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이 절판되었다. 출간된 지 꼭 5년 만이다. 첫 책은, 첫눈, 첫사랑 같은 설렘을 준다. 시장은 냉정했다. 이름 없는 작가의 이름 없는 책은 조용히 사라졌다. 물론 그건 세상의 끝은 아니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그 책 없이도 책방에는 책이 넘쳐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오래전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꿈은 언제나 내 현실 근처를 맴돌았다. 절박함은 없었고 글쓰기를 느슨하게 이어갔을 뿐이다. 그러다가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신생아의 리듬은 아름답지만 무자비했고, 기쁨만큼이나 깊은 불안을 가져왔다. 나 자신을 잃을 것 같은 위기감. 내가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역설적으로, 끝없이 글을 쓰는 일이었다.
한밤에도 캄캄한 방에서 아이가 잠든 옆에 작은 상을 펴고 글을 썼다. 새벽에 아이가 울면 아내는 유축을 하고, 나는 저장해 둔 모유를 아이에게 먹였다. 트림을 시키고 아기가 다시 잠들던 새벽 시간, 난 다시 노트북을 펴 들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그 당시 글쓰기는 생존과 자기 보존을 위한 필사적 행위였다.
어느 날 블로그를 통해 글을 읽은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출간 제안이었다. 첫 아이가 5살 때였다. 그렇게 나의 첫 책은 세상에 나왔다. 그 책은 나에겐, 말하자면 생존 보고서 같은 거였다. 육아와 자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던 어떤 남자가, 끝내 중심을 잡고 버텼다는 작은 증거. 출간은 큰 감동이었지만, 책은 잘 팔리진 않았던 모양이다. 이름 없는 신인의 첫 책이란 대개 그렇다. 서점 구석 어딘가에 얌전히 놓여 있다가 어느 날 슬그머니 사라지고, 작가는 쑥스러운 얼굴로 서점을 기웃거리다 자기 책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선다.
첫 책 이후로 나는 내 일상을 얘기하는 대신, 상상의 이야기를 써나갔다. 장편동화도 냈고 장편소설도 출간했다. 그러는 사이, 첫 책은 내 성과와 상관없이 조용히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출판사에서 절판 소식을 메일로 보내왔을 때, 난 실망과 허전함을 느꼈다. 가장 크게 느낀 마음은, 출판사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날 발견해 주고 책을 내줬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송구스러움. 난 마지막으로 출판사에 저자판매가로 내 책 15권을 주문했다. 책 쓰기 연수나 강의 기회가 있을 때, "이 책은 이제 세상에서 구하지도 못하는 책입니다." 하며 선물하려고.
아주 오래전, 연인을 잃었을 때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을 뭉개지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서 주의를 돌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마침 주변 선생님들 사이에서 뜨개질 열풍이 불었다. 나도 뜨개바늘을 잡았다. 그해 겨울, 난 목도리 세 개를 떴다. 뜨개질은 무념무상의 상태로 만드는데 좋은 활동이었다. 목도리 세 개를 뜨고 나서 겨울이 다 지나가자, 찢어졌던 내 가슴도 좀 아물었던 것 같다. 그땐 그랬는데, 첫 책 절판 정도야. 아하하. 정말 모기가 문 정도군. (물파스 어디 있지? 아니, 침 바르면 끝.) 뭔가를 잃었을 때, 예전에 겪었던 가슴 아팠던 순간이나 힘들었던 장면을 떠올리는 건 꽤 좋은 처방이 될 수 있다. "아, 그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안심을 하게 된다. 심지어,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게 된다.
생각해 보면 뭔가를 상실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순 없다. 처음엔 모든 순간이 첫눈처럼, 첫사랑처럼 설레지만, 결국 많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잊힌다. 중요한 것은 사라짐 자체가 아니라, 사라진 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이다. 첫 책이 절판된 오늘, 나는 그 책의 빈자리에 다음 책을 놓으려 준비 중이다. 삶에서 많은 걸 상실한다. 그렇지만, 절판된 책마저 아름다운 여백이 될 수 있는 건, 빈칸을 끊임없이 채워가는 일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