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우리 가족은 매년 제주도에 간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제주도 여행은 어느덧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요즘은 가족이 다 함께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지만,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 두 번쯤, 나와 가족들은 따로 제주도에 상륙했다. 저가 항공사가 잘 나가던 시절, 뱃삯보다 싼 항공권이 많을 때 이야기다. 난 가족들의 비행기 예약일 이틀 전에 차를 몰고 여객선 터미널로 먼저 출발했다. 내가 차를 배에 싣고 제주도에 도착하면, 가족은 다음날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오는 일정이었다. 아이들은 비행기가 좋고, 아내는 피로를 덜 수 있으니 나쁠 게 없었다. 난 몇 시간 운전해서, 또 몇 시간 배를 타야 했기에 보상 차원에서 하루 반 정도의 고독한 여행을 허락받았다.
여수까지 가는 길. 혼자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마음이 내키면 중간에 지나던 도시에 들어가서 그해 여름에 유행하던 영화를 보기도 했다. 홀로 여행의 시작점은 늘 설렜다.
배가 출항하고 난 뒤, 갑판에 나가 바다를 본다. 깊은 밤의 바다는 우주처럼 느껴진다. 블랙홀처럼 날 빨아 들일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갑자기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가 된 것 같다. 선실로 돌아오면, 다시 아무도 모르게 탈출에 성공한 특수요원이 된 기분이 된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지만, 곧 스스로를 말린다. 혼자 있으려고 온 거잖아.
새벽녘에 제주에 도착한 나는 해안도로에 있는 편의점에서 허기를 채우고, 파도를 좀 보다가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바닷가 근처의 동네서점으로 향했다. 바다 냄새가 나는 책방. 주인의 취향에 맞춘 특별한 서가 사이를 고양이가 어슬렁거렸다. 책 한 권을 사서 카페로 갔다. 창밖으로는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가 보였다. 책을 읽다가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얼른 노트북을 꺼내 글을 썼다. 쓰고 읽고, 다시 쓰는 사이, 마음은 비워지고 다시 채워졌다.
그날 밤은 오래 걸었다. 숙소 근처를 천천히, 어두운 골목까지 일부러 돌아 들어갔다. 삶이 가끔 너무 밝아서 피곤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약간 어두운 풍경이 오히려 나를 일깨운다.
이 시한부의 고독은 곧 끝날 것이다.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마치 기한이 정해진 미션처럼, 나는 그 하루를 온전히 쓰려고 애썼다. 때때로, 내게 가해지는 제한은 간절함을 만들고, 그 간절함은 시간에 당도를 더한다. 달콤한 시간은 대개, 영원하지 않음 속에서 제조된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공항으로 향한다. 가족이 도착할 시간이다. 그즈음 나는, 시한부 고독이 끝났다는 아쉬움과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나는 다시 '가족의 가장'으로 돌아온다.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책장을 넘기던 서점의 오후나, 아무도 모르게 쓴 단어 몇 개를 지우고 다시 썼던 기억을 간직한 채,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한다.
시한부 고독, 언젠가 끝날 걸 알기에 더 달콤하고, 곧 끝날 걸 알기에 더 소중하다. 왜 이 글을 쓰고 싶었냐면, 올여름 제주도 여행 배편을 예약했기 때문이다. 1인 표와 차량 선적표만. 아내와 아이들은 특가 항공권을 끊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다시 내게 시한부 고독이 주어질 예정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건 완벽한 자유가 아니라, 기한이 있는 자유인지 모른다. 너무 길면 외롭고, 너무 짧으면 아쉽다. 그래서 ‘시한부 고독’은 가장 좋은 크기의 선물 같다. 그 시간엔 누구의 아빠도, 누구의 남편도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다시 나를 만나고 나서야, 더 따뜻하게 다른 사람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나날이 쌓여, 인생이 된다. 가끔씩 혼자 있고 싶다는 욕망은, 어쩌면 더 오래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