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 무작정 노트북을 들고 나왔는데, 배가 고프니 일단 밥부터 먹어야지 싶었다. 어제부터 계속 생각났던 초밥을 먹으러 근처 백화점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연말 쇼핑을 위해 몰려든 인파가 백화점 지하 주차장은 물론 근처 오피스 건물들까지 장악하여 주차할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백화점 옆 거대한 빌딩의 두 개 층 정도를 궁시렁거리며 몇 번이고 돌고 돌았다. 왠지 나갈 것 같은 차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다, 알고 보니 그냥 차에서 짐만 빼가는 것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실망하며 다시 몇 바퀴를 돌다 나왔다. 배는 점점 더 고파졌고, 맛있는 한 끼를 고대하던 마음은 극심한 허기와 함께 불쾌함으로 변했다.
결국 상대적으로 덜 붐빌 것 같은 동네로 방향을 틀었고, 점심시간임에도 좌석이 많이 비어 있던 초밥집 안으로 들어갔다. 초밥도 초밥이지만 회가 유독 먹고 싶었던 나는 메뉴판에서 모듬회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직원분께 "혹시 모듬회는 없나요?" 물었는데,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눈빛으로 "여긴 초밥집이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배도 고프고 기분도 상했지만, 먼 곳을 응시하며 작은 목소리로 "초밥집에서도 회 파는데…"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종지에 간장을 붓고 자시고 할 새도 없이 먹고 싶던 초밥 접시를 집어 들어 급하게 한 점 먹었다. 그러나 왠걸, 샤리가 너무 떡져서 마치 백설기와 함께 생선회를 먹는 기분이었다. 생선살과 밥이 이토록 따로 놀 수가 없었다. 쌀 입자와 생선 단백질이 서로 절대로 만나지 않으려 애쓰는 느낌마저 들었다. 초밥집에서 모듬회를 찾는 이상한 손님으로 한차례 굴욕을 겪고 난 터라, 백설기 초밥까지 수용할 마음의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딱 두 접시에서 멈추고 근처 쌀국수집으로 향했다.
'얼큰한 소곱창 쌀국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메뉴판에 있는 메뉴를 시킨 정상적인 고객으로 대접받으니 아까 빈정상했던 마음이 조금 회복되는 것 같았다. 진동벨이 울리고 뻘건 국물의 쌀국수가 내 앞에 놓였다. 다진 마늘, 소곱창, 대파, 숙주 등 다양한 재료가 고명으로 올라와 있었다. 한 젓가락 크게 건져 올려 입 안에 넣었다. 모든 재료가 조화로웠다. 겉돌거나 과하게 익거나 덜 익은 재료가 하나도 없었다. 백설기 초밥의 기억을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의 완벽한 익힘, 온도, 간이었다. 과하게 맵지 않고 딱 육개장 정도의 얼큰함은 덤이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하고 왔어도 절대 실망하지 않았을 맛있는 국수 한 그릇이었다.
맛있게 먹고 있으니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내 또래의 아기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두 돌 좀 안 된 것 같은 아이에게 국수를 먹이려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아이와 둘이 외식하는 게 얼마나 정신없고 진 빠지는 일인지 잘 알아서, 왠지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환기해 주고 싶었다. "아이랑 상호작용을 엄청 잘해주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을 건넸다. 아이 엄마는 한 손으로는 아이를, 한 손으로는 접시를 들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수줍게 웃으며 "아, 저도 첫째한텐 이 정도까지는 안 해주는데…"라고 대답했다. 이를 시작으로 우리는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만이 나눌 수 있는 대화를 꽤 오랫동안 이어갔다. 각자 다른 성별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지만, 공감대를 찾는 건 바다에서 물 찾듯 쉬운 일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진 대화가 30분 정도 흐른 뒤, 우리는 연락처 교환도 통성명도 없이 웃으며 헤어졌다. 어느 사소하게 불운했던 점심을 반전시킨 그녀와 쌀국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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