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내 인생 19화

-첫 휴가-

by 미스틱

재수는 빳빳이 다린 군복과 광이 번쩍번쩍하는 군화를 신고 터미널에 내렸다. 그리고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시간을 보니 그녀의 등원을 보기엔 이미 늦었고, 하원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이구야. 아이구야.”


재수를 본 어머니는 놀라 말을 잇지 못하다가 비린내 나는 손으로 안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눈물만 글썽였다. 어머니는 다시 바지락 장사를 하고 있었다. 겨우내 기름에 찌들어 벽돌장 같던 어머니 손이 이젠 바지락 물이 들어 손톱이 죄다 새까매진 걸 보고 재수는 가슴이 쓰렸다. 재수는 근처 철물점에 가 앉은뱅이 의자 하나를 사 왔다. 그리고 제 어머니 옆에 깔고 앉아 팔을 걷어붙였다. 그런 재수를 본 재수 어머니는 쓸데없는 짓 말라며 앞치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냈다. 친구들이나 만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수는 본 척도 않고 국자를 들고 바지락이 든 다라이를 두드렸다. 마치 두드리면 열리 듯, 손님이 올 것 같았다. 어머니가 바지락 파는 걸 본 게 한두 해인가? 손님이 달라는 대로 이미 까놓은 바지락 살을 국자로 푼 후 비닐봉지에 담아 저울에 달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1/3 국자만큼 더 담아 주면 되는 거였다. 까는 게 일이지 담아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재수가 대꾸도 안 하고 국자를 들고 앞만 바라보자 어머니도 포기하고 지폐를 재수 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어머니야 아들이 군대 가더니 더욱 효자 아들이 되어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재수의 마음은 오직 그녀를 만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하나 둘, 바지락을 사러 온 주부들은 군복 입은 아들이 어머니 옆에 앉아 바지락을 담는 걸 보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칭찬을 했다. 재수 어머니에게는 이런 효자 아들을 둬서 좋으시겠다는 둥 재수에게는 어떻게 휴가 나와서 어머닐 도울 생각을 다 했냐는 둥 재수를 자꾸만 뜨끔하게 만들었다. 개중엔 거슬리는 말을 하는 주부도 있었다.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가야 한다는 말이 그것이었다. 재수는 속으로 말했다.


‘안 보낼 수만 있다면 절대 보내지 마시지 말입니다?’


오후 네 시. 드디어 그녀가 나타날 시간이 되자 재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국자로 다라이를 두드리며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재수 어머니는 손으로 재수의 무릎을 탁 쳤다.


“복 달아나게 왜 다리를 떨어? 얘가 군대 가더니 이상한 버릇 들여왔네?”


네 시가 넘어 네 시 반이 되어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재수는 초조해졌다. 그리고 다시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아, 그 참. 재수야. 다리 떨지 말라고. 복 달아나.”

“아이, 엄마 쫌!!”


답답하고 초조해 죽겠구만, 자꾸 쓸데없는 꾸지람을 하는 어머니께 재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흠칫한 재수 어머니는 더는 아무 말 않고 바지락을 깠다.


다섯 시가 지나고 여섯 시. 재수 어머니는 슬슬 장사를 접을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벌써 들어가려고? 왜 좀 더 하지.”

“있어야 팔지. 봐라, 뭐가 남았나.”


진짜 바지락 통엔 뿌연 물만 찰랑거렸다.


“아니, 엄마는 참.. 바지락을 좀 넉넉히 준비하지. 요거 팔아서 돈이 되겠어?”

“얘가 돈독이 올랐나. 니가 깔래? 엄마는 손목이 아파서 맨날 파스 붙이고 잔다.”

“까는 거? 까라면 까는 게 군바리야. 그게 뭐라고.. 줘 봐. 내가 깔게.”


재수는 그녀가 아직 나타날 것만 같은 미련에 괜한 억지를 부렸다. 재수 어머니는 피식 웃더니 통에 남은 두어 개 바지락을 던져줬다. 재수는 호기롭게 국자를 던져 놓고 칼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칼이 너무 작았다. 아마 과도였던 것 같은데, 날을 짧게 갈고 손잡이도 천으로 칭칭 감은 어머니표 바지락 칼이었다. 바지락조개 하나를 들고 그 작은 칼로 입을 벌리려는데, 어찌 된 일인지 칼이 조개 입속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아니, 조개 입 틈으로 칼을 맞추기도 힘들었다. 무슨 놈의 조개가 입을 이리도 꾹 다물고 버티는지, 뭔가 단단히 뿔이 난 듯했다. 재수가 이리도 파보고 저리도 파보고 쑤셔도 보았지만 당최 조개란 놈이 입을 벌릴 생각을 안 했다. 재수 어머니는 저러다 제 손이나 베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도 끙끙대는 재수가 웃겨서 비실비실 웃으며 바라봤다. 차라리 군용 대검이었으면 콱 쑤셔질 것도 같은데, 급기야 성질이 난 재수는 바지락을 땅바닥에 대고 칼 손잡이로 쾅쾅 내리쳤다. 재수 어머니는 끝내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곧 바지락이 부서졌다. 그리고 속을 파내려니 부서진 바지락 껍데기가 다 묻어 그걸 일일이 떼어내야 했다. 재수는 그걸 하나하나 떼어 내다 말고 칼을 휙 던져 버리고 일어섰다.


“갑시다.”


재수 어머니는 웃겨 죽겠다는 듯 허리까지 잡고 깔깔댔다.


