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의 소금물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한다’는 말은 익숙한 얘기다. ‘그러니 세상의 소금 같은 사람이 돼라’는 말에는 왠지 쉽게 그러겠다는 대답이 안 나온다. 어릴 적엔 결기에 차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던 것도 같다. 말을 내뱉으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자세히 따져보게 된다. 그러려면 전 인류의 3% 안에 들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게 가능할까, 하고 스스로 딴지를 거는 것이다.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3%가 되는 건 요원해 보이지만, 적용 범위를 좀 좁히면 ‘3%의 소금’의 원리와 비슷한 구석을 영 찾을 수 없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내 일상을 썩지 않게 하는 3%의 시간 같은 것.
새 학기의 첫 일주일,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아이들이 새로운 학급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한다. 어떻게 하면 기분 좋은 사이로 한해를 지낼 것인지,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지, 우리 학급의 목표는 무엇인지 같은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부터, 사물함 정리는 어떻게 할지, 급식 순서나 이동할 때 요령, 실내화는 운동화 형태만 가능하고 슬리퍼는 안 된다는 규칙이나 등하교 시 각 개인이 거쳐야 할 소소한 절차들 같은 생활 밀착형 문제들까지. 친구에게 서운한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3단계 요령 같은 사회적 기술들도 짚어주어야 하는 사항이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여기까지는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할 일들이다. 거기에 아침부터 교내 메신저로 수없는 메시지가 날아온다. 새 학급과 관련된 각종 서류들을 작성해서 언제까지 보내달라는 메시지다. 이를 테면, 학생 명부만 해도 교무실에서 필요한 것, 각 전담 선생님에게 보낼 것, 홈페이지 담당에게 보낼 것 등 몇 개가 더 있었는데 떠오르지도 않고,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다. 그것 외에도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해서 요구되는 문서들 작성, 각자 맡은 학교 업무들의 운영 계획서 등등.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나면, 이제 각종 사무와 업무를 추진하느라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며 꼼짝없이 오후 몇 시간을 앉아 있게 된다. 그렇게 일하는 시간이라도 주어지면 다행이다. 여기저기서 회의가 있다며 호출한다. 동 학년에서 함께 정해야 할 일도 많고, 다른 위원회에 속해 있다면 그 위원회 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퇴근할 즈음엔 영혼이 가출한 기분이 든다. 나 자신을 인식하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자동 로봇이 내 안에 들어앉아 처리해야 할 일들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늦게까지 일을 다 처리하지도 못한다. 저녁에 아이들과 잠시 놀고, 아이들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취침을 위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아이들을 재운다. 그런 일상을 지나고 나면, 과연 그 하루에 내가 존재한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든다. 그 날 뭘 봤는지, 어떤 새로운 걸 느끼고 생각했는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만 지끈지끈 아프다. 아이들을 재우고서야 비로소 내 영혼을 느낄 여유가 생기는데, 그런 하루를 보낸 날은 졸음이 쏟아져서 졸도하듯 잠들기 일쑤다.
위에서 언급한 하루는, 지금 시기에 겪는 일이고 삶의 여러 양태 중 하나다. 영혼 없이 생활하게 되는 날들은 시기마다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곤 한다. 다른 모습이지만, 나타나는 현상은 비슷하다. 이런 날들이 지속되면, 점점 삶의 한 귀퉁이에서 썩은 내가 나기 시작한다.
엊그젠, 이렇게 반복되던 날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가기 전에 도서관에 잠시 들러 30분 정도 시간을 보낸 것이다. 도서관은 얼마 전부터 50퍼센트 좌석을 열어 사람들이 머무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난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한동안 가방에 넣고만 다니던 책을 꺼내 짧은 글을 두 개 읽었고, 떠오른 글감에 대한 메모를 스마트폰에 정리했다.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던 활자의 향과 소리 없이 떠돌던 느림의 멜로디에 닿는 순간, 내 안에서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던 자동 기계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 자리에 내 영혼이 돌아와 있었다. 썩은 내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삶의 한 편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도서관 공간을 오가던 파도가 나를 쳐서 영혼의 옷자락이 젖었다. 그날 밤은, 실체 없는 불쾌함 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고작 30분이었다. 썩은 내를 걷어내고, 잠시 내 영혼을 찾을 수 있었던 시간. 바다의 내음을 느끼고 파도가 나를 쳐서 일깨웠던 시간 말이다. 이제 앞에서 언급했던 ‘3%의 소금’ 이야기를 해보자. 24시간은 1440분이다. 이 중 3%는 대략 43분 정도 된다. 난 하루에 43분이라도 자동 기계에게 빼앗긴 자리를 영혼에게 돌려준다면 일상에서 썩은 내가 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3%의 소금이 되자는 원대한 소망보다, 영혼을 마주하는 3%의 시간을 내는 사람들의 일상들이,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이상(理想)에 더 근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얼마나 일에 매몰되어 자기를 잃어버리는가. 나 대신 들어앉은 자동 기계는 얼마나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고 나와 다른 이를 몰아세워 왔던가. 생각하는 나, 돌아보는 나, 느끼는 나를 잃고 살아온 나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것이 그 도서관에서의 30분 동안 생각했던 일이다. 자리를 찾은 내 영혼이 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