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이 May 05. 2020

섹고의 고백

섹고란 섹스고자를 뜻합니다


(헤테로 여성의 관점에서 쓰였습니다)
난 섹스를 못한다. 그리고 여기에 열등감을 느껴서, 남자와 잠자리를 하게 될 순간이 온 다는 걸 직감하면 “사실, 나 말야….” 하고 천천히 운을 떼며 내가 섹스고자(이하 섹고)임을 밝히곤 한다. 보통 섹스의 스킬에 대한 잣대와 평가는 남성에게 더 가혹한 편이라, 여자가 섹스를 못한다는 것이 대체 어떤 걸 말하는 지 궁금할 수 있다. “일단 보지, 보지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삽입할 ‘구멍’이 있으면 90프로는 먹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자도 섹스에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

나, 섹고로 말할 것 같으면 너무 긴 피스톤 운동은 힘들어한다는 게 첫 번째 약점이다. 여성동지들 모두가 “그건 당연해. 나도 너무 섹스가 너무 길면 힘들다구”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 ‘긴 피스톤 운동’이 4-5분 가량이라면 어떤가? 나는 5분 이상은 버티기 좀 힘들다. 잠을 푹 자 컨디션이 아주 좋고 호르몬 주기상 성욕이 매우 높으며,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제로에 수렴하는 그런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날들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섹스 컨디션은 늘 안좋다. 하여 나에겐 약간의 조루끼가 있는 남성이 적당하다. 너무 길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삼초만에 사정하는 것도 아닌, 약간의 조루 남성…! 그들과는 적당히 자극적이면서 너무 짧지 않은, 사정까지 마무리되어 어느 정도의 기승전결이 있는 그런 섹스가 가능하다. 조루 남성들이여 너무 고민하지 마시라! 틈새 시장이 있다.

두 번째 약점은 낮은 성욕이다. 성욕이 아예 없다면 무성애자라든가, 플라토닉 관계만을 추구한다든가 뭐라 정의라도 내릴 수 있지만 또 성욕이 있을 땐 강한 편인데 이게 한달에 하루내지 이틀 꼴이고, 나머지 기간엔 거의 통나무가 된 느낌이고 보지는 그저 소변을 보거나 질 내 적당한 ph농도를 조절하는 기관의 역할만 하고 있기에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애매하다. 남친은 늘 꽂을 준비가 되어 있는 데 난 여러 요인들이 맞아 떨어져야만 성욕이 일어나니 이토록 균형이 안맞을 수가.

세 번째 약점은 콘돔 사용을 극히 꺼린다는 것이다. 보통 노콘섹스를 선호하는 건 남성들이고, 임신의 위험에 더 직접적인 여성들이 콘돔사수를 외친다고 하지만, 역시 늘 그런 건 아니다. 왜인지 나는 애액이 풍부하지 않은 편인데다 (전희가 약해서 그런걸수도 있다 하지만 전희를 끝내주게 잘하는 남자를 만나려면……중략) 좋다는 윤활제를 써도 콘돔으로 비비는 순간 바사삭 말라버리는 센시티브 보지의 소유자이다. 그러다 보니 콘돔 사용을 꺼리고 리얼 고추만 받아들이게 되는데 남성들도 성병의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여자쪽에서 콘돔을 쓰지말자고 하면 오히려 놀라며 나에게 무슨 사악한 음모 같은 게 있는 줄 알고 뒷걸음을 친다. 



마지막 섹고의 약점은 구사 가능한 체위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성상위 자세는 이미 몇 번 시도해보았지만 어떤 느낌도 잘 모르겠고, 어정쩡한 나의 몸놀림을 본 남자들이 답답해하며 그냥 정상위로 바꾸는 걸 보고 아 내가 정말 못하나보다 결론지었다. 그나마 제대로 느끼는 자세가 도기포즈인데 결국 나는 정상위와 도기자세 이 두 가지 외에는 잘 느끼지도 못하고 힘들게 체위를 바꿔봤자 오랫동안 버티질 못하는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상대에 따라 많은 변수가 있는 것이 섹스이기에 또 내가 진골 섹고라고 단정짓기도 어려운 것이다. 만약  진정한 섹스킹을 만난다면? 콘돔을 꼈지만 폭포수 같은 애액 분출이 일어난다면? 다양한 체위로 5분이 아니라 50분의 피스톤 운동도 즐기며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참 황홀한 일이겠다. 하지만 인생이 섹스가 다는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애인과 늘 비슷한 체위와 패턴이지만 서로 도킹되어 있는 상태를 즐기며 잔잔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기에 섹고 인생은 당분간 진전은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제 애인의 얼굴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