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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수 Nov 26. 2019

정의란 무엇인가

2011.04.09

당신을 딜레마에 빠뜨리는 문제에 대한 질문과 함께하는 지적 유희



제목 :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 마이클 샌델 (역자 : 이창신)
출판사 : 김영사

 대한민국에 정의 열풍을 몰고 왔다는 수식어가 붙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 큰 관심이 없고 관련 서적도 읽어 본 적이 없었지만 철학이나 심리학에는 관심이 있는데 이 책이 정치철학 혹은 도덕철학이란 말을 자꾸 사용하여 이건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사회과학이 아닌가 싶은데 철학적이기도 한 정의에 대한 상당히 수준 높은 지적 탐구를 담고 있다.


내용이 어렵다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파고들다 보면 누구나 깊은 곳까지 도달하게 되리라 믿는다. 나처럼 말이다.


총 10장으로 나누어진 책의 각 장에 대해서 요약을 해보았다. 다시 책을 읽는 일이 없어도 그 내용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날 수 있도록 각 장의 핵심 키워드와 개념을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책을 읽기 전의 사람에겐 다소 부족하나마 모르고 읽는 것보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읽은 후의 사람이라면 책의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1. 정의의 판단 기준 : 행복, 자유, 미덕

2. 제러미 벤담 : 공리주의.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을 막는 것 일체를 가리킴. 옳은 행위는 공리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 소수의 불행보다 다수의 행복이 더 크다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것. 쾌락 또는 행복 극대화를 선으로 간주.

3. 자유지상주의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만약 소유한다면 그것을 내 마음대로 다룰 자유를 갖고 있어야 한다.

4. 자유시장 : 자유시장이 과연 공정한가? 금전적인 매매가 불가능하거나 불가능해야 하는 재화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것이고 왜 매매가 문제가 될까?

5. 존 롤스 : 평등 옹호. 우리의 선택에 도덕적 임의의 요소가 반영되어 있음. 특정한 이해관계와 이점을 접어두고 무지의 장막 뒤에서 선택한다면 어떤 정의의 원칙에 동의하겠는가를 물어야 함.

6. 이마누엘 칸트 : 자유롭다는 것은 자율적인 것. 자율적이라는 것은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지배된다는 뜻. 특정한 이해관계와 애착에서 한 걸음 물어나 순수 실천 이성을 따르는 사람으로 행동한다는 뜻.

7. 소수집단 우대정책 논란 : 대학의 사명. vs 개인의 권리. 사명이 권리는 침해?

8. 아리스토텔레스 : 텔로스(목적)에 기반해 적합성을 따짐. 목적론적. 선은 우리 본성을 실현하고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

9. 충직 딜레마 :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 부담을 감수하지 않는 자발적 존재. vs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 서사적 탐색으로서의 삶을 살아감.'

10. 정의와 공동선 :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탐색. 1. 정의란 공리나 행복 극대화. 2.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 3.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

 각 장마다 많은 예와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단순히 개념을 익히는 것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 한편으로는 그 예와 사례가 많은 생각을 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그 문제에 대해서 탐구하다 보면 딜레마에 빠지게 되어 매우 당황스럽거나 어려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에서는 콜로세움에서 그리스도인을 사자 우리에 던져놓고 군중이 그것을 보고 즐기게 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해 보이는 행위를 보면서 즐거워하기 때문에 즉, 그리스도인 한 사람의 불행의 크기보다 군중의 행복의 크기가 더 크므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이것은 도덕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리주의자들은 이런 행위를 어떻게 비난할까? 그들은 그런 오락거리가 사람들에게 천박한 습성을 가지게 하여 로마 거리에서 폭력적인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남은 희생자가 언젠가 사자 우리에 던져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자 우리 게임에서 느끼는 쾌감보다 커지면 공리주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고 게임을 금지할지도 모른다.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단지 이런 계산적인 이유만으로 금지한다는 논리는 도덕적으로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것이 마이클 센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공리주의로 접근했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을 문제에 도덕이란 문제를 제기하면서 독자를 딜레마에 빠뜨린다.


혹은 처음부터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 문제를 공리주의로 접근하여서 그것이 옳을 수도 있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책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유명하기도 한 일화 하나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구명보트 하나에 의지해 남대서양을 표류하던 4명의 선원이 굶주림에 지쳐 3명을 위해 몸이 아팠던 1명을 희생하자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희생된 1명의 피와 살로 연명한 그들은 결국 구출되었다. 그들은 법의 신판대에 오르게 되었는데 만약 당신이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이 일화는 공리주의를 다룬 장에서 언급된 이야기지만 책을 다 읽은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온다. 즉,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 존 롤스의 평등 옹호 등 책에서 다룬 여러 가지의 개념들의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된다.


먼저 공리주의로 따져보면 단순하게 4명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될 상황에서 1명이 희생해 3명이 살 수 있다면 분명 불행의 크기보다 행복의 크기가 더 크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마땅한가?


그렇다면 존 롤스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무지의 장막 뒤에서, 즉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나 권력 등 모든 것을 배제하고 모든 조건이 같은 평등한 위치에서의 인간이라는 입장에서도 그러한 결정을 내렸을지 물을 것이다. 즉 4명(사실상 3명) 모두는 자신이 아픈 환자인지, 자신이 죽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인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같은 결정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할 것이다.


칸트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희생된 1명을 3명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았다는 것에서 부도덕하다고 단정 짓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라면  다른 의견을 낼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3명이 1명보다 반드시 살아야 할 목적이 분명하다면 혹은 1명이 3명을 위해서 희생할 수밖에 없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아마 문제가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희생자의 본질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사실 3명의 연명을 위한 존재가 되는 것이 그의 본질이 아닐지라도 환자라는 그의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곧 죽을지도 모르기에 능력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고려한다면 그가 희생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전 같았으면 옳다, 그르다. 혹은 찬반에 대한 나의 견해를 짧은 지식을 가지고 어중이떠중이식으로 피력했을지도 모를 문제들(배아줄기세포, 안락사, 낙태, 동성애, 장기매매 등)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아니 모든 사람이 옳다, 그르다 판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보다는 좀 더 논리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문제를 볼 수 있는 안목은 길러졌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안목이 아니라 그것이 왜 옳고 그름을 놓고 고민해야 되는 문제이며 다수가 옳다고 해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과 다수가 아니라고 해도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좀 더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시각과 논리 그리고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이 배움을 통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과연 정의로운가를 좀 더 깊고 진지하게 성찰할 힘을 얻었다. 처음에 언급했지만 쉽지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이해하기 불가능한 내용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하여 흥미롭지만 정답이 없을 법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자신만의 깊은 지적 유희를 즐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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