감정이 없었음이 원인이라는 사실이 허탈했다. 그리고 스스로 한심해했었다. 나이 오십이 넘을 때까지 그걸 모르다니.

어쨌거나 그녀를 만난 후, 사랑한다면 내 모든 걸 걸고 오로지 상대를 위해 있는 열정을 다 쏟아붓고, 나 자신도 버리는 게 사랑이라 다시 믿게 됐다. 더러운 세상에 사랑 따윈 죽었다는 청춘시절의 믿음을 깨버렸다. 그간 연애는 했지만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쩌면 처음으로 그녀와 온전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됐다.


그러나 서로 사랑했다고 믿었던 나는 어쩌면 오래도록 고독과 싸우느라 절실해진 나만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하게 됐다. 아마 그 시점부터 나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 같다. 만나면 다 주고 싶었고 그녀가 웃으면 마냥 좋아 내 정체성마저 잃고 딴 사람이 된 듯 말하고 행동하는 내게 스스로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상대만 바라보는 남자를 누가 사랑할까? 내가 놀랄 만큼 나를 잃자 그녀의 마음이 멀어져 갔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어지는 걸 지켜보는 게 그토록 고통스러운지 처음 알았다. 사랑도 연습이 필요한 건지, 준비 없던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럼에도 난 고통을 필연적인 양 받아들이고 괴로운 마음을 숨긴 채 더욱 그녀를 곁에 두려 발버둥 쳤다. 집착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집착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고 더욱 멀어지게 했다. 결국 노래 가사처럼 우린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마저도 항상 위태한 나를 그녀가 지켜봐 주느라 이어진 관계였다. 그런데 난 그마저도 끊어지게 만들었다.


요즘 과거가 현재를 살린다는 말이 휴행처럼 퍼졌다. 하지만 나는 항상 과거가 내 발목을 잡아 현재를 휘저었다. 본디 위태하고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불안하게 살아온 나는 남들이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들을 번번이 겪으며 살았다. 숙명일까? 마치 내가 쌓은 인이 현재의 업이 되듯, 시시때때로 과거가 태클을 걸어 자빠지게 했다. 되는 대로 마구잡이로 살아온 나는 그녀 앞에서 반듯하게 산 사람처럼 점잖고 의연한 사람으로 보이길 바랐으나, 욱하며 막 산 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툭툭 튀어나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눈치는 있어서 그럴 때마다 난 행동양식을 고치려고만 했다. 다만, 내면을 다질 생각을 못했다. 그만큼 조급했다. 그러니 그간 안팎으로 일이 터질 때마다 그녀를 위안 삼고 신경 안정제로 여겨 겨우 이겨냈던 나는 그녀가 멀어지면서 기어이 삶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수면제와 술에 의지해 마음을 다독였다. 그 결과, 오히려 생활은 더 망가졌고 결국 또 병원 신세를 지게 됐으며, 그녀는 자신에게 의지하는 나에게 더욱 부담을 느꼈을 테니 악순환을 만든 꼴이 되었다. 의사도 포기한 중증 불면증인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하고, 내가 겪는 고통이 특별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는 한심한 변명을 스스로에게, 또 그녀에게 했다. 이미 틀어진 관계를 두고 나는 그렇게 한심한 행동과 말로 그녀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다.


또 돌이켜보니, 이 나이 되도록 여자에 대해 쥐뿔도 몰랐다. 그녀를 잡아야 한다는 집착에 머물러 그녀의 내면을 살피고 그 마음을 다독일 줄도 몰랐다. 내가 집착할수록 상대는 더 멀어진다는 걸 이 나이 되도록 몰랐다. 내 마음에만 집중하느라 상대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을 뿐더러 상대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될 생각은 못하고 사랑만 쏟아부으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닥친 고통을 어떻게든 스스로 이겨낼 궁리는 안 하고 잊으려고만 하는 의지박약 상태로 지내다 또 다른 시련이 겹치자 얼마 전 또 병원 신세를 졌다. 게다가 그간 안타까워서 겨우 지켜봐 준 그녀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아. 얼마나 무심하고 한심해 보였을까? 결국, 난 그녀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난 더는 염치가 남아있지 않아 그러자고 했다. 우린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삶을 각자 가꿔나가기로 했다. 잘 살기로 했다. 그녀의 당부이기도 했다.


