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은 아련한 기억들이 모여드는 물웅덩이와 같다. 가끔 이별을 노래한 음악을 듣고 눈을 감으면, 새롭게 맞이한 봄, 대학 캠퍼스, 엎드려 자던 도서관 칸막이 책상, 지금은 기억에만 남은 사람들의 눈빛이 햇살처럼 마음에 쏟아져 내린다.
함께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핑계로 주말에 만나 도서관에서 나란히 엎드려 자던 같은 과 여사친이 있었다. 삐삐로 약속을 잡고 메시지를 전달하던 시절이었다. 그녀의 삐삐 번호는 내가 외우고 있던 유일한 번호였다. 함께 있으면 놀랍도록 편안해서, 1학년 1학기가 반 정도 지났을 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를 찾는 사이가 되었다.
그 애와의 기억을 떠올리면, 머릿속이 초록빛으로 물든다. 시험 기간에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히려고 나왔는데, 뜬금없이 센티해진 그녀는 나를 편백나무 아래 잔디밭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면서 겪은 아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살짝 눈물도 내비쳤던 것 같다. 4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나 겪은 설움과 한이 어찌나 많았던지.
그 당시 우리는, 적어도 나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뿌리 깊은 아픔을 말한다는 건 상대방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거라고 이해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나의 비밀을 공유했다. 나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찔끔 흘렸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었고, 그런 아픔을 간직한 나를 속 깊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워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리 심각하고 진지했는지 웃음이 난다. 우리 둘은 참 잘 맞는 친구였다.)
우리의 대화는 어둑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가로등이 켜졌고, 풀벌레가 울었다. 시험공부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돌아보면, 그 몇 시간의 대화는 그 해 여름의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른 도시 출신이던 그 애는 여름방학이 지나고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4남매 중 셋째 딸을 객지에서 공부시킬 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을 거라는 짐작은 간다.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고, 그 애는 여름방학을 고향집에서 보내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나는 그 애의 짐을 들어주며 동행했다. 터미널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 애의 표정이 유독 어두웠다. 늘 밝은 표정으로 재잘거리던 아이인데 그런 표정은 좀 생소했다. 아마도 그때 그 애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학기의 무수한 추억을 남기고 우린 끝내 친구로 남았다.
그 애가 돌아오지 못한 자리를 느낄 때마다 난 그때 그 잔디밭을 떠올렸다. 우리가 깊이 마음을 나누던, 우주에서 유일하게 서로가 위안이 되던 그 순간을 말이다. 잔디밭 옆 가로등이 켜지자 그 애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웃으면 작아지던 눈과 살짝 나오던 덧니도 하얗게 빛났다. 바람이 불어 우리의 코에 여름의 냄새가 밀려들어왔다. 대화는 그칠 줄을 몰랐고, 한참을 머무르다 우린 학교 앞 식당에 볶음밥을 먹으러 갔다.
여름이 지나고 2학기가 끝날 때까지 우린 간간이 삐삐를 주고받다가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락을 끊게 되었다. 마침내 우린 서로 기억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난 그때의 기억이 담긴 시 한 편을 노트에서 발견했다. 그때는 그랬다. 여름, 잔디밭, 가로등, 대화만 있으면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