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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an 15. 2020

20% 일 때 충전하기

충전의 타이밍에 대해서

얼마 전 팟캐스트 <서늘한 여름밤>을 듣다가, 진행자 중 한 분이 "완전히 소진한 후 충전하는 것은 제대로 충전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듣고 무척 공감이 되었다. 직업 특성상 일을 많이, 오랫동안 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땐 몇 시간을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은 당연히 못가며, 큰 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하고, 지시하며, 감정노동도 하고, 세부사항들을 하나하나 보며 기록도 틈틈이 해야 한다. 신경 쓸 것도 많은 데다 육체적으로도 힘을 써야 한다.  이런 일을 오랜 시간 동안 하고 나면 업무가 끝날 때쯤엔 약간 어지럽기도 하고, 완전히 탈진되어 숨도 깊게 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일을 마치자마자 좀비처럼 식당으로 걸어가 메뉴판도 보지 않고 바로 음식을 주문하고, 식탁에 반찬과 요리가 차려지자마자 입 속으로 정신없이 쑤셔 넣는다.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음미도 못하고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는다. 놓인 음식 중 어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먹어버리고 나면 포만감에 기분이 좀 풀릴 거 같기만 결코 절대 네버 그렇지 않다. 배는 가득 찼지만 만족감보단 허무함이, 포만감보단 이상하게 속이 빈 느낌이다. 그래서 결국 부푼 배를 안고 맞은편에 있는 빵집으로 들어가 디저트란 명목으로 큰 빵 하나를 사서 나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빵을 먹으며 집에 오면 "휴식모드"로 바뀔 거 같지만 결코 절대 네버 그렇지 않다. 몇 시간 동안 downtime을 가져야 하는데, 가령 스트레칭을 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반신욕까지 하고는, 또 이상하게 속이 허해서 얼마 전 먹다 남은 과자 한 봉지까지 끝내야 아, 조금 살 것 같다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완전히 고갈된 후 다시 충전하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과정이다. 우리는 적당하게 허기질 때 밥을 먹어야 하고, 스트레스로 몸이 굳어버리기 전에 일을 멈춰야 한다. 너무 고갈된 상태에서 하는 충전은 충전이 아닌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또 다른 고통의 과정이 된다. 일이든, 노는 것이든 그래도 항상 20% 정도는 남겨두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걸 위해선 중간중간 내 에너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조금이라도 퍼센트를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기억하자. 충전은 0%가 아니라 20%때 하는 게 진짜 충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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