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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Sep 18. 2016

글로벌 여행자 가족과 모닝 콘서트

마음을 활짝 열고 일본집에서 하룻밤 가족이 되다

일본 집주인 '마사미'상과 함께 장을 보고 저녁식사 준비를 하던 중, 바깥이 부산스러워졌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까르르르' 웃음소리가 들리면서, 예쁜 금발이 곱슬곱슬한 소녀가 부엌으로 뛰어들어왔네요. 지금 이 집에 머물고 있는 여행자 가족들이 도착한 거더라고요. 미국 콜로라도대 영문학 교수인 에릭과 의사인 아내, 초등학생 또래의 아들과 딸. 에릭이 루마니아 대학 교환교수로 가는 김에 일 년간 세계를 여행하는 중입니다.   

그날 밤 부엌에는 동유럽계 아빠, 인도계(?) 엄마와 아이들, 일본인 가족과 저까지 다양한 피부색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둘러앉아, 중국식 교자를 만들었어요. 이미 속 반죽을 다 끝내 놓은 안주인 '이쿠코'상이 만두피랑 만두소를 펼쳐놓고 시범을 보이는 대로 열심히 만들었는데, 모양도 나라만큼이나 정말 가지각색이네요. 그래도 기름 냄새 맡으면서 철판에 바짝 구우니까, 맛은 정말 끝내줬어요. 속은 많이 넣지 않았는데도, 바삭바삭한 피가 정말 맛있더라고요. 저는 철판 위에 각종 야채를 넣고 양손에 주걱을 쥐고는 소스를 붓고 휘리릭 섞어서 데판야끼를 만들었는데, 이건 메인 요리. 이쿠코상은 디저트를 만들어주겠다고 반구가 많이 있는 특별한 철판을 하나 가져왔는데, '오~ 타코야끼'.  맥주랑 사케까지 곁들여서 그날 밤 다 같이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를 듣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큰 눈이 매력적인 소년은 예의 바르게 어른처럼 말하려고 애쓰는데 어찌나 귀업던지. 오빠한테 밀리기 싫은 꼬마 아가씨 일리노어는 자기도 대화에 빠지지 않겠다고, 온천을 다녀와서 졸린 눈을 부비부비 하면서도 오늘 얼마나 즐거웠는지 온천탕을 하나하나 설명하느라 바빴어요.

에릭네 가족은 이미 여행을 떠난 지 두 달인 데요. 여행을 하면서 가족 블로그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큰 병원 의사인데, 이번 여행을 위해서 일 년간 일자리도 그만두었습니다. 직업은 언제든 다시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고, 지금은 가족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쌓는 여행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일 년간 가족과 함께 미국을 떠나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은 홈스쿨링을 하고, 루마니아에 머 물땐 현지 학교에 보낼 생각입니다. 근데 홈스쿨링은 엄마에겐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눈동자를 크게 굴리면서 말하네요. 그래도 아이들이 아직은 착하고 건강해서 괜찮다면서 여행 사진을 보여주는데, 아이들이 자기 몸집만 한 배낭을 앞뒤로 메고 걷고 있는 사진입니다. 엄청 힘들만한데도 가족이 함께 떠난 도보여행이 아이들에겐 신나는 모험이 되어 있더군요. 아이들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을 '내 친구'라고 말하면서 열심히 소개하여줬어요. 특히 발리에서 머물던 집에는 또래 아이들이 있었는데, 한가족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저보고 꼭 가라고 성화네요.


에릭 부부, 마사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행이란 결국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깊어졌습니다. 에릭 부부는 지난 두 달간의 여행을 돌이켜 보면 예전의 여행 방식으로는 엄두를 못 냈을 모험이다라고 하더군요. 아이를 둘이나 데리고 오랜 기간 세계를 여행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요, 우선 비용도 만만치 않죠. 호텔에 머물면 아이들을 위해서 밥도 제대로 해줄 수도 없고, 근데 에릭은 그것 도보다도 호텔처럼 키를 받아서 방에 들어가 식구들끼리만 있는 경험을 원치 않더군요. 에릭은 아이들이 미국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만나고 접하면서 살아보길 원했어요. 에어비앤비 같은 숙소에 머물면서 그 집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그 문화를 접하고, 이번 여행길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하면서 마사미 부부를 바라봤죠. 마사미 부부처럼 자기 집을 열어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매일 같이 아침과 저녁식사를 함께 만들어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을 살아보는 것, 그런 여행이 본인이 원하는 여행이라는 거죠.


그리고 네 명의 식구가 함께 만들어가는 블로그를 보여줬습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일주일에 두세 개의 글을 꾸준히 가족들이 써 내려가면서, 아이들이 생각이 자라나는 걸 보고, 글을 통해 문장력도 많이 쌓여가는데, 여행이 훌륭한 교육이라는 거죠. 일리노어가 자기 블로그를 저에게 보여주면서 자랑을 하는데, 이 아이가 쓴 첫 블로그 글은 두 줄 정도였어요. 그러더니 점점 더 길게 자기가 그날 느낀 감정을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주듯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고 사진이 붙고, 점차 재미가 붙어 이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더군요. 어엿한 작가예요. 가족 모두가.


이 식구들의 재능은 글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웃고 장난치느라 항상 유쾌했던 가족들이 긴 여행에 지치지 않은 비결은 다음날 아침에 알게 되었어요.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사미 상의 스튜디오에 모여서 커피 한잔씩을 하는데, 가족들이 스튜디오 한편에 위치한 악기들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더군요. 아들이 기타를 잡고 독주를 시작하는데, 여행 내내 자기 기타를 들고 다니면서 악상이 떠오를 때면 작곡도 하면서 음악을 즐기고 있었어요. 노래는 썩 잘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 소년 대단하지 않아요? 게다가 꿈은 음악가가 아니라 화학자. 자연스레 마사코 상의 막내아들이 드럼스틱을 잡자, 에릭이 피아노 앞으로 가서 건반을 치기 시작하네요. 일리노어가 가만있을 리 없죠. 바닥에 놓인 퍼커션을 잡고 둥둥둥 음을 맞추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옆에서 심벌즈 같은 악기를 잡고 탕탕탕 박자를 맞추죠. 계획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모두가 아침 합주를 시작했어요. 신기하고 즐겁고, 가만히 바라만 보기만 할 수 없어 저도 셰이커를 들고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어요.  박자가 잘 맞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협화음도 아닌 음악이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습니다. 모두가 가끔씩 눈이 마주치면 바라보고 웃고, 웃느라 박자를 놓치고. 예전에 집시들이 어딘가 마을에 들러 하룻밤 투숙하면서 모닥불 피워놓고 밤에 자연스럽게 연주하고 노래 부르면서 시간을 보내듯이 자연스럽고 즐거운 아침시간이었어요. 이 가족들은 여행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기회가 되면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더군요. 누군가가 마음이 움직여 연주를 하면 가족이 자연스럽게 다 함께 연주를 하고, 때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언의 응원을 하고 박수를 쳐주면서 호응을 하고. 음악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서로 소통하는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번 여행길에 또 멋진 가족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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