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NB와 부비부비

낯선 등의 온기를 기억함

by 루이

나는 지각도 거의 안 하는 꽤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이상하게 유흥문화엔 관심이 많았다. 클럽이란 곳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꼭 가봐야 하는 곳이었다. 어설픈 대학 신입생 시절이 지나고 같이 클럽에 갈 친구가 생겼을 때 난 바로 '강비'에 도전했다. 당시 잘 나가던 클럽이 여럿 있었고, 대부분은 홍대에 있었다. 하지만 난 경기 남부에 살았기에 홍대 클럽은 너무 멀게 느껴졌고, 초보자로서 일단 집에서 그나마 가까웠던 '강비'를 뚫어보는 게 중요했다. 강비는 강남 NB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당시 강남과 홍대에는 양현석이 운영한다고 알려진 '클럽 NB'란 곳이 있었는데 강남 NB는 '강비', 홍대 NB는 '홍비'라고 불렀다.


클럽에 처음 가는 초짜로 보이기 싫어서 미리 블로그나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검색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클럽에 가면 짐을 보관하는 곳이 있는데, 현금을 꼭 준비해 와야 이용할 수 있고 입장할 때는 팔찌를 채워주고.. 사람들이 대충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분위기로 노는지를 미리 알아두었다. 그리고 드디어 디데이가 되었다. 어설프게 화장을 하고, 옷장에서 제일 '까져' 보이는 옷을 입었다. 평소엔 발가락이 아파 쳐다도 안 보는 5센티 구두를 신고 정류장으로 갔다. 밤 9시가 넘어 설레는 마음으로 강남역 직행버스를 탔다. 그 시간에 강남행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같이 놀러 가는 애들이었다.


주말 늦은 밤 강남역 근처엔 이미 취해 있거나 취할 예정인 사람들만 모여있었다. 다들 뭔가 들떠 보이기도, 음침해 보이기도 했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화장을 고치고 있거나 껴안고 있는 무리들이 많았다. 강비 근처에 이르자 둠, 둠, 둠 온몸을 진동시킬 정도의 묵직한 떨림이 느껴졌다. 베이스가 강한 힙합 음악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어두운 계단을 떨리는 마음으로 내려갔다. 중간쯤에 이르자 블로그 후기에서 본 것처럼 짐 맡기는 곳이 나왔고, 인상이 세 보이는 직원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좀 더 내려가자 메인 무대와 테이블이 보였고,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서 다들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도덕과 정의와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 타락이 허용된 금기의 세계에 온 것 같았다. 음악소리는 너무 커서 귀가 아팠고, 바에서는 직원들이 바쁘게 술을 만들고 있었다. 지하에서 이런 일을 하면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하고, 구석에서 격정적으로 키스하는 남녀를 몰래 힐끗거리기도 하고, 나처럼 어설프게 꾸미고 온 다른 무리들을 보고 안도하기도 했다. 이곳이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씩 적응이 되었다. 강비에는 메인 스테이지 뒤편에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으로 올라가면 위에서 사람들을 올려다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일행과 그곳에 올라가 사람들을 구경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약간 심심해지려는데 내가 좋아하는 Rihanna 노래가 나왔다. 약간 흥분했던 나와 일행은 일부러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있던 곳으로 가 어설프게 몸을 흔들고 놀았다. 그런데 내 뒤에서 나보다 키가 큰 누군가 다가와 내 몸짓에 맞춰 같이 춤을 추는 게 느껴졌다. 그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내 춤을 방해하지 않았고 나는 그와 같이 춤추는 게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가까이에서 춤을 췄다. 그리고 점점 그가 내 등과 엉덩이에 밀착해서 붙었고 나를 안다시피 했는데, 그때 나는 "이게 부비부비구나" 하고 깨달았다. 부비부비. 그땐 클럽에서 남녀가 찰싹 붙어서 춤을 추는 문화가 있었다. 그때 나는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몸을 욕망하는 이성을 느낄 수 있었고, 그걸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나를 느꼈다. 묘한 해방감을 느낄 무렵, 일행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해서 그의 손을 뿌리치고 나왔다. 처음 경험해 본 클럽과 부비부비의 경험은 강렬했다.


그 이후로도 강남, 이태원 등을 오가며 '클러빙'을 즐겼고, 부비부비는 없어졌지만 그런 '밤 문화'를 좀 더 나답게 즐기는 법을 터득했다. 내 취향의 음악을 틀어주는 곳을 찾아가거나, 담배연기가 없고 각자가 즐겁게 즐기는 밝은 분위기의 클럽을 주로 갔다. 하지만 같이 놀자는 남성들의 제안이 없으면 내가 매력이 없나 싶어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모든 시행착오가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만족을 찾는 과정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나이를 점점 더 먹고 이젠 클럽이 너무 피곤해서 못 간다 싶을 지점까지 왔고, 그 이후론 안 가게 되었다.


이젠 클럽의 소음이 그립지 않고, 높은 구두는 결혼식 이후로 신은 적도 없다. 하지만 가끔 밤에 아이를 재우고 뭔가 헛헛한 밤이면, 그 시절 술 냄새와 담배 연기 가득 나던 어둠 속에서 낯선 이의 체온을 느끼며 흔들리던 나와, 그 공간의 느낌을 떠올린다. 그때의 일탈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스스로의 좁은 틀을 깨고 나와 '욕망하는 나'를 처음으로 마주했던, 생경하고도 뜨거운 해방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상을 알고 나를 알아가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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