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가쁜 숨을 내뱉었다.
쓴다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쓰기를 머뭇거리는 내게 백지가 말했다.
"당신의 세계가 고통 없고 아름답기만 하길 바라는가."
"누구나 그런 세계를 동경하지 않을까?"
"고통이 없고 아름답기만 한 세계는 무균실과 같지.
아픔도 없지만 쓸거리도 찾을 수 없을 거야."
"쓸거리가 없을 리가 없어."
"뭔가를 쓴다 해도 그 글은 어떤 위안도 주지
못하겠지. 힘없는 글만 바닥에 널리게 될 거야."
쓰는 사람은 세계의 고통이 가시는 날을 위해
끊임없이 적확한 말을 찾아 나서고,
문장을 세공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날이 오면
쓰는 일은 소용을 잃을지도 모른다.
쓰는 존재들은 어쩌면,
영원히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을 위해
지금도 부단히 백지를 마주하는지도 모르겠다.
모순의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세공하며 희열을 느끼는 존재로,
아픔을 박제하며 희망을 찾는 존재로,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