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를 건너는 중 빨간 불로 바뀌기까지 불과 5초밖에 남지 않은 보행자 신호등을 보았다. 아직 갈 길은 멀었는데 서두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부 느긋하게 가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군중 심리일까? 신호를 지키려고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하며 서두르는 나만 유독 별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 후 1년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다. 신호등은 정지 신호를 나타내고 있는데 앞사람이 건너기 시작하니 뒷사람들이 우르르 따라갔다. 정말 소수를 제외하고는 신호등을 확인하는 기색도 없었다. 매일 다니는 출근길이니 관성적으로 보행 신호라고 생각하고 따라갔거나 정지 신호를 봤음에도 남들이 다 가니까 따라갔을 수도 있다.
이런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비슷한 느낌으로 빨간 신호등의 법칙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버펄로가 이동할 때 무리를 맹목적으로 따르다가 간혹 선두가 절벽으로 떨어지면 뒤따르던 일행들도 줄줄이 떨어져 죽게 된다고 한다. 사람도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보통 한두 명이 신호를 무시하는 상황에서는 그들을 따르진 않는다. 그런데 그 수가 많아지면 거기에 섞여 버린다. 인원이 많으니까 이게 맞는 거라고 착각했거나, 잘못된 일이더라도 용기가 생겼거나, 이 정도면 나 하나는 별로 티가 안 날 거라 여긴 걸까? 아니면 남의 시선, 눈치를 많이 봐서 대중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섞여 드는 게 편한 걸까?
답은 알 수 없다. 어쩌면 답이 없을 수도 있다. 그냥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