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수영-
햇볕 뜨거운 7월, 전 대원은 전투수영 훈련을 위해 연병장에 도열했다. 대지의 뜨거운 열기에다 공기마저도 후끈해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정찰대는 전투란 단어를 지극히 사랑했다. 전투축구, 전투구보, 전투행진, 전투체조, 전투행군, 게다가 이젠 수영도 전투수영. 전투는 실제 해보지도 않았지만, 재수에겐 하루하루가 모두 전투였으니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조 중사는 연병장에 도열한 대원들 중 사회에서 수영선수였거나 수영 경험이 많은 몇몇을 추려냈다. 사단장 시범 훈련이었기에 실력 있는 몇몇을 시범단으로 선정하기 위함이었다. 사회에서 수영선수였던 대원은 없었지만, 섬이나 바닷가 출신 몇몇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재수가 시범훈련에 망설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망설임도 잠시, 이내 앞으로 튀어 나가 고참들 뒤에 섰다.
“노 이병. 너 수영할 줄 알아?”
지원자 중에 유일하게 서울 출신인 재수를 조 중사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네. 잘합니다.”
재수가 고등학생 때였다.
처음으로 가족모두 강원도 강가로 여름휴가를 갔더랬다. 부모님이 하루도 쉬지 않고 장사를 하느라 가족이 함께 하는 휴가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런데 강원도로 시집간 재수 큰누나의 남편인 매형이 서울까지 올라와 그들을 반강제로 끌다시피 해서 데려갔다. 그곳에서 재수네 가족은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재수의 매형은 친구들까지 데려와 재수에게 낚시도 가르쳐줬고 아버지 몰래 술도 먹여줬다. 누나들 밖에 없었던 재수는 매형과 매형 친구들이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이 무척 고맙고 친형처럼 느껴졌다. 재수 누나는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고무 튜브 두 개를 묶어 그 위에 간이침대를 놓고, 비키니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끼고는 그 위에 드러누워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선탠을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수영을 배우지 못한 재수는 그 튜브를 잡은 채 제 누나를 끌고 강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나의 꼴이 재수 없었지만, 튜브를 죄다 가져갔으니 그 방법 외에는 재수가 물에 들어갈 도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물속에서 매형 친구가 물귀신처럼 불쑥 튀어나오더니 튜브 위 간이침대를 덮쳤다. 아마도 잠수를 하다 깜짝 튀어나와 재수 누나를 놀래키려 했나 본데, 놀라기는 놀랐을 것이다. 덕분에 튜브와 간이침대가 홀랑 뒤집어졌으니. 튜브를 놓친 재수는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물속에서 재수는 철제 간이침대에 눌려 자기보다 더 깊이 가라앉는 누나를 봤다. 재수는 얼른 손을 뻗어 누나의 머리채를 잡아 철제 간이침대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미 턱까지 숨이 찬 재수는 물 위로 오르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 위에 겨우 오르면 누나가 재수를 붙잡아 끄는 바람에 재수는 또다시 가라앉았다. 배가 터지도록 물을 잔뜩 마시고 발버둥을 쳐 겨우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면 이번엔 누나가 재수의 머리통을 붙잡고 기어오르고, 또다시 오르면 목덜미를 부여잡고 발둥 치고.. 그 짓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재수는 제 입에서 뽀글뽀글 물방울이 아름답게 솟아나는 모습을 봤다. 그걸 끝으로 기억을 잃었다. 재수가 눈을 뜬 건 텐트 옆 강가 모래밭에서였다. 어떻게 물 밖으로 나왔는지 재수는 기억을 되살려 봤지만, 기억나는 건 뽀글뽀글 물거품뿐, 더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갈비뼈가 부러진 듯 쑤셨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매형과 친구들이 둘을 구하고 재수는 심폐소생술로 겨우 깨어났다고 했다.
