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과 수요일 밤, 나에게는 절대 거를 수 없는 의식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수영복을 빠는 일이다. 아이들이 숙제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즈음, 나는 어김없이 세탁기 앞에 선다. 소독약 냄새가 배인 작은 수영복들과 수모를 다른 빨랫감과 함께 세탁기에 쓸어 넣는다. 이 작은 의식은 아이들이 수영을 시작한 후부터 내 삶에 고스란히 자리 잡았다. 세탁기의 시작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책임을 다 했다는 뿌듯함이랄까.
어느 밤은, 거실 소파에서 <나는 솔로>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새벽 3시에 눈을 떴을 때, 잠에서 깨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세탁기에 수영복이 있다'는 것이었다. 반쯤 꿈속을 헤매는 의식 속에서도, 내 뇌는 수영복을 잊지 않았다. 그 뒤로도 새벽녘에 세탁기에서 젖은 수영복을 꺼내는 게 낯설지 않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수영복을 베란다 건조대에 널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부모가 되면 많은 게 바뀌지만, 달라지는 것 중 하나는 '소소한 일에 성실해진다'는 거구나. 사소해 보이는, 작은 일에 성실해져야 가정의 질서가 유지되니까.
아이들은 수영을 마치고 오면 신나서 얘기하곤 한다. "오늘은 자유형에서 배영으로 넘어갔어!" "오늘은 접영을 배웠는데, 한 팔 넘기기를 했어."
아이들은 자유형, 배영, 평영을 차례로 익히고 접영을 시작했다. 점점 낡아가는 수영복을 만지고 있으면,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눈앞에 재생되는 것 같다.
빨래가 다 마르고 난 아침, 뽀송하게 마른 수영복과 수모를 수건과 함께 아이들의 수영 가방에 곱게 접어 넣는다. 아이들은 그것을 갖고 다시 신나게 수영장으로 향한다. 반복되는 작은 행동과 습관들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뼈대가 된다.
나는 정적이고, 예상 가능한 일정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루틴이라는 건, 꽤 굳건하고 단단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생활 반경’에 변화가 생기면, 내 루틴도 쉽게 바뀐다. 아이들은 모든 부모들의 루틴 체인저다. 밤에 수영복을 빠는 내 일상에서, 학원가에 아이를 라이딩하는 부모의 일상에서, 아이에게 밥을 주기 위해 일정을 조정하는 부모의 일상에서, 아픈 아이 곁에 있기 위해 바쁜 일을 중단하는 부모의 일상에서, 기꺼이 루틴을 바꾸는 부드러운 마음을 본다.
그렇게 바꾼 루틴은, 일상에 잔물결을 만들어낸다. 인생은 이따금 커다란 파도처럼 몰아치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작은 물결이 만든 자잘한 흔들림으로 굴러간다. 우리는 그 흔들림에 몸을 맡기며, ‘이제는 이렇게 사는 거구나’ 하고 조용히 적응해 나간다. 몸에 찰박찰박 와서 부딪히는 그 잔물결들을 감수한 마음들이 나를, 우리 모두를 키웠다.
인생은 이렇게 새로 생겨나고 없어지길 반복하는 작은 루틴들의 집합체가 아닐까 싶다. 거창한 업적이나 화려한 성취보다, 매일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채워준다. 예일대의 브르제니에프스키 교수는, 병원 청소부들을 인터뷰하며 '직무 재설계'라는 개념을 연구했다. 청소부들은 자신의 일을 단순한 청소가 아닌 '환자를 치료하는 일의 일부'로 여기며, 매일 같은 병실을 청소하면서도 환자들과 대화하고 환경을 쾌적하게 만드는 작은 루틴을 통해 큰 만족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사례는 같은 일상적 루틴도 의미를 부여하면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도 밤새 마르고 있는 수영복을 보면서 의미를 부여해 본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성장에 조용히 관여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