그날 저녁, 다음 날엔 꼭 그녀를 만나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재수는 친구들과 술잔을 나눴다. 입대 전 군대가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것들이 이젠 공수마크를 단 재수에게 군대에 관해 입도 뻥끗 못했다. 군대 관해 썰을 푼 건 오히려 재수였다. 희한한 일이었다. 군대에 관해 관심도 없는 데다 혹독하고 지긋지긋한 군 생활이었다. 하는 짓들이 죄다 어이없는 것들이라 한심하게만 느꼈는데, 흉내 내느라 괜히 사람만 박박 기게 한 훈련이 창피해서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낼 줄 알았는데, 친구들을 만나니 왜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재수는 새벽이 되도록 제 군대 얘기를 하느라 술이 취할 새가 없었다. 그래서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모였다 하면 군대 얘기를 하나?


다음 날도 재수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불안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진짜 학원을 옮겼나? 아니면 그만두었나? 별의별 상상을 하면서 다라이 앞에서 다리를 떨며 초조히 기다렸건만 끝내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재수는 셋째 날도, 넷째 날도 그녀를 보지 못하고 바지락만 수백 봉지를 담았다. 이제 다음 날이면 복귀를 해야 했기에 재수의 초조함과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하는 수 없이 미친 척하고 학원에 다시 들어가 묻기로 했다. 처음 학원을 찾았을 때와 다른 모습이어야 했기에 다시 군복으로 갈아입고 학원으로 향했다.


문을 빼꼼히 열고 안을 살펴보니 데스크엔 입대 전 실랑이를 벌였던 그 여자가 또 서 있었다.


‘쟤는 참... 쓸데없이 성실하네.’


하지만 그대로 돌아설 순 없었다. 어떻게 얻은 휴간데, 구르고 기고 또 굴러 겨우 얻어낸 휴간데. 게다가 지금은 군복을 입고 있으니 어쩌면 좀 더 친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재수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데스크 앞에 당당히 섰다. 그리고 정중히 경례를 했다. 데스크 직원은 엉겁결에 인사를 하더니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재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수고하십니다. 제가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재수는 최대한 차분하게, 그리고 점잖게, 그리고 어렵게 표준말로 물었다.


“아, 네. 누굴 찾으시는데요?”


확실히 지난번 보다 상냥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군복의 효과가 이런 건가?


“음.. 제가 이름은 모르구요. 키는 요만하고 머리는 단발인데, 가방은 이따만 하고..”

“.....? 잠깐만. 아저씨, 저번에 왔던 그 아저씨? 맞죠?”


재수의 설명이 입대 전 물었을 때와 똑같아서일까? 반년이 지났건만 데스크 직원은 금세 재수를 알아봤다.


“예? 아니.. 그게 아니구요. 제가..”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군복 입었다고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아저씨 스토커죠?”

“예? 스토커? 그게 뭐지 말입니다?”

“아저씨 빨리 나가요. 안 나가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경찰이란 말에 재수는 기겁을 했다. 휴가 나오기 전 고참들이 얘기해 줬다. 군인신분으로 싸제에서 싸움을 하거나 난동을 피우거나 해서 경찰에 잡히면 무조건 영창행이라고 말이다.


“아니, 그게 아니지 말입니다. 제가 그 여자한테 쪽지도 받았지 말입니다?”

“쪽지고 편지고 간에 얼른 나가요. 안 나가요?”


데스크 직원은 급기야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재수는 얼른 수화기를 든 직원의 손을 잡아 수화기를 전화기에 다시 박았다.


“어머!!! 이 사람이 어딜 만져?”


안내원은 기겁을 하며 벽에 붙었다. 잔뜩 질린 얼굴이었다.


“알았지 말입니다. 나가지 말입니다.”


재수는 포로처럼 두 손을 들고 뒷걸음치며 물러섰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그쪽, 그렇게 손 만지고 싶은 얼굴 아니지 말입니다.”


재수는 문을 열고 나와 침을 퉤 뱉었다.


“못 생겨가지고 성질까지 더러워서 원..”


힘들게 얻은 첫 휴가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이제 영영 못 보는 건가? 재수는 복귀하는 시외버스에서 입대 열차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눈물을 찔끔거렸다. 그리고 두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녀와 재회를 할 기회가 영영 사라진 것 같아 땅이 꺼지듯 가슴이 푹 꺼진 데다 재회의 희망도 없이 지독한 군 생활을 하려니 절망감에 앞이 캄캄했다. 입대할 때야 군대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으니 그렇게 두렵진 않았다. 그저 그녀의 쪽지를 잃어버린 자신이 한심하고, 그 사실이 원통했으며, 원하지도 않았는데 군대라는 낯선 곳으로 끌려가느라 그녀를 못 본다는 게 억울해 눈물을 찔끔거렸지만, 지금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 그녀가 학원을 그만두었을 수도 있으니 마지막 희망의 끈이 끊어져 버린 것 같은 데다, 군 생활이 어떤지 이미 알아 버려서 다시 저 지독한 곳으로 복귀하자니 세상 끝 벼랑에 홀로 선 기분이었다. 이대로 탈영을 해버려 벼랑으로 떨어지든가, 뒤돌아 군대와 맞짱을 뜨든가 해야 한다는 절박감마저 들었다. 부대 복귀길이 이처럼 잔인할 줄이야. 고개를 넘으면서 저 멀리 부대 막사가 보이자 가슴이 쿵쾅쿵쾅 터질 것 같아 재수는 우황청심환을 삼켰다.


약 효과일까? 재수는 버스에서 내려 부대로 걸어가던 중 마음이 좀 진정이 되더니 이내 오기가 발동했다.


‘기어이 만나고 말리라. 다시 휴가를 따내 기다리고 또 기다리리라. 분명 그녀도 사정이 있어 며칠 못 나왔으리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면 하늘이 도와주리라.’


재수는 다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새 자기 암시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희망도 없이 혹독한 군 생활을 견디지 못하리란 생각에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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