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앤이 반장 선거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목표는 체육부장이 되는 것. (인지도도, 조직도 없는데 그게 될...) 표 못 받아도 괜찮다, 도전하는 게 멋지다고 밑밥을 깔았다.
선거 전날에 앤은 손수 연설문도 쓰고, 소견 발표 때 들고 할 거라며 작은 피켓도 만들었다.
선거 결과, 상위권과는 표 차이가 좀 나지만, 공동 4위 했단다. 같이 4위 한 남학생과 체육부장을 놓고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져서, 학습부장이 됐단다.
아빠도, 엄마도 앞에 나서는 거 싫어하는데, 누굴 닮았을까. 나도 어릴 적에 체육부장을 좀 해보긴 했는데, 자발적으로 나간 적은 없었다.
작은 도전과 작은 성취들이 아이에게 조금씩 쌓이면, 아이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나겠지. 언젠가는 자기 하늘을 가질 것이다.
* 오전에 <더 칼럼니스트> 칼럼을 썼다.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서 거의 3시간을 엉덩이 떼지 않고 썼다. 요즘 온 나라가 선거를 앞두고 후끈한 터라, 학급 임원 선거 이야기를 좀 했다. 도입부에 앤의 이야기를 넣었다. 깔끔하게 송고하고 점심을 먹었다.
요즘 칼럼을 쓸 시기가 다가오면, "오와 또 돌아왔어. 뭐 쓰지? 뭐 쓰지" 하며 사방을 두리번 거린다. 한 달에 한 번, 내가 원하면 그 이상 쓸 수 있는데, 요즘은 뭘 쓸지 고민하느라 압박을 좀 받는다.
몇 해전에, 우리 지역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할 때는 비교적 편하게 썼다. 그땐 원고료도 받지 않았고, 평소 쓰던 에세이 스타일대로 써서 보냈다. 거의 매일 에세이를 쓰던 시기라, 그중에 신문에 낼 만한 걸 선택해서 손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때 신문에 연재했던 에세이들이, 첫 책의 뼈대가 되었다.
요즘 연재하는 칼럼은 그때처럼 편하게 쓰질 못한다. 일단 원고료를 받고 있고(중요한 이유!), 내가 편하게 쓰던 에세이와 미디어에 적합한 글 사이에 성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말랑한 에세이 풍의 글은 각종 주장과 냉철한 논리가 판치는 칼럼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건조하기만 한 글을 쓰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난 양자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야 했다. 대략 30개월쯤 칼럼을 써오는 동안, 에세이와 미디어 글 사이를 줄타기하는 훈련을 한 것 같다. <더 칼럼니스트> 대표님은 평생 언론에 종사해 오신 프로 중의 프로신데, 내 글이 줄타기를 잘못한 때는 솔직하게 지적해 주신다. 난 그 조언을 감사히 받아들인다.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이번 달엔 뭘 쓸지를 고민하다가, 어젯밤에 주제가 번쩍 생각났고 오늘 오전에 해치웠다. 칼럼을 보내고 나면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다. 칼럼면은 때때로 버겁지만,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꾸역꾸역 써볼 생각이다.
이제 숙제도 끝냈으니, 다시 동화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손볼 것이다. 이야기 속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 최근에 퇴고를 마친 동화 하나를 다시 읽어봤는데, 어휴, 또 많이 손봐야겠어서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