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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광용 Aug 25. 2022

글이 안 풀릴 때 이렇게 해보세요

<네 번째 원고>의 존 맥피의 글쓰기 조언

<네 번째 원고>에서 저자 존 맥피는, 글을 쓸 때 구조의 틀을 짜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그가 지금껏 썼던 글들(주로 논픽션)의 구조를 어떻게 짰는지를 얘기한다. 여러 글에서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하는 과정, 구조를 짜고 글을 썼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런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은 글쓰기에 대한 에세이로 읽히기도 한다.


 이런 sns에 쓰는 글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나오는 대로 막 쓰지만, 나도 칼럼 같은 글을 쓸 때 간단한 개요랄지, 구조를 짠다. 이 작업이 되면 글은 반은 쓴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미지의 숲 속 중간중간에 이정표를 붙여놓은 기분이랄까. 이제 쓰는 건, 숲에 들어가서 이정표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일 같이 느껴진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구조나 개요를 짜고 글을 완성하는 게 무척 쉬운 일처럼 보일 것 같은데 그건 모르시는 말씀이다.


 개요가 나오기까지는 충분한 자료가 있어야 하고, 그 자료를 충분히 숙지하여 내 생각과 버무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자료와 생각을 버무리는 과정에서 생각 반죽이 제대로 풀리지 않기도 하고, 자료와 생각이 어우러지지 않고 따로 놀기도 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글 재료가 잘 숙성되면 그제야 구조나 개요를 짤 준비가 되는 것이다. 시간에 쫓겨서 숙성이 잘 되지 않아도, 맛없는 빵 같은 글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쓰기 시작하기도 한다.



 <네 번째 원고>에서 존 맥피는, 자료를 충분히 숙지했어도 구조의 틀을 잡기 어려운 경우에 어떻게 하는지 말한다. 구조의 틀을 잡는다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의 설계도를 미리 완성한다는 얘기다. 일단, 존 맥피 같은 베테랑 프로 작가도 이 구조를 도무지 못 잡는 혼란과 마주한다는 얘기는 그 자체로 무척 위안이 되었다. 존 맥피의 이런 조언은 꽤 유용해 보인다.


 첫째, "패턴이 보이지 않는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럴 땐 모든 걸 중단하라. 노트를 들여다보지 마라. 좋은 글머리를 찾아 머릿속을 뒤져라. 그리고 써라. 도입부를 써라. 만일 글 전체가 그리 길지 않다면, 그 길로 풍덩 뛰어들어 반대편으로 나와보니 어느새 초고가 완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존 맥피, <네 번째 원고>

 

 공감이 가는 얘기다. 나 역시 도입부를 쓰면서 글 전체가 풀리는 경험을 해봤다. 존 맥피는 좋은 도입부에 대한 생각도 밝혀 놓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한 가지 놀랐던 건, 존 맥피가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고 말한 도입부의 전략들이 내가 지금껏 썼던 도입부들과 상당 부분 부합하였다. 존 맥피가 내 멱살을 쥐는 기분이 들었다.


 둘째, "펌프에 마중물을 붓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손으로 쓰는 것이다. 줄 메모지 같은 것을 상비해두었다가, 언제든 글이 막혔을 때-한 단어 뒤에 또 한 단어를 치지 못하는 마비 상태에 빠졌을 때-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아무 데나 누워서, 속으로 생각한다. 이 방법은 어디까지 썼든 간에 기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아직 한 글자도 못 썼을 때 특히 유용하다." -존 맥피, <네 번째 원고>


 확실히 글을 쓰는 도구는 글의 진전에 영향을 끼친다. 존 맥피는 손글씨와 타이핑을 번갈아가는 방식으로 막힌 글을 뚫어내는데 효과를 봤다. 난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글의 진전을 이루기 위해 애쓴다. 스마트폰 메모지에 뭐라도 끄적여 보는 것이다. 스마트폰 메모지에 쓸 때는,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자세를 갖추어 한번 써보자고 달려드는 것과 조금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쓴 글이, 풀리지 않던 글의 도입부나 글의 일부가 되어 글의 마중물이 된 일이 여러 번이다. (이런 걸 쓰니, 존 맥피 같은 거장이 된 기분이 든다. 택도 없는 일이지만, 고작 몇 개의 완결된 글을 쓴 사람도 쓴 과정에 대해 할 말이 생기는 법이다.)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엔 중간중간, 논픽션이나 칼럼 같은 글쓰기에 관한 실질적인 조언이 담겨 있다. 영미권의 저널리스트가 일하는 환경이나 방식이 우리나라와 괴리가 있어서 생경한 느낌이 드는 장면도 있지만, 몇몇 조언은 꽤나 유용하다.


+메인 사진은, 이번 제주도 여행 때 <스누피 가든>에 가서 찍어온 스누피 그림이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가서 이 그림을 봤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스누피도 좋고, 타자기(로 상징되는 글쓰기 행위)도 좋은데, 그게 한 장면 속에 같이 있으니 한 서른여덟 배쯤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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