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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성의 경이로움

by 송광용

신호 없는 사거리로 천천히 차를 몰고 직진하는데, 왼쪽에서 갑자기 벤츠 한 대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 급정거를 했다. 이거 뭐 하는 자인가. 사거리 한 중간에서 차가 엉켜 섰는데 창문을 내린다. 뭐야, 적반하장 짓거리를 하려는가. 차창 안을 응시하고 있으니, 이십 대 남자가 고개를 내밀고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조금 뒤, 신호에 걸려 정차했는데 앞에 있던 벤츠의 문이 열리더니 그 청년이 내렸다. 내 차 쪽으로 걸어오기에 창문을 내렸더니, "아깐 죄송했습니다. 못 봤습니다."라고 거듭 말했다. 난 도로에서 쉽게 보지 못할 생소한 광경에, 뭐라 말도 못 하고 괜찮다는 뜻을 담아 그저 고개만 여러 번 끄덕였다. 최대한 성의 있게. 잠시 오해했구먼. 곱상한 청년은 예의 발랐다. 나는 그를 향한 선입견의 그물망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의 의외성'은 종종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다.

우리는 종종 그럴듯한 추측의 그물을 던진다. 벤츠를 모는 젊은 남자? 오만하고 예의 없을 것이다. 비싼 명품을 두른 여성? 얄팍한 가치관의 소유자일 것이다. 왠지 불친절해 보이는 표정의 직원? 서비스 정신이 결여되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이 얼마나 자주 빗나가는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람들의 의외성에 놀라게 되는지.

요즘 세상은 지나치게 빠르다. 음식도 속전속결, 감정도 속단속결이다. 첫마디 듣고 싸움이 시작되기 일쑤다. 그런데 벤츠 청년은 말 한마디로, 그것도 “죄송합니다” 한 줄로 모든 싸움을 종료시켜 버렸다. 이 얼마나 우아한 엔딩인가.

의외성은 우리에게 겸손함을 가르친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얼마나 자주 빗나가는지를 깨달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가끔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의외성이 우리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다. 예상치 못한 친절함, 낯선 이의 도움, 기대하지 않았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하루를 바꾸기도 한다.


그날의 벤츠 청년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의외의 존재가 될 수 있다. 오해를 받기도 하고, 선입견으로 재단되기도 하지만, 난 나의 진짜 모습이 누군가에게 발견되길 바란다. 또한 타인의 의외성을 기다릴 줄 아는 느긋한 시선을 갖게 되길 바란다.


예측 불가능한 의외성이야말로 인생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향신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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