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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an 23. 2020

난 파리(Paris)가 싫어

5년 전 방문한 파리는 어땠는가

  파리에 대한 욕망이 주입된 건 섹스앤더시티 때문이었다. 뉴욕에 사는 그녀들도 난 충분히 부러웠는데, 그들이 선망하는 곳이 또 있었다니. 드라마 연출을 통해 살짝 맛보기만 했는데도 언젠가는 꼭 가봐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다들 ‘조또 신경 안쓴다’는 표정으로 한 손엔 담배를, 한 손으론 와인을 마시고 있을 것 같았다. 에펠탑은 어떤가. 로맨틱함의 절정 아닌가? 속으로 적잖이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근데 막상 가보니 차갑고 외롭고 약간 지저분한 곳이었다는 게 내게 남은 파리의 인상이다. 아마 내 숙소가 차이나타운에 있어서 그런걸까 생각해봤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프랑스는 뭐랄까, 서구세계의 중국이고 파리는 프랑스의 북경에 비유할 수 있겠다.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는 공원에서 다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와인을 마시고 있길레 ‘오 역시 프랑스 간지인가’ 하며 나도 그 풍경에 한 부분이 되고자 서둘러 갔는데, 잔디 사이사이에 담배꽁초며 과자 껍데기 등의 쓰레기들이 눈에 띄어 1초도 머물고 싶지 않았었고, 그 넓고 큰 공원에 덜렁 하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그 화장실마저 열악하고 없던 병도 걸릴 거 같은 위생상태에 한번 더 놀랐다. 전세계인들이 모두 오고 싶어하는 에펠탑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내키지 않지만 급한 용변을 보기 위해 다리를 비비꼬며 10분 넘게 줄을 서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게다가 파리의 도시구획이 너무 잘 되어 있는게 문제였는데, 그냥 걷는 용도의 거리인데도 어찌나 거리가 넓찍하고 길다란지 어디로 한번 이동하려면 작정하고 내내 걷거나 택시나 지하철을 타야했다. 하지만 난 프랑스어를 못하니까 택시는 감히 못탔었다. 지하철은 열악했는데, 런던의 튜브가 귀여운 맛이라도 있었던 반면 파리의 지하철은 그냥 우울했다. 역사에 들어서는 순간 쿰쿰한 오줌냄새와 80년대 민주화 투사들을 고문했던 지하실을 연상케하는 맥아리 없는 조명들이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을 더 우울하게 했다. 또 마치 봉천동의 서울대입구역처럼 출구를 잘 찾아 나와도 진짜 목적지로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걷다보면 어디서든 마주치는 집시들을 물리쳐야 하는 것들과, 현지인과 스몰톡을 하자니 딱히 나와 말 섞기 싫어하는 무관심한 사람들과, 무뚝뚝하고 기계적인 교류만이 오고갔던 만남들도 날 점점 지치게 했다.



  여하튼 파리에 오기 직전에 런던에 2주쯤 있었는데, 프랑스에서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냥 다시 런던으로 가야하나 싶을 정도로 난 파리가 맘에 안들었다. 어쨌든 런던은 훨씬 쾌적했다. 빨간 2층버스가 비좁은 도로를 누비는 것도, 벤치나 카페에서 잠깐씩 본 사람들하고 스몰톡을 할 수 있는 것도, 고르고 골라 괜찮은 카페에 가면 신선하고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차질없이 주문할 수 있었다. 참 이상한 것이, 파리에서건 런던에서건 난 그저 흔한 아시안 관광객이었을텐데 왜 나의 주관적인 만족도는 런던이 훨씬 높은지 모르겠다. 언어의 영향이 크긴 하겠지만, 런던의 바이브에 친근함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가식인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모든 게 낯선 이방인에겐 가식의 친절마저 필요했던 모양이다.



   가끔 인스타나 트위터에서 파리 사진 같은 걸 봐도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차갑고 고독했던, 실망했던 기억들만 떠오른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실망감을 달래기 위해 미친 듯이 몰두했던 신발쇼핑이다. 내 발사이즈가 265이라서 기성품은 구하기 힘들고 늘 보름넘게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주문제작을 했지만 파리에선 내 사이즈가 평균사이즈라 어떤 신발가게를 가도 265 재고가 충분했다. 어떤 디자인이건 바로 내 사이즈로 시착하고 내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디자인의 다양함은 뭐 말 할 것도 없고. 결국 난 파리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거나 로맨틱한 경험했다거나 꿈꾸던 파리지엥 일일체험 같은 꿈을 이룬 것도 아니고, 그저 소비자로서의 편리함만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한국에서도 지겹도록 느끼는 것인데 말이다. (신발이라는 품목만 제외하곤) 내가 파리를 다시 간다면 그건 신발쇼핑을 위해서 일거다. 파리. 다시 가보면 좀 다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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