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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Sep 25. 2016

도쿄 북앤베드에서 책 읽다 잠드는 밤

비 내리는 창 너머로 도쿄 빌딩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소파에 누워 책 읽기

"What we do offer is an experience while reading a book (or comic book). An experience shared by everyone at least once : the blissful "instant of falling asleep".
It is already 2 am but you think just a little more... with heavy drooping eyelids you continue reading only to realize you have fallen asleep."


Book&Bed에 입성하기까지의 여정은 물음표의 연발이었습니다. 비가 주르륵 내리는 데 우산은 없고, 캐리어를 끌고 비를 맞으며 주소를 찾아 도착한 곳은 그야말로 빌딩 숲 한가운데 있는 평범한 작은 빌딩. 복잡스러운 찻길가에 위치하고 식당이 여러 개 있는 건물 어디에도 조용한 북스테이를 할만한 곳이 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건물 밖 간판에 Book&Bed의 파란색 간판을 보고 '이거 괜히 호텔에 묵을 걸 잘못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과 함께 7층 버튼을 눌렀습니다.


 '띵' 엘리베이터 멈춤 소리와 함께 열린 7층. '응?' 내리자마자 한걸음 앞에 문 하나 달랑 잠겨져 있고, 좌우로 두 걸음씩 남은 공간. 오른쪽에는 음료자판기 하나, 왼쪾은 Book&Bed 로고가 적힌 나무 장식과 벨 하나. 호텔 리셉션에 가면 손바닥으로 치면 '땡'소리가 나면서 직원이 나타나는 그 은색 벨이 있었습니다. 입구를 잘못 찾았나 하면서 혹시 몰라 눌러봤더니, 깜짝 놀라게 나무 장식 3칸짜리에 마지막 칸이 열리고 고개가 쑤~욱 나오면서 예약을 했냐고 물어보네요. 이때부터 즐거움이 시작됐습니다. 옛날 영국 탐정 드라마에 나오는 듯한, 궁금증이 확 몰려오는 거죠. 빌딩 숲 한가운데 벨소리와 함께 예상치 못한 전혀 낯선 공간이 열리면서 새로운 세계에 초대된다는 느낌?


리셉션 직원의 안내를 받아 문이 열리자, '우~와!'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가 나오고, 책이 매달려 있는 천장 아랫사람들이 벽에 기대에 앉아 편안하게 책을 읽고, 창가 긴 소파 자리엔 책을 옆에 놓고 잠이 든 사람도 보입니다. 방을 보여주겠다고 해서, 저를 안내해 준곳은 서가 사이. 파란 커튼을 걷어버리니 침대 매트리스가 보입니다.  서가 뒤 공간을 침실로 만들어놓고, 입구를 조그마하게 서가 사이로 터놓았더라고요. 이것도 재미났습니다. 몸을 구부려서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긴 침대와 침대 옆 공간에 그래도 30센티 정도는 여유가 있네요. 공기청정기, 작은 사물함, 조명과 핸드폰 충전기도 놓을 수 있고, 머리맡에는 옷을 걸 수 있는 행거까지. 아기자기합니다. 작은 키라 그런가 앉아서 다리를 길게 뻗고 커피 한잔을 놓고 책을 읽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더군요. 그래도 이 곳에 머무는 시간은 대부분 바깥 소파 자리에서 보냈습니다.


서가에 책은 생각보다 많아 보이진 않았어요.  3천 권 정도가 있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Shibuya Publishing and Booksellers가 신중하게 고른 책들입니다. 대부분 일본어로 된 책이지만 한쪽 섹션에는 영어로 된 책도 있어요. 여행부터 인테리어, 문학 소설, 잡지부터 반가운 만화까지 취향별로 고를 수 있지요. 서가를 샅샅이 뒤지다 보니 한국 소설책도 2권 정도 찾아냈고, 한국 잡지 매거진 B 시리즈로 발견한 즐거움도 있었어요. 생각해보니 하룻밤 자는 여행자들에게 책이 몇만 권이 있을 필요는 없네요. 서가를 죽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 2-3권을 집어 들고 낯선 도시지만 책을 좋아하는 다른 여행자들과 한 공간에 머물면서 마음 편안한 음악에 책을 읽는 시간을 함께 공유한다는 경험이 주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이 공간을 만든 사람이 이렇게 말했더군요. 여행자들에게 푹신푹신한 침대를 제공해주진 않지만, 새벽 2시 책을 읽다가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잠이 드는 밤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요.


