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내 인생 21화

-특공 서커스-

by 미스틱

전투수영 사단장 시범 후 시범 대원 전원이 포상 휴가를 갔다. 강물을 먹고 휴가도 물먹은 것도 원통한데 휴가자들 때문에 재수는 하루에 두 번씩 보초를 서야 했다. 정찰대 고질병 인원부족 탓이었다. 같잖은 그놈의 정예랍시고 인원을 여유 있게 확보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없었다. 짬밥이 그리 비싼가?


당연히 고참들이 낮에 보초를 서니 재수 같은 쫄따구들은 저녁에 한 번 서고 새벽에 또 서야 했다. 재수는 며칠 동안 잠이 부족해 보초를 서면서 감기는 눈을 어쩌지 못해 고역을 치렀다. 깜빡 고개가 넘어가면 곧장 시멘트 바닥에 대가리를 박아야 했고, 사수인 김 병장과 같이 보초를 설 때는 졸린 눈을 부릅뜨고 놈의 생구라 연애사에 진심 같은 리액션을 해줘야 했기에 몇 배로 더 힘들었다. 재수는 군대 끌려와서 연기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언제고 서울에서 마주치면 다시는 입을 못 열도록 주둥이를 작살내리라 다짐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찰대는 힘든 훈련은 왜 죄다 여름에 하는지, 전투수영이 끝나자마자 특공무술 훈련이 닥쳤다. 이번에도 사단장 시범이었다. 아무래도 정찰대는 북한으로 넘어가 간첩활동을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단장에게 각종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창설된 부대일지도 몰랐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땅을 파고 들어가 숨질 않나, 터지지도 않는 구식 무전기를 두드리질 않나,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질 않나. 지난 훈련들을 떠올려 봐도 이 부대는 북한으로 넘어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어쨌거나 특공무술도 적과의 몸싸움이니 싸움에 자신 있었던 재수는 누구에게 휴가를 뺏길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얼른 지원했다. 그리고 ‘역시!’ 하는 조 중사의 엄지척을 봤다.


특공무술 역시 조 중사가 교관을 맡았다. 그는 특공무술 3단 자격증 소유자였다. 처음엔 특공무술이라니 뭔가 특수한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특수했다. 재수는 소림사 권법처럼 동작이 특이하거나 가라테처럼 실전적 격투 기술인 줄 알았다. 한데, 조 중사의 시범을 보니 저렇게 해서 어떻게 적을 살상한다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우선, 특공 무술의 기본은 발차기나 주먹이 아닌 손가락이란 사실이 놀라웠다. 무조건 독수리 발처럼 손가락을 오므려 마치 적이 나타나면 마구 할퀴어버리겠다는 듯, 각 동작 모두 오므린 손가락이 필요했다. 공격 기술도 손가락으로 적의 급소를 찌른다거나, 목을 쥐어짜는 동작부터 손가락 중지 마디로 상대의 인중을 가격해 쓰러뜨리는 동작까지, 오직 손가락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 효과를 내기 위해선 일단 소림사에 가서 뜨거운 철사장에 손가락부터 단련을 해야지 않을까 싶었다.


말로는 군용 살상무술이라는데, 재수가 보기에 살상무술이라기보다 폼 잡기 무술 같았다. 권투인 듯, 태권도인 듯, 품새 동작에선 뭔가 화려하고 뭔가 폼 나 보이기는 한데, 과연 실전에서 어떤 효과를 낼지 의문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실전에서 저런 동작으로 적과 붙었다간 몇 동작하기도 전에 처참히 두들겨 맞을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단검이나 쌍절곤, 야전삽 등을 이용해 대련하는 모습은 무술다운 면모가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재수는 그마저도 시시했다. 영화에선 단검을 이용하더라도 눈 깜짝할 새에 상대의 급소를 툭툭 찔러 쓰러뜨리는데, 예비동작을 다 해놓고 찌르다니. 그동안 적은 찔리기를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양아치처럼 야전삽으로 내리치는 건 아무래도 무식하고 비겁하게 보였다. 그리고 특공무술이란 목청도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한 품새가 끝날 때마다 짐승처럼 악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적을 놀라게 하려는 건가? 북한군은 상대가 악만 써도 놀라 자빠질 만큼 심신이 허약하단 말인가? 조 중사의 시범을 보는 동안 곧 땅바닥을 박박 길 것임에 한숨만 쉬던 재수는 곧 휴가 길에 오르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을 다졌다.


