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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r 07. 2020

선함을 숨긴 이유  

영화 <클라우스>를 보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입니다. 영화에 대한 내용은 없으니 참고해주세요.]


올해 가을부터 였나, 심리상담을 꾸준히 받기 시작했다. 상담을 통해 스스로의 여러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중 남들에게 가장 숨기고 싶었던 모습은 '내가 정이 많고, 선하며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어렸을 때 꿈이 코미디언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때도 사람들이 나로 인해 즐거워하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남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을 느끼는, 관계가 주는 따뜻함과 안정감이 참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지하고 연약한 자아로 세상과 홀로 마주할 수 밖에 없던 나는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기질을 먼저 키워갔다. 선함을 드러내면 이용을 당하거나, 상처만 입고 너덜너덜 해질 거라는 나름의 생존 직감이 발동했던 결과였다.


그리고 난 내 안의 연약하고, 말랑거리는, 가끔 나를 무너지게 만들어버릴 것 같은 어떤 마음들을 감추고 눌러서 누구도 보지 못하게 꽁꽁 묶어 숨겨 놓았다. 차가운 도시의 여자가 나의 컨셉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애정어린 표현, 따스한 말 같은 건 절대 건네지 않았다. 연락 조차 먼저 잘 안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모른 척했다. 선함은 곧 약함이고, 내가 준 마음은 돌려받지 못할 것이며,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류는 패자들이나 추구하는 것이라며 결론을 지었다. 그 때의 나는 생각이 깊지 못했고 어렸으며, 정말로 힘든 시기를 지나는 중이었다. 스스로를 절벽으로 내몰아야만 하루하루 살 수 있었다. 모든 에너지를 "서바이벌 모드"에만 쏟고 나를 계속 채찍질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삶이 나아지자 "서바이벌 모드"를 잠시 꺼도 괜찮은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럴 때 주로 나는 울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 어떤 에너지들이 꿈틀거리다가 왁 하고 쏟아지듯 풀어졌다. 화가 나고 슬프고 억울했다. 그렇게 몇 번을 울부짖으며 눈물콧물을 다 쏟아냈고,  잠들 수 없는 밤들이 여러번 지났다. 난 이제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과를 갔고, 상담소를 찾아갔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전문가) 선생님들이 있었다. 늘 홀로 모든 걸 감당해오던 내게도 피난처 같은 장소가 생겼고 조금씩 내 마음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에 하는 상담치료에선 일주일 동안 내가 감정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일들 혹은 정서적으로 걸려넘어지는 부분들을 나열하면서 선생님의 피드백과 질문에 따라 대화를 이어간다. 이런 대화가 여러번 반복되면 내가 말하는 것들에서 어떤 패턴이나 키워드가 보이는 데, 그것들을 실마리로 내 마음의 생김새 / 지도 / 리포트를 그려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해선 내가 내 감정과 마음, 생각들을 되돌아보고 알아채는 훈련을 자꾸 해야한다. 상담은 내 "감정"을 말하는 곳인데 이야기할 감정적 소재들이 없으면 난감하니까, 일단 그런 마음에서라도 자꾸 내 마음을 살피게 된다.


그렇게 난 내 마음을 예민하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의식적 노력을 하기 시작했고 내 마음이 이런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지를 캐치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가 바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교감을 하는 것이 얼마나 나를 충만하게 해주는 지 이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베풀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내가 뿌듯하게 여기고, 어떨 땐 나에게 쓰는 돈보다 더 과감하게 돈을 쓰기도 한다는 점이다. 난 선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클라우스처럼. 그리고 결국 아이들의 선함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은 제스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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