그래서 도전해봤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창가 자리에 누워서 뒹굴뒹굴 한국어로 이미 마스터한 일본 만화책, 가족과 함께 일본에 살게 된 미국인 아줌마가 겪은 문화적 차이를 재미있게 써 내려간 에세이, 도쿄의 지역별 특색을 생생하게 그려낸 일러스트 책. 이 세 권이 북앤베드에서 저와 함께 한 책들입니다. 4시가 조금 넘어 체크인을 했는데, 새벽 두 시까지의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너무 깨끗한 공용시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소리. 책 읽는 여행자들을 위해 소음을 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작은 배려. 드러눕기가 전혀 꺼려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소파. 그리고 비가 내려 빗방울 자국을 계속 만들어 내는 창가. 북앤베드의 풍경이 별 움직임 없이 조용하고 느리게 흐르고 있다면, 창밖의 풍경은 정말 달랐어요.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심 속. 고개를 밑으로 내리면 움직이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신호등의 껌뻑이는 불빛이 생동감을 더해줍니다. 지루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저렇게 바삐 움직이는 바깥세상에서 한 발자국 안으로 들어왔더니 이렇게 책 읽으면서 조용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그러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어느새 옆 자리에서 책을 읽던 사람들 대부분이 조용히 샤워를 하고 서가 뒤로 사라졌네요. 한두 명이 여전히 남아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립니다. 살짝살짝 눈꺼풀이 나도 모르게 내려앉았다 올라감을 느끼다, 아쉽지만 저도 서가 뒤로 사라지기로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누워서 책을 더 읽다가 책을 펼쳐놓은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6시 저절로 떠지는 눈. 소란스러움 때문에 떠진 건 아닌데, 서가에서 몸을 빼 나오니, 아~ 이미 하루의 시작을 책과 함께 하는 여행자들이 있네요. 체크아웃까지 몇 시간 남은 시간이 아쉬워 저도 어제 읽지 못했던 책을 집어 들고 다시 파란 소파로 향합니다. 어제와 다른 자리에 앉아서 아래 새벽부터 오픈한 커피숍에서 사 온 카페라테 한잔을 놓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밤과 달리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아침을 깨웁니다. 여행자들이 체크아웃을 위해서 가방을 싸느라 어쩔 수 없이 나는 소음이죠. 어젯밤의 차분하고 조용했던 공기의 흐름과 달리 오늘은 모두 새로운 여행길을 떠나기 위한 준비로 소란스러웠지만 정작 11시 체크아웃이 가까울수록 마지막까지 책을 읽다가는 경험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이 모두 소파에 앉아 조용히 독서를 하는 풍경이 재밌었어요.


다음에 도쿄를 오게 되면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장소인데, 마침 교토에 지점을 곧 개설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이번 도쿄 여행 덕에 책과 함께 한 즐거운 여행 경험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여러분도 다음 도쿄 여행길에 Book&Bed에서 책과 함께 잠드는 여행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Book & Bed Tokyo:

이케부쿠로역 근처에 있다. 30개의 침대가 있다. 도미토리 형식의 Bunk와 서가 사이에 자리한  Bookshelf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사이즈는 Standard와 Compact형이 있다. 깔끔한 공용 샤워시설과 화장실이 있다. 수건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유료 목욕 타월도 제공한다. 목욕타월에 미니 목욕용품 세트가 담긴 가방세트도 판매하고, 북앤베드 로고가 새겨진 파자마, 티셔츠, 토트백, 머그잔도 살 수 있다. 유료 커피 바도 있다.  하네다공항 가는 공항버스가 길건너편에 있어 편리하다. 곧 교토점도 생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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