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난 대학병원 6층에 입원해 있었다. 담낭에서 돌이 발견되어 담낭을 떼어 내는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담낭은 쓸개라고도 부른다. 난 수술 후에 말 그대로 ‘쓸개 빠진 인간’이 되었다.
우리가 관용적으로 쓰는 ‘쓸개 빠진 놈’이라는 말은, 비겁하고 줏대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담(낭)이 크다는 말은 반대로 용기 있고 대범하다는 걸 표현할 때 쓴다. 결과적으로 난 정신적으론 굉장히 중요한 걸 잃은 셈이다.
쓸개를 떼 내고 누워 있었던 입원실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6층은 옥외 정원이 있던 곳이었고, 내 자리는 창가였다. 낮엔 창밖으로 나무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밖을 쳐다보고만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마 그 해의 운은 일주일을 보낸 입원실 자리가 정해지는데 다 쓴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이듬해에 태어난 우리 둘째 딸이 그 해에 만들어졌으니, 그 운을 쓰고 남은 운을 박박 긁어 쓴 모양이다.
수술을 한 당일 오후와 다음 날 오전까지 꼬박 하루 동안은 수술 부위의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새벽에 슬며시 들어와 잠을 깨우며 진통제를 놓아주는 간호사의 방문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통증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서 몸을 좌우로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자세를 바꾸고 가만히 있으면 아프지 않은 상태가 된 게 얼마나 반가웠던지, 난 그때부터 입원실 생활을 온전히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병가를 얻어 출근도 안 하게 되었겠다, 통증이 가라앉은 날부터는 휴가나 다름없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쓸개를 바치고 얻은 휴가였지만.
먼저 한 일은 한 팔로 선반 위에 둔 노트북을 느릿느릿하게 꺼내어 입원 전에 담아온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인기 있던 영화 몇 편을 담아 왔는데, 내 선택은 전년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각본상, 이렇게 4관왕에 오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이었다.
난 영화를 본지 몇 분 되지 않아서, 영화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왕년의 히어로물 스타였던 주인공은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화 초반에 잔뜩 화가 난 주인공이 연극 무대 세트에 앉아 다른 배우를 쏘아붙이고 있었다. 아주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갑자기 주인공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배우의 머리 위로 무대 천장에서 세트가 떨어지게 된다. 그때 주인공의 놀란 표정과 시트콤 같은 상황이 너무 웃겨서, 난 제어할 수 없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실로 고통스러운 웃음이었다. 웃을 때마다 수술 부위에 아시아 복싱 챔피언이 강펀치를 날리는 충격이 가해졌다. 웃으면서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영화를 급히 끄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침상 커튼을 친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도 내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가장 지루한 책을 꺼내 한참 읽은 후에야 웃음의 여진까지 잡을 수 있었다. <버드맨> 보는 건 포기하고, 세상 진지하게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남자의 이야기인 <마션>을 보았다. 그 영화는 끝까지 보는 데 성공했다.
퇴원을 하고 몇 달 후에야 <버드맨>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내 수술 부위에 강펀치를 날렸던 <버드맨>은 코믹한 요소가 있긴 했으나, 전체적으론 서글픈 내용의 영화였다. 왕년의 히어로 ‘버드맨’ 역으로 할리우드 스타였던 리건 톰슨은 지금은 한물갔다. 그는 예전의 명성과 영광을 되찾고자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에 도전한다. 다시 버드맨에 기대라는 내면의 목소리도 듣지만, 그는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그가 연출, 출연하는 연극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배우들도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사람들의 편견은 그의 노력과 진정성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 그의 희망과 기대는 끝내 단단한 벽에 부딪혀 깨지고 만다.
영화는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판타지처럼 그려내지만, 영화의 결말은 지극히 현실에 가까운 것 같다. 그는 꽤 큰 담을 가진 사람이었다. 줏대와 진정성을 가지고 도전했지만 실패한다. 교훈은 뭘까. 쓸개 빠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낫다는 건 결코 아닐 것이다.
영화 <버드맨>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검색하던 중, 이 영화를 모티브로 만든 노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15년 2월의 월간 윤종신의 <버드맨>이라는 곡이다.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는 굉장히 멋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윤종신이 조금 지치고 담담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는 모습을 슬로 모션으로 담고 있는데, 노랫말과 윤종신의 표정이 너무 어울려서 몰입감을 준다.
윤종신의 <버드맨> 가사 중엔, ‘설익은 그때가 좋대’, ‘진심이 된 이때, 뭘 알 것 같은 이때 알아봐 줬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 얼핏 들으면 사랑 노래 같지만, <버드맨> 영화를 보고 들으면 진의를 바로 알 수 있다. 초창기에 최고의 발라드 곡으로 각광받았던 그 시절의 명성을 그리워하고, 음악에 있어 더 깊어지고 진지해진 지금, 그때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는 윤종신의 모습은, 그 영광을 꼭 재현할 거야! 하는 결연함보다는, 체념과 담담함에 가깝다. 그 모습은 마치, “그때보다 지금 나는 음악인으로서 더 진짜지만, 그때만큼 좋아하지 않아도 할 수 없지 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가 평가하는 나름의 전성기가 있을 것이고, 그때를 그리워하며 지금 뭐라도 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날을 맞이할 것이다. 전성기의 벽이 높았던 리건 톰슨이나 윤종신은 잘 나갔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득해질지도 모르겠다. 좌절감은 당연한 결론일지도. 하지만 끝내 그 전성기를 뛰어넘지 못해도, 그 전성기는 지금의 그들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리건 톰슨과 윤종신의 <버드맨>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해서 어느 순간 각기 다른 길로 접어든 것 같다. 한쪽은 자신이 바라는 기대는 이 세상에서 충족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다른 한쪽은 과거가 그립긴 해도, 지금 다른 색의 길을 가는 자신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리건 톰슨은 이 세계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고, 윤종신은 뮤비에서 어쨌든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그 두 사람이 다다른 지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쓸개가 없어 더 이상 대담한 도전을 하지 못하게 된 내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난 전성기의 벽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벽인지 과속 방지턱인지 구분도 안 될 정도다. 내 글은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고, 언젠가는 지금보다 머리숱이 더 풍성하고 배는 덜 나왔던 전성기의 매력을 덮을 정도로, 다른 영역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진 머리숱과 나온 배를 커버할 정도의 성취와 매력을 생각하자니, 조금 어지럽긴 하다. 갑자기 리건 톰슨의 심정이 이해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