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쿠폰 10개를 다 채웠다. 석 달쯤 걸렸다. 아내가 은혜를 내려주실 때마다 카페에 와서 글을 썼다. 카페에서 음료로는 가장 비싼 6800원짜리 '모카 콘 피냐'라는 커피를 시켰다. 무료 쿠폰이 아니라면 시키지 않을 커피다. 내게 주어진 저녁 2시간과, 모카 콘피냐와, 2시간 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무엇보다 2시간 후에 이야기와 문장으로 채워져 있을 백지 때문에 미리 설렜다.
스티븐 킹은 영감이 오면 아직 뜨거울 때 얼른 써버리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일만한 말이지만, 전업 작가가 아닌 이상 쉽게 적용하기 어려운 말이다. 영감이 아직 뜨거울 때, 난 하고 있는 일에서 놓여나지 못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영감은 일을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난 오히려 스티븐 킹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 쓰기의 습성을 만들어온 것 같다. 내가 쓰면서 끄집어내는 이야기와 문장들은, 머리와 가슴속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러서 싸늘하게 식어있는 경우가 많다.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백 미터 달리기를 하듯 쓸 수가 없는 이유로, 나의 글쓰기는 구간구간을 끊어 걷는 일과 비슷해졌다. 머릿속에서 구르고 구른 이야기는 내 몸 밖으로 나왔을 때 반질반질 윤이 나 있을 정도다.
내 안의 이야기들은 일을 마치고, 아이를 재우고 밤이 깊어서야 나올 수 있다. 그 시간이 된다고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몸이 밤에 취해 늘어지거나 잠이 들면, 또 하루 묵혀야 한다. 긴 말이 필요한 이야기일수록 스티븐 킹의 고마운 조언을 따르기가 힘들다.
난 식어버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커피로 치면 한 방울씩 느리게 떨어지는 콜드 브루식이랄까. 난 이야기를 구간구간 끊어서 끄집어내, 천천히 쌓아갈 것이다. 난 앞으로도 그런 방식을 고수해갈 것이다. 그게 내가 쓰는 방식이고, 사는 방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고, 그런 방식에 딱히 불만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언젠가 스티븐 킹을 만난다면, 당신의 그 멋진 조언을 따르지 못해서 유감이라는 말 정도는 하게 될 것이다.
아 이 글을 쓰느라, 20분이 지나버렸다. (이 글은, 뜨거울 때 얼른 쓴 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늘한 글쓰기에 대해 쓰면서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썼다.) 이제부터는, 차갑고 느리게 이야기의 콜드 브루를 추출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