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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y 05. 2020

코로나, 한옥카페, 실패적?

2020년 3월 16일 월요일 오후 다섯시 안국역의 한 한옥 개조 카페에서 이 글을 씁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3월 치곤 쌀쌀한 바람도 이곳에 온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대충 훝어보아도 50개가 넘는 테이블이 있는데 빈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음료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니 당연히 이 안에 마스크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핫플레이스’라서 그런지 다들 한껏 차려입었습니다. 


어떤 단발머리 여성은 반짝거리는 스트랩의 손목시계에 볼드한 실버 목걸이를 착용했는데, 그 위엔 루즈핏 가죽자켓을 무심하게 툭 걸치고 자신의 핸드폰을 바쁘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어떤 남성분은 굵은 검정색 뿔테에 흰색 맨투맨을 입고 언뜻 스키바지로 보이는 사이버틱한 하의를 입고 있습니다. 신발은 나이키인데, 우주인들이 신는 신발마냥 발목이 높이 오고 갓 산 것처럼 새하얗네요. 


모두가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 잡담을 나누거나, 심각한 대화를 나누거나, 일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눌 소재가 떨어졌는지 각자 다른 곳을 보며 쿨타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뿔싸, 사람들을 관찰하려고 시선을 여기 저기 돌려보는데 제 양 옆에 앉은 남성 두 분이 기침인지 재채기인지를 자꾸 하네요. 전 괜찮을까요? 바이러스일지도 모를 그들의 비말 세례의 중앙에서 이도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건강하길 바라며 좌측의 남성분 얼굴을 살짝 엿보았습니다. 중동 사람을 연상시키는 크고 쌍꺼풀의 깊은 눈을 가지고 계신데 다크써클이 낭낭하시네요. 약간 아파보입니다.  하지만 이 남성분보다 맞은 편에서 함께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고 계신 여자분이 걱정됩니다. 갑자기 어지럽네요.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어지러움은 혹시? 여성분들이 더 많이 있는 자리쪽으로 옮겼습니다. 위생면에서 저는 사실 여성들에게 조금 더 후한 점수를 주는 편입니다.


 

제 옆 좌식 테이블에 두 명의 여성 손님이 있습니다.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보이고, 한 여성분은 자세가 매우 곧고 묶어 올린 머리의 아우라로 보아 무용을 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 제가 지금 관찰이 아니라 궁예질을 하고 있네요. 여튼 이 여성분은 플라워 패턴에 어깨 셔링이 들어간 남색 블라우스에 흰색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얼굴을 조심스럽게 힐끗거리니 메이크업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빨강 입술에 발그레한 볼터치, 눈썹도 꽤 진한데 과한 느낌이 전혀 없네요. 칠할 거 다 칠했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자꾸 호감이 생기는 경우는 참 오랜만입니다. 아니면 제가 이렇게 메이크업에 능한 ‘힙스터’들이 모이는 카페에 온 적이 없어서 그럴수도 있고요.


 이 무용 전공자로 추정되는 여성분을 여러 번 힐끗거리고 든 생각은, 제가 헤테로라는 점에 대해 언젠가는 한번쯤 깊이 의심할 날이 올 것 같다는 직감과 역시 사람마다 타고난 골격과 분위기, 외모 등이 참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다양성이 어떤 면에서는 큰 도움이 될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 다른이들보다 더 호감을 줍니다. 세상은 더욱 평등해져야 한다는 게 평소 제 지론이지만 시각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인간들의 세상은 참으로 치열합니다. 우리는 어쨌든 외모로 평가받습니다. 같은 범죄를 지어도 외모에 따라 배심원들이 형량을 더 강하게 주기도, 적게 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오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 카페에 오면서 조계사를 지나쳤는데, 아, 여기까지 쓰고 나니 또 어지럽습니다. 아까 그 분들의 재채기는 결국 기침이었을까요? 좌측에 있던 남성분의 다크써클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스치고간 날카로 흔적이었을까요? 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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