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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r 07. 2020

제 남친을 자랑합니다

  글쓰기 수업을 해 온지 3개월 정도 되어간다. 과제를 제출하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가능한 성실하게 주어진 액티비티들을 다 소화하려고 애썼다. 글은 나에게 숨쉴 구멍이 되어 주었고, 나 자신을 더 좋아하게 해줬다. 


  그렇게 글쓰기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생활에 전념하는 동안 남자친구가 생겼다.  이제 갓 한달을 넘긴 커플인 우리는, 서로 부족하고 어설픈 모습은 귀여워해주고 또 멋지고 매력적인 부분들은 감탄하며 계속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 나는 글쓰기보다 남자친구가 좋아졌다. 주말동안엔 남자친구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심지어 화장실도 같이 간다(공중화장실 제외). 초등학교 시절 1-2학년 꼬마 여학생들이 같은 화장실 칸에 함께 들어가듯이 한 명은 일을 보고, 한명은 다른 곳을 보며 기다려준다.


  주중에도 수시로 만났고, 주말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늦게까지 계속 붙어있었다. 나는 글쓰기를 하기 보다 남자친구와 농담을 주고받거나 누워서 서로를 꼭 껴안거나 맛있는 걸 나눠먹는 게 더 황홀했다. 남자친구와 손을 잡는 순간 느끼는 일체감과 위안이 글쓰기보다 더 직접적인 위로였다. 하지만 동시에 내 안의 어느 부분이 질식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우리는 너무 가까웠고 솟구치는 감정에 좋아 어쩔 줄 몰랐다. 분명 행복했지만 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거리에 몸도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극심한 피로감, 아찔한 현기증이 왔다. 나는 이 모든 것들에서 한 걸음 떨어져 숨을 골라야 했다. 다시 혼자 잠을 자야했다. 일상을 회복해야했고,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건 쉬웠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남자친구가 잠을 자는 동안 작은 방에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의지나 노력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글쓰기는 그 만큼 나에게 본질적이고 큰 재미를 가져나 주는 활동이었던 것이다. 어느날 수업에서 나눠준 읽기 자료에서 황현산 선생님들의 글을 읽게 되었다. 한 사람의 어휘력은 그 사람 세계의 넒이를 반영한다는 것과 어떤 사물, 감정, 사람을 정확하게 복구하려는 노력, 다른 것들과 확실히 구분지어주려는 노력들은 그것들에 정확한 언어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남자친구를 보며 했던 고민들과 일맥상통 했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너무나도 특별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왜, 어째서 나에게 그토록 특별한지 나는 스스로 계속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내가 이 사람을 이토록 사랑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왜 이토록 확신이 드는지 낱낱이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본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 속에 어떤 자국을 남겨 놓는지 알고 있다.


그는 내면의 불꽃이 강제로 억압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안다. 그러나 이런 삶의 부정적 경험에 잠식당하지 않고 험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는 자신을 기꺼이 내려놓고 타인과 눈맞춤을 할 수 있는 겸허한 사람이다.


그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분노에 위축되지 않는 강인한 사람이다.


그는 사랑은 행동이며 노력이라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랑이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는 복잡하고 수많은 요소를 멋진 그림과 색채로 표현하는 화가이다.


그는 양치하는 걸 귀찮아 하고 가끔 빼먹기도 하는데 그게 나와 너무 비슷해 재미있다.


그는 좋은 컨텐츠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으며 그것에 거리를 두고 비판할 줄도 아는 지적인 사람이다.


그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캣대디였다. 지금도 내 고양이와 잘 놀아주는 cat person이다.


그의 영어는 투박하고 촌스런 콩글리시인데, 그걸 말할 때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다. 그의 콩글리시는 꾸밈없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들만이 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는 널부러진 옷가지들을 정성스레 접어서 개어두는 사람이다. 가끔 당장 빨아야 할 옷들도 접어두는데, 그걸 발견하면 난 부러 며칠동안 그 상태로 둔다. 그가 포개놓은 마음을 오래 느끼고 싶어서이다.


그는 순식간에 잠에 드는 사람이고, 잘 때 코골이 한번 안하는 sound sleeper이다. 나는 혼자 자는 게 가장 편한 사람이지만, 그의 이런 장점 덕에 같이 자는데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멋진 눈썹을 가진 사람이다. 색깔은 아주 진한 검정색이고, 숱이 많고 선명하다. 나를 만나기 전에는 좌 우 눈썹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내가 족집게와 가위를 가지고 깨끗하게 정리해주었다. 머리숱은 없어도 눈썹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완벽한 눈썹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는 소탈하지만 단정하다. 먹을 때 특히 그렇다. 점잖빼며 먹는 건 아니지만 늘 깨끗하고 조용하게 먹는다. 입을 벌리면서 씹거나 앞접시를 지저분하게 만들지 않는다. 늘 어딘가가 너저분한 내 식사자리와 비교가 된다. 옷매무새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아이템들로 간결하되 포인트를 주는 스타일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렇다. 밥값을 계산할 때에도, 배달원에게 물건을 확인할 때에도, 기사님께 길을 안내해줄 때에도 마찬가지다. 거드름을 피우거나 불필요하게 살갑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키며 반듯하게 의사소통을 한다.


그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체취를 가지고 있다. 씻고 나면 고유의 살냄새가 바디샴푸의 향기에 섞여서 더 사랑스러워 지는데, 겨드랑이쪽이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면 지극한 만족감이 밀려온다.


그는 내가 괴로워서 울 때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며 동시에 울고 있는 내가 귀엽다고 혼자 슬며시 웃고 있기도 한다. 싸이코패스 같다고 놀렸지만 광광거리며 눈물 콧물 흘리는 내 모습도 귀여워 해주는 사람을 내가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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