이후,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지난날 내 모습을 떠올리며 반성했다. 일 년 전, 그녀의 마음이 멀어지는 걸 느꼈을 때 잠시 사랑을 후회한 적이 있었다. 젊은 시절 사랑은 죽었다고, 순수한 사랑은 없다고 믿었기에 앞으로 진정한 사랑은 안 하리란 결심을 깨뜨린 걸 후회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녀가 멀어진 건 그녀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사랑은 있었다. 다만, 내가 지키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간 내가 그녀에게 맞추려고 한 것은 내 행동양식일 뿐 내 내면은 바뀐 게 없었다. 이별이 임박했음을 직감했으면서 그녀가 날 안타까워 그저 지켜보는 와중에 실없는 농담이나 할 정도니 그전엔 얼마나 무심했을까. 나보다 더 삶의 무게가 큰 그녀는 기껏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내가 툭하면 자빠지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한심해했을까. 그녀는 필시 내게서 안식을 바랬을 텐데, 항상 지쳐있고 불안한 나를 보는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꿋꿋이 내 삶을 꾸려가지 못하고 자신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하는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까. 그렇게 이년 여 시간 동안의 나를 떨어뜨려 놓고 보니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 난 그녀에게 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받기만 했지, 그저 사랑하는 내 마음에만 집착할 뿐, 내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해 준 게 없었다. 남자로서, 당당하게 삶을 안정적으로 굳건히 다스리며 시련이 와도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별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전의 연애는 내가 마음을 온전히 다 준 적 없기에 이별을 해도 잠시 뭔가 허전했을 뿐 후유증 따윈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그녀의 이별 통보에 염치도 없고, 더는 그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러자고 했지만, 무척 괴로웠다. 진정 사랑했기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틀을 앓아누웠다. 그녀를 만나는 동안의 한심한 내 모습이 자꾸 떠올라 후유증은 더 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별의 원인이 모두 내게 있었음이었다. 내 무력함과 그녀에 대한 의타심이 원인이니 나만 바뀌면 되는 거였다. 때문에 나는 며칠 만에 일어났다. 잘 자빠졌지만, 금세 일어나는 건 내력이라 나는 털고 일어나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이것도 시련이니 그간 못 보여준, 머리가 부서져라 부딪쳐 깨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이별은 했지만 난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미성숙한 내면이 원인이기에 미련이 남았다. 해서 언제고 다시 만날 날을 희망하며 나를 바꿔나가기로 했다. 더 이상 휘청거리지 않게 나를 단단히 다지기로 했다. 언제나 나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삶을 다스릴 만큼 독립적인 인간으로 되돌려 놓기로 했다. 또다시 고독이 엄습하더라도 이겨내기로 했다. 혼자일 때도 온전한 사람이어야 그녀의 마음도 세심히 살피고 그녀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아 누구에게도 부담되지 않고 연에 분동 되지 않는 내면을 만들기로 했다.


문득문득 그녀가 생각나 가슴이 죄어오듯 답답하지만, 밥을 먹어도, 일을 해도, 시도 때도 없이 후회와 안타까움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만, 그래도 버티고 이기자고 다짐한다. 아직도 멋대로 살아온 과거가 때때로 부메랑이 되어 나를 베고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지만, 성질대로, 꼴리는 산 대가이기에 부메랑에 맞아 찢긴 상처도 신음소리도 내지 말고 혼자 꿰매고, 족쇄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 풀기로 했다.


이제 하루하루 내 삶에 충실히, 몰두할 것을 찾아 집중하며 살기 시작했다. 허접하지만, 글이랍시고 쓰는 행위가 이리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겨질 줄 몰랐다. 손가락 움직이는 대로 매일 쓰니 잡념을 떨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 새벽 달리기로 번뇌를 떨치고 명상으로 헛헛함 마음을 달랜다. 불과 이 주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이제 흔적 없던 자존감이 마른 장작에서 연기 나듯 피어오르고 있다.


또다시 그녀가 고맙다. 나로 하여금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더 단단히 단련하도록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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