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의 패널로 얼굴을 내비치는 뮤지션 유영석의 얼굴을 떠올린 건, 최근 뉴스를 달군 한 사기꾼 때문이다. 유명 대학의 대학생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는, 소설 공모전에서 이미 입상한 다른 사람의 작품을 그대로 가져다가 5개의 공모전에 출품하여 상을 받았다. 발 빠른 블로거들은 그의 과거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고 있었다.
그가 남의 작품으로 상을 받은 건 소설만이 아니었다. 한 디카시 공모전에선 대상을 받았다가 취소된 일이 있었는데, 그가 낸 시가 바로 유영석이 작사한 <화이트>의 노랫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을 훑어보다가 유튜브에서 <화이트>를 검색해서 듣게 됐고, 연관 영상으로 이어 나온 노래가 <늦지 않았음을>이었다.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은 지 십수 년이 흘렀지만 내 마음은 이미 익숙한 멜로디에 반응하고 있었다. 청년기가 지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늦지 않았음을 그대 내게 말하여 준다면~"이라는 가사를 듣고 저마다 마음에 자기만의 어떤 상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살아오는 동안, "아직 늦지 않았어."라는 말보다 "이미 늦었어."라는 말을 내 안에서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나의 미숙함 때문에 놓쳐버린 사랑이라든지, 소심함 때문에 잡지 못한 기회라든지, 실수 때문에 망쳐버린 평판이라든지. 이미 돌이키기엔 늦어버린 일들 투성이었다. 어쩌면 그건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날아오는 많은 공을 모두 쳐낼 순 없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렇다. "아 늦어버렸어."는 피할 수 없는 목소리다.
상황에 따라 우리에겐 정반대의 말들이 필요하다. 미숙한 시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시절엔, "너 그러다 늦는다." 내지는 "어쩔 거야. 이미 늦어버렸잖아!"라는 말이 유용한 말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조금씩 자라났다. 내가 얼마나 꾸물거리는지, 나 자신에게 빠져 주변을 보지 못했는지 알아차리곤 했다. 청년 시절을 지난 지금, 많은 것을 놓쳐버리고 타이밍이 어긋나 버린 지금엔, "아직 너, 늦지 않았어."라는 말을 더 듣고 싶다. 이미 늦어버린 걸 아는 사람에게, 늦었다는 말은 소용없는 말이다. 늦지 않았다고, 모든 게 시든 것 같아도 다시 해볼 수 있다는 말이 훨씬 큰 에너지가 된다. 그 말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으면 입에 발린 위로로 남겠지만.
청년기를 지나 중년에서 노년을 통과해 갈 때, 내 곁에 여전히 남아 그 말을 해줄 사람이 있을까. 내가 나 자신에게 몇 번이고 하고 싶은 그 말을 대신해줄 사람이 있을까. 이 말은 물리적인 시간을 이겨내게 만든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게 하고 망가진 것들을 다시 이어 붙일 수 있게 만든다. 이 말은 긴 타임 테이블을 향유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느 순간 아차 늦었구나 싶어도, 더 시간이 흐른 뒤를 볼 줄 아는 사람은 "늦지 않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이나 철부지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소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 앞서 언급했던 공모전 사기꾼조차, 달게 벌을 받아야겠지만 그 곁에서 "아직 늦지 않았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길 바란다. 우리의 삶을 늦었다는 말로 닫아버리기엔, 무겁고 소중하니까.
유영석의 시는, 송재호의 미성을 타고 몇 번이고 반복된다.
"늦지 않았음을 그대 내게 말하여준다면, 난 말도 못 한 채 눈물 흘리며."
* 송재호 1집 수록곡 <늦지 않았음을>(유영석 작사,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k_FELaljh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