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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an 24. 2020

원나잇의 운명

세컨 나잇은 가능할 것인가

이 글은 밤을 꼴딱 새 버리곤 어지럽고 답답한 기분과 결국 다시 혼자라는 기분에 젖어 쓰고 있는 중이다.


 그와는 페이스타임으로 먼저 알게 되었다. 데이팅 앱을 통해 카톡에 서로의 아이디를 등록하고 채팅으로 서로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잘 통했고 서로에게 끌렸고 만날 날짜를 정했다. 어느 날 밤에 퇴근하고 돌아와 채팅으로 하루의 안부를 주고받다가, 내가 용기를 내서 화상통화를 해보자고 하였다. 다행히 그도 좋다고 하였고, 작은 화면 너머 서로의 얼굴, 목소리 그리고 분위기를 확인했다. 나는 그가 좋았다. 수염이 멋스럽게 난 것도,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것도 좋았다. 목소리, 정확한 발음, 너무 빠르지 않은 말속도도 다 좋았다. 빨리 그와 만나고 싶었고 다행히 그도 그렇다고 하였다. 


  만남 당일이 되어 홍대입구역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화면보다는 별로 멋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실망할 것도 없었다. 카페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나에게 물어볼 여러 가지 질문들을 준비해왔다(스마트폰에 실제로 내용을 적어왔음).  나와의 만남에 대해서 진지하고 성의 있는 자세로 임하는 그에게 고마웠고 즉각 호감을 느꼈다. 물론 그가 꼭 나라서가 아니라 다른 누구와도 이런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난 벌써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고 혼자 후식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니 뭐든 좋아 보이지 않았겠는가.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고 즐거웠으며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카페에서 식당으로, 식당에서 다시 카페로, 동네 공원에서 호텔로 갔다. 관계가 하룻밤으로, 가볍게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낯선 타인과 옷을 벗고 침대에서 뒹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고팠기에 만난 당일 바로 잠자리를 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선 후회하진 않는다. 섹스도 괜찮았고 많은 대화를 했고 많이 웃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역시 원나잇의 태생적 한계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나도, 그도, 그 이후로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카톡으로 안부를 묻지도 않고, 페이스 타임 따위도 하지 않는다. 분명히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는데, 그 전까진 서로에게 가까워지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딱 8시간 만에 갑자기 김이 팍 새버린 사이가 되었다. 참 웃긴 건, 나 역시 그에게 딱히 절절한 호감이나 그리움이 없어졌으면서도 상대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준다면 이끌리듯 못 이기는 척 한번 더 만나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섹스로 이용당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 것 같다. 우리 사이에 섹스 말고 뭔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폰은 조용하다. 그냥 바빠서 그러려니 싶지만 아마 그 역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결국 우린 하룻밤으로 운명 지어진 관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그와 조만간 통화를 해 그쪽의 진심을 확인해보려고 한다. 가슴 아픈 쪽이든, 희망적인 쪽이든 애매한 상태로 견디기엔 내가 성격이 급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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