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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수 Nov 03. 2020

생각이 멈추다

책을 읽어라.


어릴 때부터 숱하게 들어온 말이다. 하지만 읽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만화책은 많이 봤다. 만화책에도 분명히 읽을 글자가 존재한다.


판타지 소설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재미는 있었으나 세상에는 더 재미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읽지는 않아도 쓰기는 좋아했다.


아무튼 그렇게 독서에 큰 관심 없이 지냈는데 학창 시절 기말고사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독서를 했다. 아마 당시 과외 선생님이 책을 많이 읽으라고 늘 듣던 소리를 하며 본인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독서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당시 학급문고를 운영했었는데 그때 읽은 책 중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셜록 홈즈' 시리즈 중 하나, '가시고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괭이부리말 아이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어린 왕자' 등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아주 비효율적으로 독서한다. 빠르게 큰 흐름을 파악하기보다는 한 글자도 빠짐없이 전부 읽는다. 그렇다고 전부 기억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독서 습관을 가진 채 학년만 높아 여전히 책을 읽어도 진도 나가지 않았다. 다음 해에는 '위대한 개츠비'와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해 읽은 '데미안' 외에 기억에 나는 게 없다. 그 두 권을 한참에 걸려 읽은 것 같다.


재수를 할 때도 책을 읽었다. 딱 한 권. '마시멜로 이야기'. 당시 내가 처한 상황에 너무 잘 맞는 책이라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억지로라도 책을 읽으려고 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늘 책을 가까이한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그렇게 읽게 된 어느 책에서도 책을 읽으라고 말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그때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떠올랐던 것 같다. 실천은 못했지만 이렇게 살면 성공하겠구나 하는 방법도 보였던 것 같고 나름대로의 철학적인 생각도 많던 시기였다.


휴학을 했을 때도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했을 때도 책 읽는 시간을 내었다. 아르바이트하던 회사에 있는 책을 빌려보기도 했고 인턴일 때는 일찍 출근하여 인턴 하던 회사의 창업주가 쓴 책을 읽었다.


그 후 가장 많은 책을 읽은 시기가 군 복무 중이었다. 좋아하는 자기 발서,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주로 읽었다.


당시엔 매일 신문을 보며 스크랩하는 습관도 있었다. 관심 있는 경제나 IT 분야만 봤지만 어떤 기업이 성장 중이며 어떤 기업을 인수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미래 먹거리가 무엇인지 가늠이 되기도 했다.



사실 신문 스크랩은 고등학생 때 국어 선생님이 시키던 숙제였다. 그때는 그냥 귀찮은 싫은 숙제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노트를 보면 이런 메모가 있다. 모바일 OS 통합하기, 차세대 배터리 개발하기. 피쳐폰 시절인데 제조사마다 다른 UI와 키패드 구성 등이 너무 불편했고 PMP가 등장한 시기라서 앞으로는 모바일 기기의 배터리 성능이 중요하겠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은 모른 채.


이런 사소한 것들이 지나고 보니 모두 생각의 원천이었던 것 같다.


많은 자기 발서를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이고 듣다 보면 허무맹랑한 말들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 겹치는 이야기들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과거의 기억 속에서 비슷한 일례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말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런 간접 경험들이 좀 더 마음속에 열정을 갖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부릅뜨게 하는 것 같다.



스스로를 논리적이기보다는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도통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실천은 안 해도 생각만은 가득했는데 이제 그 주머니도 너무나 작아진 것 같다.


다시 이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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