재수네 가족은 그 길로 바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2박 3일 일정으로 갔던 역사상 첫여름휴가는 악몽의 당일치기 휴가가 됐다. 그 사건으로 인해 물은 재수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그래서 웬만한 스포츠 중에 유일하게 못하는 스포츠가 수영이 됐다. 물론, 재수는 운동에서만큼은 지기 싫어 수영을 배우려고 애썼다. 하다못해 사람 없는 평일에 목욕탕에서 가서 애들처럼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어찌어찌 앞으로 몇 미터 가다가도 물이 턱에만 닿으면 온몸이 딱 굳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재수가 지금 전투수영 시범단에 끼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단장 시범 훈련이니 포상휴가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조 중사는 원체 훈련에 적극적이던 재수를 흐뭇하게 바라봤는데, 어째 그 눈빛이 여느 때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그전엔 군인으로서 대견해하는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사랑의 눈빛? 뭔가 싸한 게 기분이 영 드러웠다.
물에서 하는 훈련이니 혹시 다를까 했지만 역시 땅에서 구르는 건 건너뛰지 않았다. 강가에 모래 포대자루를 두 개씩 쌓아놓고 그 위에 엎드려 팔다리를 휘젓는 훈련만 오전 내내 했다. 당연히 얼차려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가 돼서야 조 중사의 전투수영 시범이 펼쳐졌다. 그런데 조 중사의 시범을 보고 있자니 재수는 전투수영이라기보다 생존수영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투수영이라는 게 무장을 한 채 강을 건너야 하는데, 군장을 메고 강을 건너자니 보조 부력으로 쓸 대체물이 있어야 했다. 그 대체물 중 하나가 페트병을 모아 묶어 튜브 삼아 목에 걸고 건너는 것이었는데, 군인이 무슨 폐지 줍는 빈곤층 노인들도 아니고, 대체 전쟁 중에 강가에서 페트병 주우러 다녀야 한다니 우스웠다. 그나마 두 번째 방법은 좀 전투적 느낌이 살짝 났다. 전투복 바지를 벗어 바지끝자락을 묶고 바지를 수면 위에 팍 치면 바지에 공기가 차 빵빵해지는 데 그 바짓가랑이 사이에 목을 걸고 강을 도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방수복도 아닌 일반 군복이 강을 건널 만큼 내부공기를 유지해 주진 못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조 중사도 그걸 아는지 강에 뛰어들어 5미터 정도 가다가 돌아왔다. 그것도 돌아올 땐 바지에 공기가 빠져 그냥 맨몸 수영으로 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재수는 사단장한테 뭘 보여주려는 건지 궁금했다. 아마도 전투복 바지를 이용하는 건 몇 미터만 보여주고, 미리 준비한 페트병으로 도하하는 걸 중점적으로 보여줄 것 같았다. 정찰대만의 특수기술이라고 하는 걸 보니 사단장이 그런 걸 직접 해보지도 않았을 게 분명하고, 페트병으로 건너기만 해도 사단장은 그저 신기한 눈으로 볼 게 뻔했다. 재수는 갑자기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사라지고 자신감이 솟구쳤다. 페트병만 목에 건다면 충분히, 아니 누구보다 빨리 강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체력에는 자신 있으니까. 해서 재수는 배에 모래포대를 깔고 팔다리를 힘차게 저었다. 누구보다 빨리. 그런데...
조 중사가 갑자기 전부 군장을 벗기더니 지원자 모두를 고무보트에 태우고 강 한가운데로 나갔다. 수영에 필요한 기초 체력을 테스트한다나? 즉, 모두들 기본적으로 얼마나 오래 물에 떠 있나 보겠다는 것이다.
‘좆 됐...’
"퍽!"
고무보트 난간에 앉은 재수가 상황파악이 됨과 동시에 조 중사의 군홧발이 가슴에 박혔다. 그리고 재수는 또 한 번 제 입에서 뽀글뽀글 물거품이 나는 걸 봐야 했다. 수면 위로 오르려고 재수는 발버둥을 쳤다. 살려고 미친 듯이 팔다리를 휘저었다. 그러나 질긴 군복에, 군화까지 신은 재수는 수면 위로 단 한 번을 못 뜨고 물만 꿀꺽꿀꺽 배 터지도록 마셨다. 폐가 터질 것 같았다. 곧이어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더니 어느 순간 뿌연 물빛이 하얘졌다가 서서히 까매졌다.
