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라주] 캐리어 분실
짐 분실 우려 때문에 최대한 가볍게 짐을 싸서, 2주 내내 기내용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그런데 마지막날 마드리드 출발 귀국행 비행기에서 결국 사달이 났다.
비행기에 순서대로 탑승했는데 머리 위 캐빈이 모두 꽉 찼다. 우리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우리 앞 팀도 같은 상황이다. 결국 승무원이 와서 일부 승객의 짐을 기내에 실을 수 없다고, 서울에 도착하면 찾을 수 있게 해 주겠다면서 짐을 가져갔다. 대충 서두르는 폼과 달랑 짐만 가져가니 불안한 마음에 표식을 달라고 요청을 했다. 좌석 번호를 묻더니 바코드만 달랑 찍한 표를 건네줬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다. 그렇지만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물어보니, 담당직원은 짐은 서울행 비행기 편에 무사히 실으니 걱정하지 말고 서울에 가서 찾으면 된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에 표식에 명확한 표시가 없다고 하자, 전화를 몇 번 하더니 거듭 걱정하지 말아라, 집에 가져다준다고 한다. ‘잠깐, 집? 인천공항이 아니라?’ 마음 한편 불편함을 안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우리 이름을 호명하며 짐 분실 센터로 오라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이스탄불 항공 대행사라며, 항공에 짐이 함께 탑재되지 못해서 다음날 항공편으로 배달 예정이라며, 가방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특징과 짐을 받을 수 있는 주소를 기입하라고 했다. 어쩐지 느낌이 싸하더니… 가방에 이스탄불 항공 빨간 기내용 양말을 묶었다고 적었다. 조카는 가방 브랜드명만 달랑 하나.
따뜻했던 포르투갈과 달리 맹렬하게 찬바람이 부는 인천공항에 그렇게 난 겨울외투도 하나 없이, 가벼운 실내복 차림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도착했다. 따뜻한 옷도 여행 내내 작업한 여행 스케치북과 아이패드도 모두 캐리어에 있는데… 잠깐 옆 동네에 놀러 갔다 온 것 같은 차림으로 허탈하게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에도 짐은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도… 빨간 양말을 매단 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언덕을 그렇게 신나게 달리던 내 캐리어는 이스탄불 공항 어딘가 구석진 방에 다른 분실물과 함께 있을 텐데…몇 날 며칠을 마음 고생 시키더니, 다행히 내 짐은 일주일 만에 빨간 양말 덕분에 돌아왔고, 조카 짐은 결국 분실 보상을 받는 걸로 서류 작업을 진행하는 중, 한 달 반 만에 배달이 왔다. 그렇게 이모조카 여행의 마무리는 캐리어 분실 사건으로 마음 고생한 걸로 마무리됐고, 아마도 우린 이 에피소드를 평생 이야기할 거다. 조카의 엄마인 내 여동생과 대학시절 함께 한 유럽 배낭여행의 추억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이야기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