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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Sep 06. 2016

제주도 감귤농장 언니와 인생 톡

외딴곳에서 세상과 연결되다

모녀가 찾은 제주였다. 난 뒤늦은 인생의 사춘기를 겪느라 출렁이는 마음을 얇게 꼬매 놓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딸과의 여행에 기분 좋게 떠난 길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여행을 하고 싶어서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기억은 정확히 안 나지만, 그냥 인터넷 서칭을 하다가 우연히 제주도 감귤농장 한가운데 있는 가정집이 눈에 들어왔다. 검색을 해보니 언론에도 나왔다고 하고 사진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 가는 대로 덜컥 예약을 했다. 어머니가 좋아하실지 살짝 걱정이 됐는데, 웬일인지 어머니도 좋다고 하셨다.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가면서 "이 길이 맞겠지.. 음~맞을 거야. 아니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괜한 짓 한 거 아니야?"를 연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옆자리에 계신 어머니 몰래... 간신히 도착했더니 고운 얼굴의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주인이 반갑게 집 앞까지 마중을 나와 주셨다. 감귤만큼 싱그럽고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그때부터 마음이 놓였다. 낯선 사람 집에서 잔다는 건 생각보다 '두근두근' 설렘반 두려움반이었나보다.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 유도해주신 덕분에 좁은 집 마당으로 자동차를 후진해서 주차. 드디어 집 문턱을 넘었다.


호텔이 아닌 공간에 낯설어하던 우리 어머니. 쭈뼛거리시던 모습은 잠시. 금세 익숙해지셔서 아줌마 신공을 발휘하신다. 연신 "아~휴, 어쩜 이렇게 예쁘게 꾸며놨어요." 감탄사 연발이다. 거실 소파며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침대보, 창문 가리개까지 정성스럽게 수작업으로 만들어 알록달록 깔끔하고 정갈하다. 여주인의 예쁜 손길이 안 간 곳 없는 공간이다. 아파트 말고 가정주택이 골목에 주르륵 몰려 살았던 그때 그 시절,  동네 이사 온 집에 마실 온 듯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어머니가 즐거워하신다.


그래서 그날 저녁은 친한 옆집으로 마실 온 듯,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앉아 과일을 깎아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어머니는 "그~래, 어떻게 여기서 혼자 살고 있는 거예요?"하면서 엄청난 친화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내셨다.


친절한 감귤농장 언니는 이런 낯선 사람들의 관심에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찬찬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갔다. 큰 사업을 하시던 부모님이 여러 사정으로 사업을 접고, 지방에 내려가서 조용히 살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제주도로 내려왔다. 가족들 모두 성인으로 나름의 사연이 있다.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한 방식으로 제주도에 감귤 농장을 하나 사고, 집을 한 채씩 지었다. 부모님, 남동생, 본인 집. 그래서 서로 독립적인 생활도 하면서 감귤농장을 함께 가꾸는 삶이었다. 큰 살림을 하던 삶. 사업도 번창했고, 사회생활도 활발했고, 손에 흙을 묻히는 일은 해보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골에 내려와서 농사를 짓고 산다고? 나라면 엄두도 안나는 일이다. 그런데 언니가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표정이 너무 편안하고 만족해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인생의 사춘기를 앓고 있던 나에겐 언니는 왠지 한 고비를 넘기고 자신만의 작은 정답을 찾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주말 필수 코스인 주말 드라마를 보시는 동안 부엌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아 속내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하룻밤 머물러 가는 낯선 사람의 집에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게 될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언니에게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농사짓고 산다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음~일은 좀 힘들어. 그래도 남동생이 농사 힘든 일은 많이 하고, 난 조금씩 거들 뿐이야. 그리고 시내에서 내가 예전에 동남아에서 살면서 가구 무역업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기업에서 일도 조금씩 하고 있어. 살만해."


외롭지 않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니, 외롭진 않아. 신기하지? 이렇게 감귤 농장 한가운데 살고 있는데 말이야. 근데 혹시 숙박공유사이트라고 알아? 인터넷으로 이렇게 자기처럼 우리 집에 남는 방을 예약하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다 보니 한번 우리 집에 머물렀던 사람이 다음번 휴가 때 또 친구랑 연인이랑 내려오기도 해. 연말이나 새해에는 카드도 보내주고, 인터넷에 후기도 남기고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어. 그래서 외롭지 않아. 인터넷이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거야. 컴퓨터만 켜면 사람들의 따뜻한 대화가 있고, 찾아와서 이렇게 말동무도 하고 친구가 되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참 좋고, 외롭지 않더라고."


이때 심장에서 나비 한 마리가 팔랑 팔랑이며 날갯짓을 하듯 기분 좋은 설렘이 난데없이 찾아왔다. 소소한 일상에서의 행복감을 누리지 못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치여서 마음의 허전함을 느끼던 시기였다.  익숙했던 세상을 훌훌 던져 버리고 낯선 세상으로 자리를 옮겨서, 가장 외로움을 느낄 것 같은 외딴 공간에서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교감하고, 오프라인의 만남으로 행복함을 만들어간다라.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서로의 사적인 공간을 공유하기도 지키기도 하는 모습. 하룻밤 대화였지만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몇달 후 7년 넘게 다녔던 회사를 그만뒀다. 내 인생 작은 변화의 물줄기가 방향을 잡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길 위에서 또 인연을 만났다.


지금도 문득문득 언니가 보고 싶어 진다. 올 가을에는 그날 밤 인연이 만들어낸 내 인생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러 다시 감귤농장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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