드디어 훈련이 시작됐고, 예상대로 얼차려와 동작 익히기가 번갈아 이어졌다. 동작이야 총검술 배우듯 한 동작 한 동작 익히면 되는 것이고 얼차려는 버티면 되었다. 그러나 이놈의 낙법이 아주 고역이었다. 연병장은 마사토 가루인 굵은 모래, 아니 돌가루인데, 웃통을 다 까고 앞으로, 뒤로, 한 바퀴 공중 돌아 땅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배와 가슴, 등짝에 돌가루가 따갑게 박혔다. 그보다 더 고생한 신체는 손바닥이었다. 낙법이라는 것이 손바닥으로 땅을 쳐 몸에 오는 충격을 줄이는 것인데, 돌가루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니 손바닥에 불이 났다. 해서 땅바닥을 세게 치지도 못하니 배와 가슴, 등에 가해지는 충격은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결국, 낙법은 돌가루를 온몸에 가급적 천천히 박는 과정일 뿐이었다.


격파술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였다. 각목은 미리 반쯤 부러뜨려놓았고, 송판은 목재가루를 압축해 만든 것이라 툭 쳐도 두 조각났다. 꼼수 중의 꼼수는 기왓장 격파였다. 이건 미리 부숴놓고 본드로 붙일 수도 없어서 주먹 힘이 안 되는 사람은 주먹으로 치는 듯 체중을 실은 팔뚝으로 내리찍어 누르는 꼼수를 폈다. 그리고,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조 중사가 격파술 마지막 단계라며 공중으로 붕 떴다. 그리고 이마를 기왓장에 내리꽂았다. 겹겹이 쌓은 다섯 개의 기왓장은 박살이 났다. 역시 돌대가리였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질 때, 군대는 신체 중 가장 중요한 머리를 가장 하찮게 여김을 재수는 여지없이 확인했다. 허구한 날 바닥이 공구리친 시멘트든, 아스팔트든, 돌가루든, 사정이 어떻든 간에 아무 데나 대가리를 박게 하고, 툭하면 헬멧이나 개머리판으로 머리통을 후려치더니 이제는 애꿎은 기왓장을 이마로 깨게 하는 군대였다. 이제 재수는 잘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에 슬그머니 제 이마를 쓰다듬었다.


“크흠~ 잘 봤지? 이렇게 마빡으로 깨는 게 기본이야. 근데, 마빡으로 정 못 깨겠으면 그냥 정수리로 깨도 돼. 근데, 그럴라면 진짜 높이 뛰어야 돼. 자, 보여줄 게.”


기왓장 다섯 개를 박살 낸 조 중사는 의기양양하다 못해 흥분한 듯 목소리마저 떨렸다. 그때, 조 중사의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저.. 소대장님. 이마에 피가..”

최 상병이 진심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응? 이게 왜 나지? 아!! 깜빡했다. 기왓장 격파 땐 이마에 띠 두른다, 띠. 에이, 그걸 깜빡했네.”


조 중사는 늘 그랬다. 훈련교관 자리에만 서면 제 장기를 보여주고 싶어 흥분했다. 시범을 보이는 데만 집중하느라 동작을 가르치는 건 비논리적이고, 동작도 건너뛰는 게 많았다. 그래서 공수 훈련 때도 재수는 특전사 교관의 동작을 훔쳐보고 암기했었다. 돌대가리 조 중사는 이번에도 제 장기를 보이는 데 흥분한 나머지 머리띠라는 기본 준비물도 챙기지 못한 게 분명했다. 그러고도 조 중사는 대원들 앞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마의 피를 쓱 닦더니 다시 공중으로 높이 떴다. 그리고 고개를 푹 꺾어 정수리를 기왓장에 꽂았다. 역시나 조 중사의 돌대가리에 기왓장이 와장창 박살이 났다. 재수는 다시 한번 제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특공무술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그건 적으로 분한 상대 대원을 짜여진 각본에 맞춰 쓰러뜨린 후, 불을 붙여놓은 커다란 원형 굴레를 통과해 적에게 단검을 날리는 것이었다. 조 중사가 시범을 보일 때, 재수는 어렸을 때 본 서커스에서 호랑이가 불붙은 원형굴레를 뛰어 통과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 이건 특공 서커스구나.'


특히, 단검의 타겟이 알록달록 풍선인 것을 보고 재수는 확신을 했다. 호랑이 마크를 단 맹수부대라 그 서커스를 이용해 개발한 시범임이 분명했다.


