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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n 13. 2020

어쩌다 ‘확찐자’가 되었을까

넌 이미 이유를 알고 있다

  조용히 업무를 보다 왼쪽 손을 슬그머니 아랫배에 갖다 댄다. 바지 위로 튀어나온 두툼한 뱃살을 더듬다 손으로 한번 꽉 움켜쥐어 본다. 한 손 안으로 다 잡히지도 않는 크고 두꺼운 지방. 여기저기 꼬집고 눌러본다. 이 정도면 지방흡입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빠지기는 하는 걸까? 손에 잡히는 피하지방들이 어째 어제보다 더 커진 것 같다. 고작 2주 전에 산 XL 사이즈 스키니진이 벌써 작아진 듯 답답하고 쪼인다. 그새 또 살이 쪘나 싶어 우울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한다. 어느 새부턴가 부어버린 몸, 쪄버린 살들이 적응이 안돼 괴롭다. 이젠 실제 체중도 건장한 성인 남성들과 견주어 밀리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 체중계가 무섭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나는 평생 보통 체격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마른 비만이었던 시절은 있지만 찐 비만인이 된 건 처음이다. 처음부터 살집이 좀 있었더라면 이렇게 혼자 가슴앓이는 안 했을 텐데 너무 갑자기 확 쪄버려서 생각이 많다. 도대체 왜 이 지경까지 왔나 분석해본다. 답이 안 나온다. 야식 때문이겠지만, 사실 예전에도 야식은 먹었었거든. 스키니진을 입은 다리가 퉁퉁 부은 소시지 같다. 허리춤 위로 삐져나온 살들을 보고 누군가 흉이라도 볼까 두렵다. 배고파서 먹는 음식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운동은 매일 하지만 기분만 좋지 몸이 좋아지는지는 모르겠다. 역시 운동은 다이어트에 1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몸이 상할 까 삼시 세끼는 잘 챙겨 먹는 데 양은 많이 줄였고 정제 탄수화물은 피한다. 하지만 변화는 없다. 아니면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고. 


  배달어플 탓인 거 같기도, 역시 야식이 문제였나 싶기도 하다. 도대체 어쩌다 10킬로 넘게 쪄버린 건지 모르겠다 주변에 하소연해댄다. 날렵한 복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저 사람들은 왜 뱃살이 없을까 부러워하다 또 질투한다. 


  하지만 정말로 모든 생활패턴과 식습관은 그대로인데 살만 불었는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눈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 덕에 배달앱을 내키는 대로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일에 지장을 줄 수 있을 거 같아 죽을 것 같이 힘들게 하던 운동 강도도 많이 낮추었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건 최소화했고 일단 밥을 먹었다 하면 누웠다. 집에서 조금씩 하던 스트레칭이나 요가도 더 이상 안 하게 되었다. 남자 친구가 생기고 맛있는 걸 많이, 잘 먹었고 같이 후식도 야무지게 챙겨 먹으며 살았다. 결국 살들은 차곡차곡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댈 수는 있으나 결국 나는 코로나를 핑계로 움직임은 최소화하고 반대로 음식은 너무 잘 먹으며 살았다. 이유가 있는 몸무게의 증가였다. 손으로 내 입에 음식을 갖다 넣은 사람은 나이다. 양고기, 삼겹살, 피자, 떡볶이, 치킨 같이 온갖 맛있는 걸 먹으며 즐거워하던 기억은 어디다 두고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몸에 문제가 있나 봐요"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려는 건가. 이젠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원인 없이 찌는 살은 (건강한 성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없다. 


자,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다이어트? 운동? 절식? 단식?

사실 잘 모르겠다. 맛있는 걸 먹는 낙만큼 즐거운 게 또 있는지 모르겠고, 날이 더워 운동이고 뭐고 다 귀찮아지고 있다. 난 바지 위의 두툼한 뱃살과 더불어 살아가게 될까 아니면 결국 작별을 하게 될까? 

나도 정말 모르겠다. 이 살들의 운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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