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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함께하는 걸 좋아합니다

by 송광용

요즘, "당신은 E냐, I냐" 하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내 검사 결과는 I다. 홀로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는 경향이 있는 걸로 봐서는 확실하다. E나 I의 결과를 두고 저 사람은 무조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거나, 무조건 혼자 있을 때 행복하다고 단정 짓는 건 무리가 있다. E와 I로 다 설명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난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 격리된 채 뭔가를 하는 것보다 불특정한 사람들 틈에 섞여 일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것보다,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글 쓰는 걸 선호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웃의 존재가 나의 홀로 됨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그럼 이건, 오롯이 홀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걸로 봐야 할까, 아니면 (알지 못하는) 타인이 내적 충전에 기여한다고 봐야 할까.

여행에서도 '홀로'나 '함께'의 선호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완전히 홀로 가는 여행을 몇 번 한 적 있다. 젊을 때 첫 해외여행으로 도쿄에 간 적 있다. 홀로 가는 여행으로도 처음이었다. 그곳에 가서 여행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일정이 같은 여행객들을 만나 밥을 먹고 한두 군데 코스를 같이 가기도 했다. 홀로 여행을 갔지만, 굳이 타인을 만나 교류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건 진짜 혼자 간 여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여행엔, 혼자 떠났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나, 혼자의 세계에서 문을 조금 열고 바깥의 기척을 느끼고 싶은 내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매년 제주도 여행을 간다. 한낮에 가족들과 바닷가에서, 곶자왈 숲에서 여름을 즐긴다. 그러고서 밤이 되면, 나만의 여행을 한다. 호텔 휴게 공간에서, 펜션 내 카페에서, 숙소 로비 작은 소파에서. 난 책이나 노트북을 펴서는 홀로 여행을 만끽한다. 그 고요한 밤의 혼자는, 낮 동안의 ‘함께’가 있었기에 더 달콤하다. 반대로, 밤의 고요를 누렸기에 다음 날 가족과 웃으며 걷는 시간이 더 값지다. 홀로 있음을 즐기기 위해선 함께함이 필요하고, 함께함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고독이 필요하다. 마치 숨을 들이쉬기 위해선 먼저 내쉬어야 하듯이.

난 확실히 I 성향이라고 답하지만, 혼자 있기만을 바란다는 뜻은 아니다.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없는 복잡다단함이, 나라는 사람, 인간들의 실체다. 혼자를 위한 '함께', 함께하기 위한 '고독'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우리 안에서 늘 지분 싸움을 하면서도 합의에 이른다.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은 '혼자 있음의 능력'이라는 말을 했다. 진정한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얻어지는 심리적 독립이라는 뜻이다. 위니컷의 말속엔, '독립'은 '관계'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나는 지금 캠핑 의자에 앉아 있다. 어제 캠핑을 왔는데, 오늘 비가 내리고 있다. 텐트 안에서 아이들은 책을 읽고, 아내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재미있는 영상을 본다. 난 텐트 밖 타프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완성하고 있다. 우린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저마다의 책, 메모장,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홀로 있다. 누군가가, "I성향이니까 혼자 있는 걸 가장 좋아하겠군요?"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글쎄요, 홀로 함께하는 걸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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