더욱 가관은 사단장 시범에 임박해서는 자꾸 타겟에 단검 손잡이부터 맞고, 때론 그 넓은 표적판조차 맞추질 못하자 단검에서 별모양 표창으로, 알록달록 풍선도 서너 개에서 표적판 전체를 꽉 채우는 걸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별모양 표창을 아무렇게나 던져도 풍선 서너 개는 무조건 터지도록 한 것이다. 꼼수도 그런 꼼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펼친 특공 서커스 시범 날, 사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고, 정찰대가 사단의 명예라며 극찬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포상휴가가 떨어졌다. 재수는 한 달 가까이 구르고, 낙법 때문에 몸이 얼룩말이 된 대가로써 받은 휴가라 여겼다.

재수는 첫 번째 포상 휴가 후 두 달 만에 다시 한번 서울 가는 시외버스에 올랐다. 이번에는 그녀를 꼭 만나게 해달라고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지리산 산신령까지 죄다 모아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아이구야. 아이구야.’


불과 두 달 만에 또 휴가를 나왔는데, 어머니의 반응은 첫 휴가 때와 똑같았다. 눈물을 보이는 것도 그랬다. 어머니는 이제 바지락을 치우고 채소를 다듬고 있었다. 재수는 첫 번째 휴가 때처럼 어머니 옆에 앉아 팔을 걷어붙이고 양파를 까기 시작했다. 첫 번째 휴가 때는 극구 말리던 재수 어머니는 이번엔 말리지 않았다. 자신의 효심을 확신하는 것 같아 재수는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자꾸 눈물이 났다. 그 정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상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보고 싶어서라기엔 이번엔 꼭 볼 수 있으리라 확신했기에 더욱 이상했다. 더더욱 이상한 건 두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니 눈물이 더 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 재수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양파 때문이라며, 그 손으로 눈을 만지면 어떡하느냐고 깔깔 웃었다. 재수는 또다시 철물점으로 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목수들이 쓰는 고글을 샀다. 군복차림에 고글을 쓰고 양파를 까는 재수의 모습에 역시나 손님들이 감탄의 눈길을 보내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재수는 첫 휴가 때 보다 더 양심이 찔렸지만 하는 수 없었다. 개중엔 역시 거슬리는 손님도 있었다. 단골인지, 무슨 군인이 휴가를 이렇게 자주 나오느냐고 했기 때문이었다. 재수는 미소를 띠었지만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내가 박박 구르는 데 당신이 보태 준 거 있어?’


재수의 타들어가는 속과 달리 그날도, 그다음 날도, 복귀 전날까지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학원을 옮겼거나 그만두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절망에 빠져 밤마다 친구들과 술을 펐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하루하루 완벽한 절망으로 바뀔수록 먹는 술의 양도 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몸을 못 가눌 정도였다. 휴가 기간 내내 어찌나 많이 마셨는지, 복귀 전날 밤엔 먹은 걸 다 토하고, 복귀 날 아침엔 술병이 나 어머니가 끓여준 콩나물국마저 먹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 몸으로 복귀해 부대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었다. 그날 아침, 재수 어머니는 밥 한 술 못 뜨는 재수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어떻게 매번 휴가 나와서 가족과 밥 한 끼 안 먹고 몸까지 망가트리고 가느냐며 서럽게 울었다.


시외버스에 오르면서 재수는 또 우황청심환을 삼켰다. 그녀와의 만남은 이제 영영 끝나버린 게 분명한 데다 어머니의 마음마저 찢어 놓았으니 가슴이 미어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간 휴가 나와서 그녀를 보겠다고 어머니 옆에 앉아 도와주는 척했을 뿐, 가족을 생각한 적 없는 자신이 끝내 혐오스러웠다. 자나 깨나 자신만 걱정하는 어머니 마음을 한 번도 생각 안 한, 불효라는 말도 모자랄 만큼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자식새끼라 여겨졌다. 오로지 그녀만 생각했던 자신을 한심하게 느낀 건 처음이었다.


‘잊자. 그만 잊자.’


재수는 그녀를 잊기로 했다.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제 그녀와 영영 만나지 못한다는 슬픔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침 밥상을 앞에 두고 우셨던 어머니가 자꾸 떠올랐던 탓이 컸다. 어차피 만날 인연이 아니었는데, 그녀는 이미 몇 개월 전에 편지가 없는 자신을 무심히 잊었을 텐데, 아직까지 혼자 짝사랑하느라 온 에너지를 쏟고 마음 썩어가며 살았던 시간이 서럽기도 했다.


저 멀리 부대 막사가 보이자 재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 절망을 떨치고 캄캄한 군 생활을 이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군대와 맞짱 떠 기어코 이겨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제대해야만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 같은 내 인생 2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