재수가 눈을 뜬 건 또 강가 모래밭이었다. 조 중사가 재수를 안타까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갈비뼈가 아팠다. 또다시 심폐소생술을 받은 걸 알아챘다.
“너, 미쳤어? 왜 수영도 못하면서.. ”
“그게.. 안 되면..켁켁.. 되게 하라..켁켁.. 악으로..쿨럭..”
“지랄하네.”
조 중사는 재수를 뒤집어 놓고 등을 퍽퍽 후려쳤다. 우웩. 재수의 입에서 강물이 쏟아졌다.
그날 저녁 부대로 복귀한 재수는 소대장실로 불려 갔다. 가면서 재수는 이제 죽었구나 했다. 거짓말이 들통났으니 또 한 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아찔했다. 재수는 소대장실 문을 열고 경례를 하자마자 자동 대가리 박아를 했다. 소대장의 화가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야, 노 이병. 지금 뭐 하냐? 일어나.”
조 중사는 화 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일어나라니까. 이리 와서 커피나 한 잔 해.”
그럼, 그렇지. 자동대가리 박아 효과가 있긴 있었다. 불같은 성격의 조 중사라면 평소대로 뺨따귀부터 날아왔어야 했다.
그런데 직접 커피까지 타 온 조 중사의 얼굴은 예상보다 훨씬, 무척 다정한 얼굴이어서 재수는 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무리 제 잘못을 알고 자동 대가리 박아를 했다 해도 뭐 이런 것까지..
“노 이병. 너 훈련에 적극적인 건 아주 좋은데 거짓말까지 하면서 그렇게 무모하게 덤비다간 죽는 수가 있어. 아까도 너 죽을 뻔했어, 임마. 내가 너 심폐소생술 하면서 혹시 못 깨어나면 어쩌나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알아? 너 못 깨어났으면 넌 황천길 가는 거고, 난 영창 가는 거야.”
맞는 말이었다. 무식한 조 중사라도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죄송이 문제가 아니고, 너 못 깨어났으면.. 하~ 진짜..”
담배를 빼어 무는 조 중사의 얼굴은 진짜로 진지하고 심각했다.
“임마, 너 무슨 일 났으면 내가 니네 부모님과 누나를 어떻게 보겠냐? 응?”
‘그렇지. 볼 낯이 없... 응? 누나?’
여기서 누나가 왜 나오나? 재수는 그제야 조 중사의 태도가 이상한 이유를 이제 알게 됐다.
‘그럼, 그렇지.’
또라이니까. 엽기 조 중사니까. 게다가 저번 공수훈련 브리핑 때 동요를 부르다 걸렸을 때부터 자신을 대하는 조 중사의 태도. 역시, 누나였다.
“됐어. 이번 시범에서 탈락했다고 기죽지 말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하도록.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거짓말한 자기 때문에 영창을 갈 뻔 한 조 중사가 문까지 배웅하며 등을 쓰다듬을 때 재수는 그 손길이 누나에게 뭔가 말 좀 잘해주란 메시지로 느껴졌다.
‘그냥 때리지. 재수 없는 새끼.’
이후로도 조 중사는 유독 재수에게만 친절하게 대했다. 유격훈련 때도 한 단계 통과하면 정해진 규칙처럼 다들 괜한 얼차려를 받았는데, 재수가 속한 조만 쉬게 해 준다거나, 화생방 훈련 때도 다들 방독면을 벗어야 했는데 재수가 속한 조만 방독면을 그대로 쓰게 해 준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부대 내에서도 조 중사는 괜히 저 혼자 뚜껑이 열리면 전원 집합시켜 단체 얼차려를 주었는데, 그때도 엎드려뻗쳐 있는 재수에게 다가와 슬그머니 뒷덜미를 잡아 올려 힘을 덜어주기까지 했다. 재수는 그게 오히려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눈에 띄게 특별대우를 해줬기 때문에 고참들의 따가운 눈총을 온몸에 받아야 했고, 조 중사가 유난한 날엔 고참들에게 내무반이나 창고 뒤에서 얼차려나 몽둥이찜질을 받아야 했다. 재수의 꼬인 군 생활은 조 중사 때문에 삼겹 꽈배기마냥 더욱더 꼬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