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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수 Aug 08. 2019

어리석은 선원들

2007.09.02

 "돛을 펼쳐라!"

우렁찬 선장의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범선의 돛이 일제히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배는 드넓은 바다로 무서운 속도로 전진해나갔다. 배에 탄 사람은 선장과 부선장 달랑 둘뿐.



나머지 승객은 여러 동물들과 식물들이었다. 거대한 선박에 어울리지 않게 선원이 한 명도 없는 이상한 배였다. 이 멋진 범선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선장도 부선장도 알지 못했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저 멋진 범선에 몸을 실은 자신들을 행운아라고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왜 사람이 두 명밖에 되지 않는지도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동식물들과 함께 지내기에 배는 충분히 컸다. 선장은 남자였고 부선장은 여자였다. 오묘한 조화로 둘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가 생기고 또 그 아이의 아이가 생기며 수십 년이 흘렀다.


배의 목적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앞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어쩌면 목적지를 알지도 모르는 선장과 부선장도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배에는 새 선장과 부선장외에도 많은 선원들이 생겼다. 사람이 많아지자 배의 목적지에 대한 논쟁이 생겼다.



그러던 와중에 처음으로 배가 위기에 처했다. 무시무시한 폭풍우를 만난 것이다. 삽시간에 거대한 범선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암초에 부딪혀 이곳저곳이 파손되었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선원들은 배를 더 튼튼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장과 부선장 역시 그렇게 여기고 대대적인 선박 정비에 들어갔다. 목재로 이루어졌던 선체는 배안에서 긁어모은 강철로 코팅되었다. 똑똑한 선원들이 모여서 공학자팀을 구성했다. 그들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모터를 발명했다. 돛은 이제 필요 없었다. 강력한 모터의 힘을 빌려 더욱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의 힘인 바람을 이용해서 움직이던 배는 이제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모터로 움직이게 되었다. 배는 눈에 띄게 성능이 좋아진 것 같았다. 웬만한 폭풍우에도 끄떡 없었고 작은 암초 정도는 부딪혀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큰 암초는 기동성이 좋아서 요리조리 피해 가면 그만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제 배의 분위기는 선원 모두가 자신이 제일 똑똑하고 잘났다고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배에 문제점이 나타났다. 모두가 잘났다고 여기는 분위기에 배의 청소를 하던 선원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었고 배의 환경은 더욱 황폐해져 갔다. 모터가 고장이 나기 일쑤였고 연료도 떨어져 갔다. 한 선원이 선장에게 말했다.


 "애초에 배의 설계에 맞지도 않은 개조를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선장은 인정할 수 없었고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배는 수리하기에는 이미 너무나 망가져있었고 황폐한 상태였다. 선장은 절망했다. 식량도 서서히 떨어져 갔다. 눈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있었다.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희망이 사라져 갔고 여기서 모두가 죽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흐르고 모두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다른 배를 만난 것이다. 여태껏 배에서 내려본 적도 다른 배를 만난 적도 없던 선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선장은 즉시 다른 배에 무전을 연결했고 자신의 처지를 말했다. 상대 쪽 선장은 흔쾌히 자신의 배에 전원 승선을 허락했다. 다른 배 역시 선장의 배만큼이나 거대한 범선이었다. 하지만 선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선장은 상대 선장에게 물었다.


 "이곳에는 선원이 없습니까?


상대 선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 배에 사람이라고는 저 혼자뿐입니다."


선장은 이렇게 거대한 배에 혼자라는 것이 믿기지를 않았다. 선장은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여태껏 배에서 내려본 적이 없어서 밖에서 배를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선체에 배의 이름인 듯한 커다란 글씨가 적혀있었다.


 '지구'


선장은 문득 익숙한 문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현재 탑승한 배에 옮겨 탈 때 본 것이었다. 분명히 지금 탑승한 배의 선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지구2'


지구2의 선장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 이름은 하나님입니다. 당신들에게 새'지구'를 전해주러 왔습니다."



(이 글의 모태는 고등학교 1학년 철학 시간에 작문했던 것을 바탕으로 대학생 때 다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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