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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포진 백신을 맞자 그것들이 몰려왔다

by 송광용

대상포진 백신을 맞았다. 갑자기 왜 맞았냐고?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대상포진'은 내 삶에 없던 키워드였다. 남의 나라 길거리 음식이나, 옆집에 걸린 빨래만도 못한 관심사였다. 팟캐스트 방송에 나온 약사가 말했다.
“대상포진 백신을 맞으면 치매 발병률이 20%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어요.”

대상포진에 대해 아는 건, 어릴 적 걸렸던 수두 바이러스가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신경을 따라 통증이 나타나는 병이고, 노년층이 주로 겪는다는 정도. 걸리면 많이 아프다던데 그걸 예방하면서, 치매까지 막아준다고? 마치, 구충제를 먹었는데 동시에 영어 단어가 술술 떠오르는 마법의 약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조만간 꼭 접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건강에 관한 일이라면 순간 청력이 기가 막히게 예민해지고, 추진력은 아프리카 코뿔소 같아진다. 이런 게 아저씨가 된 증거겠지. 나도 가끔 놀란다.


기억을 잃는 것, 근원적 두려움

코뿔소 같이 굴게 된 건, 기억을 잃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이기도 하다. 이 두려움은 어쩌면, 인류가 가진 근원적 두려움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전통적인 철학에서는, '기억'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 왔다. 독일 철학자 피히테는 이 사유를 계승하며, '자기의식이라는 건 기억의 능력'이라고 요약되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기억이 없으면, 세계도 없다는 말이다. (대상포진 백신을 서둘러 맞게 된 내 행동엔, 이런 철학적 근거가 있다는 말을 에둘러하는 것이다.)

최근 밤마다 다시 재밌게 보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8>에서도 '기억'에 대한 중요한 관점이 나온다. 스타크 가문의 아들 브랜 스타크는 어릴 적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인물이다. 그는 백귀가 산다는 장벽 너머로 갔다가, 시공을 넘나들며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세눈박이 까마귀'가 되어 돌아온다. 백귀 나이트킹이 장벽을 허물고, 죽은 자의 군대를 이끌고 산자의 땅을 파괴하고 정복하려고 내려온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나이트킹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브랜이 있는 곳이었다. 브랜은 나이트킹이 결국 자신을 찾아올 거란 걸 예견했다.

"나이트 킹, 그는 이 세계를 지우고 싶어 해. 그리고 나는 그 세계의 기억이야."

브랜은 세눈박이 까마귀로서 자신이 인류의 기억을 보존하는 존재임을 말한다. 세상을 완전히 지우는 방법은, 산 자들을 죽이고 땅을 파괴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세상의 기억을 없애야 진짜 세상이 지워지는 것이다. 브랜의 말에 이어진 샘웰 탈리의 대사는 이를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게 바로 죽음이잖아. 그렇지? 잊히는 것.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는지 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야.(하략)"


미래의 고통을 미리 납부하기

대상포진 접종 가격을 검색해 보곤 깜짝 놀랐다. 요즘 나온 '싱그릭스'라는 백신은, 기존 백신이 10년쯤의 효능인 것에 반해 거의 영구적이라는데, 웬만한 스마트기기 가격이었다. 어떤 물건이 이 가격이라면, 난 당장 당근부터 찾아봤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싼 가격이 신뢰감을 줬다. 싼 게 비지떡이라지만, 백신조차 이런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현실이 씁쓸하면서도 안도감을 주었다. 병원마다 접종 가격이 달라서, 최저가로 맞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가서 접종했다.

백신을 맞고 난 뒤 이틀 동안 혹독한 몸살을 앓았다. 면역 체계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방증이겠지. 몸살을 겪으며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은 이것이었다. 백신으로도 이렇게 아픈데, 실제 대상포진에 걸리면 어느 정도일까? 난 몸살의 한가운데에서, 지금 겪는 고통을 상상 속 거대한 고통과 경쟁시켰다. 고통은 이처럼 상대적이고, 또 상상적인 면이 있다.

학교 동료 한 명이 예전에 대상포진을 앓은 얘기를 해줬는데,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을 뻔했다'라고 한다. 그 표정과 몸짓에서 진실함이 묻어났다. 병이란 언제나 타인의 고통으로 구체성을 얻는다.

우리는 건강과 질병 사이의 희미한 경계를 늘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건강할 때는 무심하지만, 질병이 문득 고개를 내밀면 우리는 언제나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럴 때마다 미리 대비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잊는다. 우리는 결국 무엇으로부터도 완전히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백신을 맞는 행위는 그런 우리의 불안을 달래는 일종의 의식이다.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를 지우는 것일 뿐. 대상포진이 아니라도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병은 나이트 킹이 거느린 죽은 자의 군대처럼 무수하다.

삶이란 결국 피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우리는 늘 건강을 꿈꾸지만, 질병은 언젠가 찾아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마도 그런 작은 몸살 같은 고통들을 감수하며, 가급적 커다란 아픔은 인생의 후불제로 밀어놓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고통을 맞이했을 때, 위트의 소재로 쓸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남아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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